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휴대전화로 라디오도 듣고 TV도 볼 수 있는 첨단의 시대를 달리고 있지만 그리 멀지 않은 20∼30년전엔 라면상자 크기의 진공관 라디오가 어지간한 집엔 한 대씩 있었다. 동영상이 나왔던 TV가 비싸고 보급이 잘 안됐던 시절인지라 라디오는 귀한 물건으로 대접받았다. 농촌에서는 애타게 기다리는 비 소식을 알 수 있었으며 구수하게 들려오는 유행가와 만담 그리고 연속극은 지금의 TV연속극에 버금가는 인기를 누렸다. 지금은 라디오를 운전하면서 듣는 게 고작이지만 당시에는 아버지, 어머니의 애장품이기도 했다. 지금도 당시에 방송됐던 `전설따라 삼천리'나 `방랑객 김삿갓' 등은 잊혀지지 않는 프로다. 우리나라에 라디오가 처음 들어온 것은 일제시대인 지난 1927년 경성방송국이 출력 1㎾, 주파수 870kHz로 수신기는 혼자만 귀에 대고 들을 수 있었다고 한다. 6·25 이후 민간방송과 상업방송이 활성화되기 시작하면서 민간방송인 기독교방송이 개국하고 이어 문화방송과 동아방송 등이 잇따라 개국하면서 라디오 프로그램이 다양해졌다. 그렇게 변화를 거듭한 라디오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그래도 60∼70년대까지만 해도 서민의 애환을 담아왔었다. 또 전쟁의 상처를 치유하며 희망찬 삶을 얘기했던 최신 유행가요를 따라 배우는 노래방 기기 겸 교습소이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의 라디오 프로는 연예인들의 신변잡기식 잡담과 개그식 수다가 점령해 버렸고 인기가수 등 연예인들의 이해할 수 없는 말장난으로 가득찬 공해가 돼 버렸다. 얼마전 서울에서는 사상 첫 라디오에 대한 토론회가 열려 라디오 방송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 쏟아졌다고 한다. 라디오의 음악프로 대부분은 인기가요 위주로 진행돼 청취자의 선택폭을 빼앗는 결과를 낳았고 방송사들은 연예인 권력중심으로 프로를 편성한다는 지적이다. 그 옛날 구수한 입담을 과시하며 서민들의 애환을 풀어냈던 라디오 프로가 그리운 것은 앞만 보고 뛰어갈 것을 다그치는 현실을 잠시나마 벗어나고픈 희망 때문일 게다. 많은 사람들이 원하고 있을 것인데 그런 프로그램을 왜 못 만드는지 안타까운 마음은 그 옛날의 라디오 프로그램이 그립다.(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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