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만 변호사
박영만 변호사

중대재해처벌법이 5인 이상 모든 사업장으로 확대 적용됐다. 중소기업 대표들은 법에 대한 대비가 부족하니 법 적용을 더 유예하라고 정부와 국회에 요구한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후 그 효과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지만, 현재로서는 이미 수년 전부터 시행하겠다고 예고하고 그에 따라 시행 중인 법을 다시 연기하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어차피 시행 중이라면 그 내용을 잘 분석하고 충실히 대비해야 한다. 앞으로 국회가 법을 고쳐 소규모 사업장에 대해 중대재해처벌법을 적용하지 않기로 하더라도, 만약 그 사이 사고가 발생한다면 기존에 시행 중이던 법에 따른 처벌은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요구하는 것은 회사 수준에 맞는 안전관리이고, 안전관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위험성평가’다. 위험성평가만 제대로 하면 중대재해는 막을 수 있고 사업주는 처벌을 피할 수 있다. 제조업 사업장을 운영하는 사업주라면 위험성평가라는 말을 들어봤을 것이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위험성평가가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되는지 수많은 자료가 있다. 업종별로 자주 발생하는 사고 요인과 사고 사례도 알기 쉽게 정리됐다. 다른 회사에서 어떤 사고가 많이 발생하는지 알아보고, 우리 회사는 그런 사고에 잘 준비하는지 확인해야 한다.

통상 재해가 발생하면 고용노동부 소속 산업안전보건감독관들이 사업장에 출동해 사업주가 법을 위반했는지 수사한다. 평소에도 감독관들은 산업재해를 예방하기 위해 사업장에 가서 감독 업무를 수행한다. 그런데 감독관들이 재해 예방을 위해 현장 감독을 하면 회사에서는 감독관들이 현장은 보지 않고 산업안전보건법에서 정한 서류만 본다고 투덜댄다. 회사 안전담당자들은 법에서 요구하는 여러 가지 서류를 작성하느라 작업 현장을 살피고 설비 위험을 개선할 시간이 없다고 한다. 일면 타당한 지적이다. 감독관들에게 사업장 형편에 따라 작업 현장이나 서류 등 어떤 것을 주로 조사할지 재량을 준다면 감독을 통해 사업장의 안전보건수준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아직은 감독관 개개인의 경험이나 지식에 편차가 있고, 이를 조정할 만한 행정력도 부족해서 동시에 일률적인 감독만을 하기 때문에 그런 푸념이 나오는 듯하다.  

그런데 사업장에서 안전보건서류를 작성하느라 현장에 가 볼 시간이 없다는 것은 안전보건인력이 부족하다는 말일 수 있다. 통상 작은 사업장의 안전보건담당자는 주로 담당하는 업무가 있고, 안전보건업무는 부수적으로 처리해야 하는 귀찮은 업무일 뿐이다. 따라서 작은 사업장일수록 안전에 대한 대표자의 관심과 역할이 중요하다. 담당자가 안전업무를 충실히 하도록 시간을 주고, 대표 자신도 작업장의 위험 요인과 감독관에게 제출할 서류 내용을 잘 알아야 한다.

수사나 재판에서는 서류가 가장 중요하다. 예를 들어 병원에서 의료사고가 발생할 경우 환자나 수사기관에서 가장 먼저 살펴보는 것은 진료기록이다. 진료기록은 환자 상태와 경과를 기록하고 추후 진료에 참고하기 위해 작성하지만, 일단 의료사고가 나면 의료진이 적절하게 진료했는지 판단하는 가장 확실한 근거자료가 된다.

의사들은 진료기록을 충실히 작성한다. 의료사고를 대비한다는 측면도 있지만 환자를 열심히 진료할수록 진료기록 내용은 꼼꼼해진다. 경험이 많고 실력 좋은 의사는 진료시간이 짧더라도 문제될 만한 내용은 반드시 환자에게 이야기하고 그것을 기록에 남긴다. 의학적으로 중요한 증상과 그에 대한 진단, 앞으로 치료계획에 대해 누가 보더라도 납득하게끔 기록한다. 기록이 충실할수록 환자가 다음에 방문할 때 이전 진단과 처방이 제대로 됐는지 잘 평가해 환자를 더 잘 치료할 수 있다. 의료사고가 발생하더라도 충실한 진료기록은 진료 내용의 정당성을 증명한다. 

진료기록의 중요성에 대해 변호사들은 "충실한 기록은 충실한 방어를, 빈약한 기록은 빈약한 방어를 할 수 있지만 아무 기록도 없으면 아무 방어도 할 수 없다"고 말한다. 수사기관이나 법원에서는 "사람은 거짓말을 하지만 문서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말을 하곤 한다.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사업장을 감독하는 감독관들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안전관계서류가 충실히 작성된 사업장은 통상 작업 현장도 안전하게 잘 관리한다고 한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작성한 서류의 양이 많다고 해서 사업장이 안전해지는 것은 아니다. 평소 충실하게 안전업무를 했다는 근거가 서류로 남는 것이다. 작업자들의 의견을 잘 듣고 현장의 위험 요인을 개선한 기록(사진이 첨부되면 더 좋다)이 있다면 위험성평가를 충실히 했다고 인정받을 수 있다. 수사기관도 회사 규모와 특성에 맞는 안전활동을 성실하게 하고, 이를 사실대로 기록했다면 그런 사정을 참작하여 처분해야 한다. 개선활동을 위해 사실대로 남긴 기록을 오히려 회사에서 잘못을 알았다는 근거로 삼는다면 재해 예방이라는 법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

일부에서는 중대재해처벌법 목적이 사업주를 처벌하는 것이라는 희한한 주장을 펴기도 한다. 법은 읽어 보지도 않고 ‘카더라’라는 말만 듣기 때문인 듯하다. 중대재해처벌법의 목적은 재해를 예방하고 작업자의 생명과 신체를 보호하는 것이다. 사업주를 처벌하는 것은 법을 관철시키는 수단일 뿐이다. 아무리 좋은 법도 적절한 유인이나 강제력을 동원하지 않으면 제대로 시행할 수 없다. 지난달까지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으로 재판 중이거나 재판을 받은 사건 40여 건 중 실형을 선고받은 사건은 1건뿐이다.

산업안전보건법이 강화되고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면서 안전보건인력에 대한 수요를 공급이 따라가지 못한다고 한다. 정부는 사업장 여러 개를 묶어 안전보건인력을 공동 선임하는 방안 등 부족한 인력을 공급할 방법을 고민 중이라고 한다. 

그동안 안전은 안전관리자가 알아서 하는 것 또는 외부 전문가에게 맡기면 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지금의 안전보건 위기상황을 만들었다. 소규모 사업장에 안전보건인력이 부족하다면 우선 사장이 안전전문가가 돼야 한다. 사장도 작업장 위험 요인을 작업자나 안전담당자만큼 알아야 한다. 사장이 알아야 현장을 조금이라도 고치고 중대한 사고를 막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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