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회가 다양화되고 디지털문화가 급속하게 확산되면서 복합적인 정보를 필요로 하는 지금에도 우리의 사유체계에서 변하지 않는 인식 중의 하나가 사물을 흑과 백으로만 구분하려는 이분법적 사고가 아닌가 싶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과거사 청산문제, 친일·용공문제, 국보법 철폐문제, 행정수도 이전문제 등에서도 이분법적 사고로 치닫고 있어 안타까울 뿐만 아니라 시대의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는 듯한 느낌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이분법적 사고는 본질 제대로 파악 못해

 
한때 역사상의 라이벌이라는 대전제하에 동시대의 대립되는 인물을 설정해 그들의 시대를 이해하고 인물에 대한 평가를 해 봄으로써 역사적 교훈을 취하고자 하는 방법론이 유행하기도 했다. 그리하여 예를 들면 원효와 의상의 인물비교를 통해 일반인들도 어려운 불교사상에 관심을 가지는 계기가 됐고, 또 신사임당과 허난설헌을 비교해 봄으로써 전근대시기의 이상적인 여성상이 제시되기도 했다. 더구나 대립된 두 인물의 이분법적 배치구도가 권선징악적 사고에 익숙한 일반인들의 흥미를 유발시킴으로써 TV 역사극의 소재로도 지금까지 활용되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인물을 통한 이분법적 역사이해가 주는 사고의 편협함도 커서 자칫 그 호불호(好不好)의 잣대로 평가해 역사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면 고려 인종대 묘청과 김부식, 여말선초의 유학자 정몽주와 정도전, 세조대 성삼문과 신숙주, 선조대의 이순신과 원균 등의 경우가 지금까지도 종종 세인들에게 회자되고 있는데, 기왕에 나와 있는 이들에 대한 평가는 자연 흑과 백, 긍정과 부정의 대립적 구도를 이루고 있다. 고려 인종대 묘청의 서경천도운동은 금나라에 대한 적극적 북진정책으로 인식돼 이것이 신채호에 의해 `우리 역사상 천년에 한번 있을 대사건'으로까지 평가되고 있는 반면, 이를 무력으로 진압한 김부식은 그가 편찬을 주도한 <삼국사기>와 함께 사대주의의 표상으로 평가되고 있다.
 
특히, 왕조의 교체나 왕권의 승계과정에서 보여지는 인물들의 상반된 입장 차이는 적절한 이분법적 대립구도를 뒷받침하는 좋은 예가 되고 있다. 즉, 고려 말 조선 초기 왕조교체 과정에서 고려왕조를 유지하며 점진적인 개혁을 주장하는 정몽주는 온건적 개혁론자로 비춰진 반면 적극적인 현실개혁으로 새 왕조를 구축하자는 정도전은 급진적 개혁론자로 평가되고 있다. 이러한 것은 같은 집현전 학사출신인 신숙주와 성삼문이 수양대군의 왕위찬탈을 두고 이에 가담했던 신숙주는 변절자로 규정되고, 가담치 않았던 성삼문은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상징이 된 시각에도 적용되고 있다. 또 각 당(?)의 당리당략이 점철됐던 시기로 평가되는 선조대, 임진왜란이라는 국가의 총체적 위기에 이순신은 백의종군했던 우국충절의 충신으로, 그 반대편인 원균은 자리보존에 급급해 이순신을 모함했던 치졸한 인물로 묘사되고 있다.
 
그러나 묘청이 추진한 서경천도운동이 한편으로 자신의 정권획득 욕심의 발로였음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우리는 심사숙고해야 할 것이며, 신채호가 묘청의 자주성을 적극 앞세울 수밖에 없었던 일제시대라는 시대배경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왕조교체에 따른 개인의 급진적 개혁성향과 온건적 보수성향의 문제 역시 그 객관성을 도출하기 위해서는 평가하고자 하는 우리의 현재적 관점만이 아니라 당시 시대상황에 대한 보다 분석적이고 선험적인 이해가 있어야 할 것이다. 또 대립된 인물 외에 이들을 둘러싼 제3의 인물을 통한 중도적 해결책이 없었는지 고민해야 할 것이다. 더구나 임진왜란이 끝난 후 전쟁의 공과를 논하면서 <수정선조실록>에 백의종군한 이순신과 모함을 일삼았던 원균이 나란히 1등 공신으로 기록돼 있는 사실은 우리에게 이분법적 사고가 갖는 판단의 위험성을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것이다.


역사를 통해 다양한 평가 이끌어야

 
무엇보다 이러한 이분법적 대립구도는 자칫 역사의 진실을 외면하는 어리석음을 범하게 하고, 정(正)·반(反)·합(合)으로 도출돼야 할 중용(中庸)적 객관성을 잃어버리게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역사를 통해서 다양한 평가를 이끌어내는 노력을 해야 한다. 더구나 이러한 평가는 어떤 한 시기의 사유체계로 완전히 정리될 수 없으며, 정리돼서도 안 될 것이다. 왜냐하면 현재 우리가 고민하고 있는 모든 역사적인 평가문제들을 미래의 우리 후손들이 과연 어떻게 평가할지 이 역시 우리가 역사 앞에 진지해질 수밖에 없는 또 다른 과제이기 때문이다.

강옥엽 인천시 역사자료관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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