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버스와 전철을 즐겨 탄다. 요즘 이런 여성도 있나 하겠지만 운전을 할 줄 몰라 걷기 아니면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그래서 목적지가 어디든 가능한 대중교통수단은 죄다 이용한다.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대한민국에서 애국 정도는 아니지만 교통체증을 줄이는 데 한 몫을 하니 그래도 괜찮지 않은가.

버스나 전철을 타면 고의는 아니지만 종종 승객들의 대화를 듣게 된다. 토론회라는 형식과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그들의 대화 속에서 우리사회의 경직성과 변화에 대한 두려움, 왜곡, 어떤 조직의 의식수준 등 우리사회 단상들을 읽을 수 있다. 때로 예의없이 울리는 휴대전화 소리와 통화 목소리가 짜증스럽긴 하지만 학생부터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그들 일상의 고달픔과 기쁨, 하루의 일과를 듣는 것은 재미있는 일이다.

        

여학생들의 종아리 멍자국

며칠 전 버스를 타기 위해 줄 서 있을 때 치마를 입은 한 무리의 여학생들을 만났다. 70~80년대 숱하게 종아리를 맞았던 기억이 되살아 난 것은 바로 이때였다. 퍼렇게, 그것도 한 줄이 아니라 몽둥이(혹자는 회초리라고)의 크기를 짐작케 하는 여러 줄의 퍼런 멍자국을 보며 치마가 아닌 바지를 입으면 가릴 수 있을 텐데 하는 마음이 들다 곧 분노로 바뀌고 말았다.

성적이 떨어졌든지 아니면 지각을 했든지, 수업시간 딴 짓을 하다 꾸중을 들은 것이 체벌로 이어졌든지 했을 것이다.

하여간 아이들은 버스를 타자마자 학교에서 있었던 교사의 체벌과 중학교에서 매 맞은 경험을 이야기하며 조용한 버스 안을 긴장하게 만들었다. 고문 기술자 이근안을 능가하진 않겠지만 다양한 방법의 체벌에 그만 입이 딱 벌어지고 말았으니 고통을 최대화하고 상처 부위를 최소화하는 기술이 여전히 학교 안에서 사라지지 않고 있다는 것에 어이가 없었다. 학생을 학생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학교 구성을 위한 소모품으로 보는 것은 아닌가 할 정도로 아이들은 각종 매에 (누구는 `사랑의 매'라고 미화시키지만)길들여져 대화의 즐거운(?) 주제가 될 정도다. 그러면서 학생들은 `내가 매 맞는 것보다, 친구가 매 맞는 것을 보는 것이 더 공포스럽다'고 한다. 아마 학부모들은 `맞을 짓 했으니 당연히 맞은 것'이라 이야기 하겠지. 아이들은 자신의 몸을 피할 초라한 우산조차 갖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얼마 전 학부모 총회 때 학교장은 학생들이 매 맞는 것을 두고 `사랑의 매'라고 생각하고 이러쿵저러쿵 민원의 소지가 있는 항의전화는 하지 말라며 초반부터 신입학부모의 기를 죽인다. 학교 밖에선 `학생의 인권보호와 인격존중' 구호를, 학교 안에선 `아름다운 인성과 인격'을 가르치겠다고 한다. 이게 뭔가. 아이들은 `사랑의 매'로 포장된 폭력적 체벌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돼 있고 어른들은 이를 미화시키고 있지 않은가. 체벌을 통제의 용이한 수단으로 사용하면서, 인터넷을 달군 일진회와 학교폭력에 대해 큰일이라며 호들갑을 떠는 모습은 참으로 이중적이다. 모두 순진한 척하고 있으니.

        

잘못 포장된 폭력 체벌 사라져야

그렇다고 학생들의 폭력적 행동과 조직을 두둔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학교 안의 `고통 최대화'에서부터 화풀이 대용으로 존재하는 학교 밖의 각종 유혹에 이르기까지 이미 언제 어떻게 폭발할 지 모를 지뢰밭에 학생들이 일상적으로 노출돼 있는 데 대한 어른들의 책임을 물으려 하는 것이다. 학생을 대상으로 언제까지 어른들이 싸움을 할 것인가.

사랑의 매에 익숙해져 가는 것을 고등학생인 내 아이에게서 보는 것은 그리 오래지 않을 것 같다. 인권과 인격이 왜 소중한 지 가르치기도 전에 우리 아이는 오늘도 집에 돌아와 실신한 채 잠이 들어버렸다.

박인옥 참교육학부모회 전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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