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일본 문부과학성 검정심의회를 통과한 중학교 사회과 교과서의 역사 기술이 임진왜란부터 일제 식민지 지배와 조선인 강제 징용까지 후퇴했다고 나타났다. 전반적으로 한국 피해는 삭제하고 강압적인 통치 역사는 축소했다. 일부 출판사는 아예 ‘종군위안부’라는 단어 자체를 삭제했다. 독도가 일본 고유 영토라고 주장하는 교과서도 89%에 달했다. 이에 정부는 "검정 통과된 일본 교과서가 부당한 독도 영유권 주장을 답습하고 일제강점기 가해 역사를 흐리는 방향으로 기술됐다"며 즉각 유감을 표했다.

듣는 순간 밀려오는 감정은 분노일 테다. 늘 이런 식이다. 교과서 검정, 야스쿠니신사 참배, 일본군 위안부·강제 징용 피해자 대응 등 갈등을 유발하는 방식이 한결같다. 이런 역사 갈등이 독도 영유권 주장과 결합해 증폭되는 양상이 반복됐다. 지난 정권처럼 양국 최고위층 정치세력이 직접 갈등을 유발하고 부추기는 상황까지 가면 양국 간 경제협력 구도를 파괴하는 위력도 발휘한다. 2018년 대법원이 강제 징용 피해자에 대한 배상 판결을 내리자 2019년 일본이 수출규제 조치를 단행한 게 대표적 예다.

이처럼 한일 갈등은 양국 사이에서 발생한 갈등의 이벤트들과 정확히 일치하고, 양국민 인식 변화도 이런 갈등과 정비례하는 경향을 보였다. 문제는 한일 갈등이 단순한 역사 갈등의 틀만으로 접근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는 점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1965년 한일협정 당시와 비교할 수도 없는 위상을 가진 나라가 됐다. 일본에게 한국은 정치, 경제, 국방, 문화 등 어느 면을 비교해 봐도 더 이상 여유롭게 포용할 존재가 아니다. 한마디로 배려와 양보가 필요한 약자가 아니라 부러움과 경쟁의 대상이 됐다.

국가 정체성도 고려해야 한다. 우리 국민은 자국에 대한 자부심과 동일 집단 의식이 강한 편이다. 일본에 대해선 대체로 친근감을 느끼지만 신뢰감은 낮은 편이다. 5천 년간 지속된 단일민족 의식과 식민지배, 한국전쟁, 조국 근대화, 민주주의 달성, 선진국 진입 역사를 관통하며 만들어진 정체성이다. 이런 특성 때문에 한일관계 개선에 공감하면서도 민족 감정과 연루되면 타협하기 어려운 자세를 견지하는 것 아닌가 싶다. 역사를 망각해선 안 되지만 달라진 위상에 맞게 분노 조절도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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