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젊은 시절 제가 무척 난감한 문제에 빠져 허덕일 때마다 어른들이 자주 해 주신 말씀은 "사서 고생도 한다는데…"였습니다. 일부러라도 고생해 볼 필요가 있다는 말입니다. 

당시에는 이 말이 그저 저를 위로하는 말이라고만 여겼지만, 세월이 한참 지나서야 비로소 그분들의 말씀이 위로뿐만 아니라 실제로 그렇다는 것을 깨닫곤 합니다.

「철학 카페에서 시 읽기」(김용규)에서 저자는 독일의 현상학자 니콜라이 하르트만의 말을 전합니다.

"고난도 가치다. 고난이 어째서 가치냐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사실 불행을 견뎌 낼 능력이 없는 사람에게 고난은 가치가 아닐 거다. 그러나 그것을 견뎌 낼 만큼 충분히 강한 사람은 고난을 통해 스스로 강해진다. 곧 그의 인간성과 도덕성이 증대된다. 이런 사람에게는 고난이 또한 가치다."

"우리는 고난을 통해 자신의 마음의 깊이뿐만 아니라 남의 마음의 깊이도 알게 된다. 아니, 인생 전체의 깊이를 알게 된다. 가치를 판단하는 눈이 확장되고 예민하게 된다. 고난을 통해 인격이 높아짐과 동시에 행복을 누릴 수 있는 능력도 커진다. 위대한 고난을 거친 뒤에 얻는 엄청난 기쁨과 행복감, 그가 스스로 취한 것은 고난이었는데, 구하지 아니한 행복이 그에게 주어진다."

이 글을 접하면서 제 지인들을 떠올려 봤습니다. 참 곱게 나이 든 사람도 꽤 있습니다. 여유도 느껴지고 미소를 잃지 않는 사람, 갑작스러운 일에도 당황하지 않고 차분히 해결하는 사람, 의견이 다를 때도 귀를 기울이며 분위기를 해치지 않는 사람, 이런 사람들을 볼 때마다 걱정거리가 하나도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과거를 들어보면 상상도 하기 힘든 고난과 고통을 겪었다는 것이 놀라웠습니다. 그들이 겪었던 고통이 영글어 ‘지혜’가 됐던 겁니다. 어쩌면 이것이 삶의 이치는 아닐까요? 이것은 사람뿐만 아니라 살아있는 모든 존재에게도 적용되는 이치이기도 합니다. 장석주 시인은 ‘대추 한 알’이란 시를 통해 그 이치를 알려 주고 있습니다.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저게 저 혼자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날이 들어서서/ 둥글게 만드는 것일 게다// 대추 나무야/ 너는 세상과 통하였구나."

대추나무에 열린 수많은 대추 한 알에서도 이런 멋지고도 깊은 깨달음을 발견해 내는 시인의 혜안이 놀랍기만 합니다.

「무지개 원리」의 저자인 차동엽 신부님은 "낙관론자는 위기에서 기회를 보지만 비관론자는 매번 기회가 와도 고난을 본다"는 윈스턴 처칠의 말을 인용하면서 이런 설명을 덧붙였습니다.

유대인인 레비 스트라우스(Levi Strauss)는 미국으로 가서 뉴욕의 주택들을 찾아다니며 직물 판매 일을 하다가 샌프란시스코로 이주해 금광 주변에서 천막 만드는 일을 했습니다.

어느 날, 군납업자가 그에게 10만여 개 분량의 대형 천막에 쓰일 천을 납품하도록 주선하겠다고 제의하자 큰 빚을 내어 공장과 직공을 늘리고 생산에 몰두해 주문량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군납의 길이 막혀 천막에 쓰일 천은 모두 쓰레기가 될 판이 됐고, 회사는 파산 직전까지 갔습니다. 

어느 날 주점에 들른 그는 광부들이 해진 바지를 꿰매는 모습을 보고는 무심코 ‘바지 천이 모두 닳았군. 질긴 천막 천을 쓰면 좀처럼 떨어지지 않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두껍고 튼튼한 천막 천을 잘라 세계 최초로 청바지를 만들었습니다. 그러자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갔습니다. 

‘리바이스’라는 세계적인 회사는 이렇게 탄생했습니다. 레비 스트라우스에게 파산이란 위기는 오히려 놀라운 기회가 됐던 겁니다.

만약 우리가 ‘대추 한 알’과 ‘청바지’에 담긴 지혜, 즉 고통은 성공의 씨앗임을 확신할 수만 있다면 누구라도 현재 겪는 고통을 회피할 필요는 없겠지요. 왜냐하면 그것이 우리를 더 성장하고 성숙시킬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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