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정부정책 국민 고통으로 대신
 
인천시 서구청장 이학재


가을인가 싶더니 어느새 날씨가 추워졌습니다. 집 없고 어려운 생활의 서민들이 벌써 올 한해 겨울나기 걱정을 시작한 이맘때, 서울 강남의 집값이 또 사회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올봄 폭등현상을 빚었던 강남의 주택가격이 정부의 강력한 억제정책으로 한동안 주춤했지만 올 여름 들며 다시 급등세를 타기 시작하면서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말처럼 정부는 부랴부랴 `집값잡기' 특별 대책을 또 내놓았습니다.

정부는 지난해 5월23일 이른바 `5·23조치'로 불리는 주택경기 활성화대책을 발표하였습니다. 내용은 2003년 6월까지 전용면적 50평이하 분양금 6억원 이하의 모든 신축주택 구입자(미분양 포함, 단 분양권은 제외)에 대해서 5년이내 매도할 경우 양도소득세를 완전 면제(등기할 경우)해주고, 전용면적 25.7평 이하의 경우에는 취득세 일부 감면도 해준다는 정말 획기적인 조치로 집을 이미 여러 채 갖고 있는 사람도 세금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지난해 5월은 이른바 춥고 배고픈 `IMF 시절'도 아니고 주택경기도 그럭저럭 살아날 조짐을 보였지만 정부는 이런 조치가 아파트 가격 상승이란 불꽃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되어 강남의 이른바 돈 있는 사람들은 `세금 걱정'이 없어지자 수천만원의 프리미엄을 주고라도 분양권을 마구 사들였고, 강남의 아파트 가격 폭등은 서울을 넘어 전국적으로 그 여파가 미쳤습니다.

아파트가 품귀현상을 빚자 건설회사들은 때를 만난듯 자율화된 분양가를 마음껏 올렸고 이런 높은 분양가가 집값 상승을 부추긴다는 지적들이 작년부터 쏟아지기 시작했지만 그래도 아파트는 없어 못 팔았습니다. 물론 주택경기는 너무나도(?) 살아났지만 반대로 서민들이 집 마련할 기회는 그만큼 줄어들면서 아파트 분양은 마치 `복권구입'처럼 되자 서민들도 이른바 `묻지마 청약'에 가담했습니다.

정부는 뒤늦게 세무조사라는 전가의 보도와 함께 실거래가 6억원 이상의 고가 아파트에 대하여 양도세를 무겁게 한다는 대책을 마련하였지만 이미 때는 늦었습니다.

결국 1년여를 넘게 이어온 `집값 대란'은 이땅의 젊은이들의 사기를 크게 꺾어 놓았습니다. 이미 그들은 주택 구입을 거의 포기했습니다. 평범한 월급쟁이 수입으로 수억원대의 아파트를 사기 위해서는 수십년간을 꼬박꼬박 모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증시는 `자본주의의 꽃'이라고 불립니다. 자본주의 사회의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그 나라의 경제 수준, 경기동향, 기업활동, 국민경제 수준을 그대로 반영하는 척도로, 우리의 정부도 이 때문에 증시가 침체되면 각종 부양책을 내놓고 주가를 끌어 올리기 위해 노력합니다.

2000년도 연말에 정부는 `비과세 근로자주식저축'이라는 카드를 내놨습니다. 근로자들이 이 저축에 가입하면 세금을 감면해준다는 것입니다. 근로자들 입장에서는 혹하는 얘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 때문에 각 회사에서는 주식저축 계좌를 만드는 것이 유행이었습니다. 증권업협회의 집계를 보면 이 제도가 시행된 이후 불과 1주일여 동안 4만천여좌가 개설돼 6천200억원이 모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제도가 만들어진 당초 취지가 근로자를 도와주려는 것이 아니라 주가 분양을 위한 것이니 만큼 주식저축에 가입을 하더라고 세금혜택을 받으려면 예택금액의 30%이상으로 반드시 주식을 사서 주식투자를 해야 했습니다.

`주식투자는 투기'라고 생각하면서 꼬박꼬박 저축만 해오던 상당수의 순박한 근로자들이 주식 투자에 손을 대기 시작했고, 주식투자가 뭔지 모르던 사람이 주식에 맛을 들이기 사작하면서 이리저리 돈을 끌어들여 주식투자를 하다가 손해를 보는 경우가 많이 생겼습니다.

당시 증시를 부양해야 하는 정부의 절박한 심정이나, 경제활성화를 위한 건설 경기 붐 조성도 이해합니다. 그러나 경기를 부양하고 활성화하는 방법은 신중해야만 합니다.

한시적인 제도나 단기적인 부양책이 다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장기적인 정책 추진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문제점을 보완 해결하면서 상승기류의 촉매 역할을 가능케도 합니다. 다만, 이러한 잘못된 정책의 시행으로 인한 폐해가 국민에게 심각한 부담과 부작용을 유발시킨다면 시행하지 아니함만 못하기 때문입니다.

정부는 향후 각종 정책 수립 시행시 초기 입안부터 국민에게 미치는 긍·부정적 파급효과는 물론 시행후 발생될 문제점에 대해서는 제2, 제3의 대책까지 세밀히 분석 수립하여 국민에게 파장되는 악영향을 최소화하여야 합니다. 정부 정책이 잘못됐을 경우 4천700만 국민이 피해를 봅니다. `공적자금', `의약분업'의 예에서 보듯이 잘못된 정책은 정말 엄청난 해악을 끼칩니다. 지방자치단체의 행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잘못된 정책으로 인한 폐해를 정상으로 돌려놓기까지 국민의 고통이 얼마나 큰 것인지 우리는 지난 IMF 사태로 교훈을 얻었습니다. 이제는 정말 정부가 국민의 고통을 담보 삼아 정책을 시험하는 그런 우를 벗어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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