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학 전 인천산곡남중학교 교장
전재학 전 인천산곡남중학교 교장

스티브 잡스는 "나는 평생 동안 테크놀로지와 인문학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면서 살았다"고 말해 인문학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또 "소크라테스와 점심을 함께할 수 있다면 애플이 가진 모든 기술과 바꾸겠다"라고도 고백했다. 이는 인문학적 상상력의 중요성에 대한 표현의 절정이라 할 만하다. 하지만 최근 우리 사회는 한때 인문학 열풍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정반대 현상들이 발생한다. ‘문송해(문과라서 죄송합니다)’라든지 ‘인구론(인문학 전공 학생의 90%는 논다)’이 대표적이다. 이는 우리 교육이 인문학 위기에 처했음을 방증한다.

그뿐이랴. 현실은 더욱 암담하기만 하다. 대한민국은 현재 ‘의대 광풍’에 의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N수생 양산으로 국가 차원의 학문적 불균형 대책을 강구해야 할 상황이다. 전반적으로 보면 우리나라 인문학교육은 거의 ‘실패’했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이는 우리 교육 현황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최근 인문학 위상을 보라. 전공 학생들의 취업은 형편없고, 대입 교차 지원(문·이과 통합수능)에서도 인문학(문과) 전공은 상대적으로 크게 밀려 그 입지가 매우 불리하다.

그렇다면 인문학교육 실패의 근본적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인문학의 주입식 교육 때문이다. 주입식 인문학교육은 우리 교육의 실패를 보여 주는 끝판왕이다. 이는 우리가 스티브 잡스의 인문학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 인문학 수업은 가르치기 위해 생소한 고전을 줄줄 외워야 하고 배우기 위해 뜻을 몰라도 그냥 무조건 좋은 소리라 믿고 외워야 하니, 이렇게 가르치고 배워서 무엇을 할 것인지 그 효능감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대부분 사람들에게 그저 과시용으로 입에 오르고 현학적인 이용에 그치는 것이 인문학의 현실이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금 인문학교육의 본질을 생각하게 된다. 그것은 한마디로 자기 삶에 대한 ‘반성과 성찰’이다. 일찍이 소크라테스는 "성찰하지 않는 삶은 살아갈 가치가 없다"고 했다. 오늘날 최첨단 기술사회에 호기심과 상상력을 발동하고 창의성을 키운 것은 스티브 잡스의 인문학이었다. 그는 세상을 바꾸기 위해 인문학적 상상력, 즉 사람의 심리를 알게 해 주는 인문학적 사유를 작동해 기술시장을 석권한 천재였다. 이처럼 인문학적 소양은 성공한 기업가, 과학자, 정치가, 문학가, 교육자, 공학자, 예술가 등등 세상에 많은 큰 바위 얼굴들을 배출했다. 그들은 이 세상을 보다 낫게(better) 하고 이롭게(beneficial) 만든 주인공들이다. 그 바탕은 다름 아닌 인문학적 소양에 힘입은 것임을 그들은 공통적으로 고백했다.

흔히들 인문학은 ‘블루오션’이라고 칭한다. 일찍이 스티브 잡스는 이를 인지하고 앞서 간 블루오션의 탐험가였다. 이처럼 인문학적 사유가 가져다 준 블루오션은 빨리 알면 알수록 우리 삶을 훨씬 수월하게 만들어 준다. 이는 입시교육으로는 절대 불가하다. 오늘의 우리 청소년들이 중·고 과정을 거치면서 ‘수학능력자’가 아닌 ‘수학불능자’가 되는 것은 인문학과의 인연이 그만큼 멀기 때문이다. 우리의 입시교육 시스템으로서는 어쩌면 당연한 귀결인지 모른다.

우리 대학생활도 기울어진 운동장에서의 삶에 지나지 않는다. 대학시절 온갖 스펙을 쌓지만 단지 취업을 위한 것에 그친다면 이는 인문학이 설 자리를 찾지 못하고 젊은 시절을 그저 실용적인 기술 내지 응용학문만을 찾는 데 불과하다. 인문학은 순수 기초학문으로 모든 인간 존재의 탐구다. 전 연세대 이상오 교수는 인문학의 부재가 가져다주는 청춘의 대학생활을 살벌한 적자생존의 ‘오징어 게임’이라 지칭했다.

인간은 인간됨으로 인간임이 결정된다. 보다 성숙한 인간이 돼 가는 과정에 보다 객관적으로 다가서는 것이 인문학이다. 이제 주입식 교육, 기계적 학습, 반복 학습, 시험을 위한 학습으로의 인문학 공부는 멈춰야 한다. 자기 삶의 ‘반성과 성찰’의 계기가 되고 단기 기억이 아닌 장기 기억, 이성적 주장을 통해 진리를 확립하고자 하는 담론으로서의 대화법이자 문답법(예컨대 앎과 무지를 일깨우는 소크라테스의 산파술), 철저한 앎과 이해를 위한 격물치지(格物致知) 학습법 등으로 변증법적 성장을 가져오는 인문학 공부로의 방향 설정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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