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르비아와 보스니아 사이의 전장. 한차례 총격전이 치러진 뒤 양 진영의 한복판에 세 명의 군인이 남겨진다.

세르비아 병사가 한 명인데 비해 보스니아 병사는 두 명. 하지만 이 중 보스니아 병사 한 명은 등으로 지뢰를 누른 채 하늘을 보고 누워있는 형편이니 일종의 힘의 균형 상태가 유지된다.

다음달 3일 개봉하는 영화 `로 맨스 랜드'(No Man's Land, 수입 백두대간)는 안보고 그냥 지나치면 아쉬울 진흙 속의 진주 같은 영화다. 가벼운 듯 기발한 말장난과 유머를 유쾌하게 지켜보다 보면 전쟁에 대한 감독의 철학이 느껴지고 조금씩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줄거리를 쫓아가다 보면 전쟁의 참상은 어떤 다큐멘터리보다 더 강한 충격으로 전달된다.

감독은 보스니아 출신으로 전쟁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던 다니스 타노비치.첫 장편 극영화인 이 영화로 아카데미와 골든글로브 외국어 영화상, 칸영화제 각본상 등 세계 주요 영화제를 휩쓸다시피 했다.

`노 맨스 랜드'에 고립된 세 명의 군인. 잠시 서로에게 마음을 열기도 하지만 결국 적일 수밖에 없다. 지뢰 위에 누워있는 보스니아 군인(필립 소바고비치)은 빨리 누군가 지뢰를 제거해 이 억세게 나쁜 운에서 해방되기만을 기다릴 뿐. 다른 보스니아 남자(브랑코 주리치)가 동료를 구하고 싶은 반면, 세르비아 남자(레네 비토라야츠)는 무조건 탈출만 하면 되니 서로 입장도 다르다.

그러던 중 UN 평화유지군이 사태 해결에 나서고 이 사실을 알게 된 외신들은 특종을 낚기 위해 모여들면서 상황은 더 복잡하게 꼬여간다.

간단치 않은 소재와 가볍지 않은 주제를 가진 까닭에 영화를 진지하게만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첫 장면에서 주제 넘게 르완다 난민 사태를 걱정하는 군인의 모습을 보여주며 상식을 가볍게 뛰어 넘더니, 지뢰를 깔고 누운 남자는 화장실에 가고 싶다며 울먹여 다른 두 군인을 공포에 떨게 한다. 적이라는 사실도 잠시 잊고 `알고 보니 옛 연인의 대학 동기'라며 반가워하는 보스니아 군인의 모습도 아이러니하다.

하지만, 마치 희극 속의 비극이 더 강한 슬픔을 주듯, 이런 식의 황당함은 오히려 뒤에 잇따라오는 잔인한 현실과 감독의 비판의식을 더 날카롭게 한다.

기자들은 특종에만 혈안이 된 채 비인간적인 행동을 일삼고, 뒤늦게 뛰어든 UN군은 `복지부동'의 극치를 보여준다. 잠시 긴장을 풀고 친교의 시간을 갖지만 제한된 공간 속의 적들은 조금이라도 자신의 이익과 관련된 일이 터지면 180도 돌변해 으르렁거릴 뿐. 코미디의 옷을 입고 시치미를 떼던 영화는 보는 이의 마음을 싸늘하게 만들 정도로 잔인한 결론도 준비하고 있다. 전체관람가. 상영시간 98분. 서울 광화문의 시네큐브를 비롯해 전국 10개 스크린에서 상영된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