강옥엽 인천여성사연구소 대표
강옥엽 인천여성사연구소 대표

인천 역사에 남은 기록과 터를 포함한 여성인물 관련 문화유산을 이해하기 쉽게 인천시 각 구(區)의 연원적 공통분모를 찾아 ‘문학산권’, ‘개항장권’, ‘계양산권’ 그리고 ‘강화·옹진권’ 4개 권역(圈域)으로 구분하고 정리해 봄으로써 인천 역사 속 여성의 삶을 발견할 수 있다. 

지난번 기고(寄稿)에서 전근대 인천 역사의 출발지인 미추홀구와 여기서 분구(分區)됐던 연수구, 남동구를 ‘문학산권’으로 분류하고, 이 공간에 남은 여성인물 관련 대표 문화유산으로 인천도호부와 정희왕후 그리고 이윤생·강씨정려각을 살펴본 바 있다.

‘문학산권’에서 다음으로 언급할 여성인물 관련 문화유산은 연수구 수인선 환승역 근처에 자리한 인주이씨(경원, 인천이씨) 왕비들의 본향이자 고려 왕실 7대 어향(御鄕)의 상징인 ‘원인재(源仁齋)’다. 원인재는 인주이씨 중시조인 이허겸의 묘 옆에 세운 재실(齋室)이다.

인주이씨가 고려시대 귀족가문 대열에 오른 것은 이허겸 때부터로, 그의 손녀 3명(원성, 원혜, 원평왕후)이 모두 현종의 비(妃)가 돼 덕종, 정종, 문종의 외가가 되면서였다. 왕실의 외척으로 확고하게 자리 잡은 시기는 이허겸의 손자 이자연 때였는데, 그의 세 딸(인예태후, 인경현비, 인절현비)이 모두 문종의 비(妃)가 됐다. 여기에 더해 이자연의 손자 이자겸 때에 둘째 딸(문경태후)은 예종의 비가 되고, 셋째와 넷째 딸은 예종과 문경태후의 아들이자 자신의 손주인 인종의 비가 됨으로써 중첩적으로 3명의 왕비를 배출했다. 따라서 고려시대 인주이씨는 문종에서 인종에 이르기까지 7대에 걸쳐 80여 년간 ‘7대 어향’으로 불리며 고려의 대표 귀족가문의 정점에 있었다.

원인재가 언제 세워졌는지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지만, 후손의 글을 통해 조선 순조 7년(1807) 혹은 고종 4년(1835)에 세운 것으로 보인다. 원래는 지금의 적십자병원 근처 신지마을에 있었으나 1990년대 택지개발로 이허겸의 묘가 있는 현재 자리로 옮겨졌다.

한편, ‘문학산권’에서 찾아볼 수 있는 근현대시기 활동했던 여성인물과 관련된 문화유산으로는 여성독립운동가 최선화가 남긴 ‘육아일기’ 그리고 일제강점기 때 ‘계명학원’을 세워 교육에 매진하다 광복 후 인천 최초 여성 국회의원 후보가 됐던 이순희가 있다.

학익동 출신 여성독립운동가 최선화(1911~2003)는 1931년 이화여전을 졸업하고 모교에서 교편을 잡다가 1936년 중국 상해로 건너가 간호대학을 다니면서 흥사단에 가입했다. 이 무렵 임시정부 재무차장이던 애국지사 양우조의 활동을 지원하면서 결혼했다. 1938년 맏딸 제시를 낳자 남편과 함께 독립운동 현장을 육아일기를 통해 기록으로 남겼다.

일기는 1938년 7월 4일부터 1946년 5월 4일까지 작성됐는데, 주로 중일전쟁의 전란 속에서 딸 제시가 출생한 것을 시작으로 임시정부의 중국 내 이동 현황, 임정요인들의 인간애와 광복의 감격을 담았다. 특히 중일전쟁 시기 일본의 공습을 피해 임시정부가 충칭시로 이동하기까지의 실상을 시기별로 정확히 알려 주는 거의 유일한 자료로 평가된다. 

이들 부부는 1946년 4월 임정 인사 및 그 가족들과 귀국했다. 이후 양우조는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최선화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수여받았다. 일기는 1999년 외손녀 김현주에 의해 「제시의 일기」라는 제목으로 출간됐다.  

영화여학교, 이화여고보를 졸업하고 1931년 강화 월명(月鳴)여학교 교사를 지낸 이순희(1905~?)는 1936년 3명의 불우한 소녀들을 데리고 계명학원을 시작해 1938년 동생(성희)과 함께 숭의동 107번지 알렌별장 자리로 확장 이전했다. 

광복 후 공민학교 야간부 개설, 초등교육, 여자실업학원 개원 등 교육사업에 전력을 다했지만 운영이 어려워지면서 결국 계명학원은 문을 닫았다. 그 공간은 이후 종교 관련 시설로 바뀌었다가 최근 사라지고 말았다.

이순희는 1947년 여자기독교청년회, 독립촉성애국부인회 등에서 여성운동을 주도하다 1948년 제헌국회의원 선거에 인천 갑구에 출마했다. 비록 낙선했지만 인천 최초 여성 국회의원 입후보자라는 기록을 남겼다. 그로부터 56년이 지난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선거에 이르러서야 3명의 여성 입후보자가 나왔다. 20년이 흐른 2024년 22대 국회의원선거를 앞둔 현재, 3명의 입후보자만 보이는 인천 여성의 정치활동의 현주소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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