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 사회는 `과거사청산문제'와 맞물려 `일본의 독도망언', `일본교과서왜곡문제', `중국의 고구려사편입문제' 등으로 인해 역사교육의 필요성을 어느 때보다 많이 실감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역사교육 강화에 대한 절실함은 항상 그렇듯 국제간의 문제가 대두될 때만 잠시 우리들의 관심 대상이었다가 곧 일상으로 되돌아가곤 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보니 역사교육의 강화에 거는 기대와는 달리 사회적 제반 여건은 여전히 답보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단적으로 외무·행정고시 필기고사에서 국사시험이 사라지고, 국회 사무처 공무원을 선발하는 입법고시와 각급 법원 공무원을 뽑는 법원행정고시는 올해부터 국사 과목을 치르지 않는다. 사법시험에선 이미 1997년 국사 과목이 빠졌다. 수능시험도 7차 교육과정에 따라 국사는 사회탐구 선택과목 중 하나가 되어버렸다. 이는 2002년 시행된 7차 교육과정에서 고교의 경우 1학년 때 조선 후기까지만 학습하고 이후의 근·현대사는 2학년 때 선택으로 배우게 하고 있는데, 특히 수능에서 국사가 사회탐구영역 11개 선택과목 중 하나로 돼 있어 학생들은 근·현대사를 모르고 대학에 진학하는 상황이다. 대학에서도 국사가 선택과목이 된 지 오래여서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한편, 최근에 제기된 일련의 역사문제에 자극된 여론에 힘입어 교육부총리 자문기구인 국사교육발전위원회가 “국사가 수능에서 선택과목으로 밀려나고 사법고시에 이어 행정·외무고시 등의 국가고시에서 제외되는 등 홀대받고 있다”며 “시험 위주로 교육이 이뤄지는 현실에서 국사교육을 강화하기 위해 국사과목의 독립교과 전환 및 필수화, 수업시간 확대 등을 골자로 한 `초·중·고 국사교육 현황과 발전방안'을 확정했다. 그래서 제8차 교육과정부터 일선 학교 교육과정에 반영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했다고 한다. 이에 따르면 국사·세계사를 묶어 `역사' 과목으로 독립시키고, 국사 수업시간을 주당 현재 2시간에서 3시간으로 확대하며 대학에서 국사를 교양필수 과목으로 권장한다는 것이다. 또 사법고시 등 국가고시에서 국사과목을 부활시키고, 역사 전공 교사의 확보와 지원 및 새 국사 교과서 개발의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조처가 어떤 실효성을 가져올 지 기대 이전에 의구심이 든다. 역사교육에 거는 `기대'와 달리 `현실적 괴리감'이 생겨나는 양면적 사회구조에는 `시험'이라는 걸림돌이 개재돼 있다. 지금의 모든 교육이 그렇듯 교육적 가치를 `시험'을 통해 평가하고, 이러한 평가의 궁극적 종착점을 대학입시나 그 경제적 효용성에 귀결시키다보니 역사교육은 당장에 경제적 가치를 산출할 수 없는 과목으로 치부되어 현실성 없는 학문으로 비춰지게 된 것이다. 더구나 일각에서는 `세계화'라는 시대조류 속에 국사의 민족주의적 요소가 국민의 의식과 학문발전을 제약하는 `억압'으로 간주되기도 해 탈민족주의적 역사관을 강조하기에 이르렀으니, 지금이야말로 우리시대 역사교육의 의미와 그 정체성을 바로 세워야할 때가 아닌가 한다.

무엇보다 역사교육은 단답식의 시험으로 평가돼야 할 대상이 아니며, 더군다나 시간 수의 많고 적음으로 그 중요성이 대변돼서도 안 될 것이다. 초등학교부터 대학교육에 이르기까지 한 시간이든 두 시간이든 지속적이고 변함없이 배려돼야 한다는 점이 중요할 것이다. 각종 시험에 역사과목을 두는 이유도 각 과목마다의 역사적 연원을 찾아내고 그 체계적 변천 과정을 통해 오늘에 이르는 의미를 밝혀서 미래상을 제시해 줄 수 있는 근원이 되는 `종(宗)'적 의의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에 `왜 역사가 반드시 시험과목에 들어가야 하는가' 하는 원초적인 물음은 이미 진부한 논의이며, 그 평가방식 역시 암기를 통해 여러 개 중에서 하나를 고르는 지식측정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미 학교생활 중에 역사적 평가를 겸한 논문작성이나 문화유산에 대한 현지조사와 보고서 등의 과제물을 제출케 해 단지 수능 과목으로서가 아니라 수능 이전에 수행평가와 같이 학교생활 중에 자연스럽게 습득돼야 하는 과목으로 관리돼야 할 것이다. 국가고시에서도 역사의 단편적인 지식을 측정하는 형식적 시험이 아니라 그 연원과 변천과정, 역사적 의미와 평가 등을 끌어낼 수 있는 논술식이나 토론식의 시험방안을 마련해야 될 것이다. 적어도 우리를 둘러싼 국제적 혹은 동북아의 역사적 모순과 갈등이 청산될 때까지 역사교육이 우리의 정체성 확립의 바탕이 되기 때문이다.

강옥엽 인천시 역사자료관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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