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와, 나 강아지 생겼어!"라며 군 동기들에게 강아지 사진을 자랑했던 날이 바로 우리집에 배추가 살게 된 첫날입니다. 애석하게도 당시 학사장교로 훈련을 받고자 상무대에 복귀한 뒤 전해들은 소식이었습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주말, 전라남도 장성군에서 경기도 의정부까지 약 270㎞를 달려 만난 배추는 사랑스럽기만 했습니다. 덕분에 주말마다 주어지는 소중한 외박은 배추와 함께 보내는 시간으로 채웠습니다.

우리 배추는 파양이라는 슬픔을 경험했습니다. 아버지는 이전 가족이 키울 여건이 안 된다며 한 달 만에 파양을 결심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배추를 데려왔습니다. 배추도 그렇지만 우리 가족에게도 갑작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가까이 사시는 할머니 댁에서 애지중지 키운 강아지 몽실이를 보면서 삶의 한쪽에 생명을 들인다는 건 너무 많은 걸 필요로 한다는 점도 걱정됐죠. 함께 지낼 때는 책임져야 할 부분이 많고, 떠나 보낸 뒤 모든 걸 감내할 용기가 필요하다는 사실은 반려동물을 키우는 가족이라면 누구나 깊게 공감하는 사실입니다.

처음 우리 가족도 집에 온 배추를 마냥 환영하지는 못했습니다. 강아지를 좋아하지만 키울 결심이 서지 않으셨던 어머니는 덜컥 강아지를 데려온 아버지께 화를 내셨습니다. 배추에게도 일주일간은 정을 주지 않으려고 노력하셨고요. 물론 지금 배추는 어머니 마음에 콕 박혀 사랑을 독차지하는 막내딸 노릇을 합니다.

배추는 태어난 순간부터 심장이 안 좋습니다. 다행히 빨리 발견해 매일 두 차례 약을 먹으며 상태를 유지하지만 큰 긴장을 하면 안 되고, 오래 뛰어놀지도 못합니다. 그래서 주변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에 비해 예민하게 상태를 살피고, 조금만 상태가 좋지 않아도 병원에 드나드는 일상을 지냅니다.

하다 못해 간식을 먹던 배추가 가쁜 숨을 쉬며 보라색 혀를 내밀었습니다. 순간 화들짝 놀라 택시를 타고 서울 노원구에 있는 24시 동물병원으로 향했는데, 검사 소견은 ‘과식’이었습니다. 혀가 보라색으로 변한 건 간식을 너무 열정적으로 먹어 힘에 부쳤다는 이유였습니다. 웃음과 머쓱함이 함께한 진료실에서 나와 병원에서 소화까지 잘 시키고 왔습니다.

배추가 열정을 보이며 과식한 간식은 오리다리였습니다. 병원 가는 길은 너무 무서웠는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이름 대신 "이 오리 돼지야!"라고 부르며 가벼운 마음으로 돌아온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이렇게 귀엽게 속을 썩이는 날도 있지만, 이 조그마한 강아지에게 삶의 위로를 얻는 순간이 몇 배나 많습니다. 야근 뒤 새벽에 귀가한 날에는 졸린 눈으로 비틀비틀 마중 나온 배추를 안아 올렸을 때 전해지는 온기와 "뽀뽀!"하면 ‘쪽’ 하곤 냅다 도망가는 뒷모습을 볼 때가 그렇습니다.

배추는 우리 가족의 일상을 들었다 놨다 합니다. 어머니는 배추의 약 복용 시간을 놓치지 않고, 아버지는 배추에게 먹이려고 고구마를 구워 옵니다. 혼자서라도 밖에 나가는 시간을 즐기던 저는 되도록 집에서 시간을 보내고, 잠이 많던 동생은 부지런히 일어나 배추와 산책을 다닙니다. 주변에서 분리불안은 배추가 아닌 우리 가족에게 생겼다며 우스갯소리도 합니다.

배추가 우리 가족이 돼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늘어나는 만큼 머나먼 미래에 대한 두려움도 커지지만, 그래도 늘 동그란 눈과 연분홍 코, 털이 보송보송한 입 주변을 보며 말합니다. "배추야 우리 집에 와 줘서 고마워!"

이소라(의정부시 호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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