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 1 `줄기세포'로 배양한 심장을 이식받아 새 삶을 찾은 학교 교사 K씨. 정기적으로 복용하고 있는 `나노캡슐-스마트 약'이 혈관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유해바이러스를 퇴치해 주고 있다 생각하니 여간 안심이 되는 게 아니다. `바이오 칩'을 통해 전신의 건강상태가 주치의의 데이터베이스로 전송되자 10분도 안되어 건강지도가 개인모바일로 전송되어져 왔다. 고지혈증 치료를 위해 투약했던 나노미터(10억분의 1m)크기의 `혈관 청소용 로봇(나노로봇)'이 정상적으로 자가 복제를 마쳐 활성화되기 시작했다는 연락이 가장 반가웠다. 거실에는 감수성 풍부한 입양로봇이 내일 있을 퀴즈경연대회의 긴장을 풀기위해 단전호흡을 하고 있다. 출근준비를 마친 K씨는 무연회전익기(無煙回轉翼機)를 호출해 올라탄 뒤 편안하게 등받이를 뒤로하고 눕는다. 천정의 모니터를 통해 교실과 연결, 3분후 도착할 것을 알리고 자습용 프로그램을 전송한다. 전지자동차는 소리 없이 하늘로 날아오른다.
 

만화처럼 느껴지는 이 가상 시나리오는 국가과학기술위원회 기술예측위원회(위원장 황우석 서울대 교수)가 2003년 8월부터 올 2월까지 국내 과학기술 전문가 5천여 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작성, 지난 17일 내놓은 `과학기술 예측조사'에 담긴 내용들로 그려본 2020년 무렵 우리의 일상그림이다. 무병장수(無病長壽)의 세상이 1세대를 넘어가기도 전에 우리 앞에 펼쳐진다는 것이다. 과학기술의 발달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막연히 상상 속에서나 가능했던, 생로병사의 고통이 없는 삶이 현실로 다가서고 있는 것이다.

역사이야기를 하면서 빠지지 않는 것이 보편성과 특수성 문제이다. 위의 상황도 보편성에 입각해서 보면 얼마든지 실현가능한 이야기이다. 그런데 특수성 문제와 관련지어 생각하면 이런 세상이 오기도 전에 우리는 원치 않는 불행을 맞을 수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지구의 이상기후 현상으로 인한 변화이다. 기후의 변화는 이전에도 있어 왔고, 이후에도 계속되어 질 것이다. 그런데 그 변화라는 것이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이루어지고, 인간은 발달된 과학기술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기후변화에 속수무책이다. 물론 앞서 보고된 예측조사에는 그 변화에 대응하는 내용도 담고 있다. 그런데 이 기후변화는 우리들이 세워 놓은 대비책을 써 볼 틈도 주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최근 몇 년 사이 우리는 세계의 뉴스채널을 통해 이런 기후변화로 인해 지구촌에 닥친 불행을 수없이 접했다. 우리나라도 결코 이런 변화에서 예외가 아니었다. 지난해 기상청 기상연구소가 내놓은 보고서에 의하면 과거 100년 동안 한반도 연평균 기온 상승률은 1.5도였다. 1년 뒤인 지난 3월, 향후 100년 동안 한반도는 4~6도의 기온상승을 보이게 되어 부산에서는 겨울이 없어질 수도 있다는 연구보고까지 나왔다. 4도라면 지금의 서울과 서귀포시의 연평균 기온 차이에 해당한다. 때문에 지구 온난화에 의한 기온상승으로 한반도에서도 이상기후가 빈번히 발생하고 강도도 더해져 국가 차원의 대책이 시급히 요구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물론 지구 온난화로 인한 기상이변이 전적으로 인간의 직접적인 잘못으로만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라 빙하, 바다, 태양 등 심지어 은하계의 변화로 인한 요인을 배제하기는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현실은 이상과 우려만이 혼재하고 아무런 대안이 없어 보인다. 인간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우리 앞에 놓인 세상은 불확실성이 가득하다. 지금 우리 앞에 놓인 기상이변이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니라, 심각하다는 것을 예고하고 있는데 아무도 귀 기울여 듣고 있는 것 같지 않다. 매일같이 신문 방송은 그날그날뿐 아니라 한 달 동안의 기상도 예측해 전하고 있지만, 깊이 있는 기후변화의 심각성에 대해서 말하는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20년 후에 무병장수의 세상이 열리는데 기상이변으로 재앙이 닥친다면 그간의 노력은 허사가 될 것이 아닌가? 닥친 집중호우가 지나가고 나면 人災다 天災다 의례적인 논란도 잠깐, 불가항력적 기상이변으로 치부하고 그냥 묻어 버린다. 한 여름의 폭염도 마찬가지이다. 기상이변이라고들 하면서도 정작 왜 이런 이변이 일어나고 있고 그에 대한 대책은 무엇인가 적극적으로 고민하지 않는다.

무병장수라는 핑크빛 이상세계와 기상변화로 인한 인류재앙이 한 스크린 안에 같이 보여지고 있다. 인체장기의 불치병은 나노기술이 잡는다는 데, 미래기상안전불감증이라는 불치병은 어떤 획기적인 과학기술로 치료할 수 있을까.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떠오르는 생각이 최근 화제로 떠오르는 영화 `안녕, 형아'이다. 이 제목에서 우리는 무엇을 읽고 있는가? 슬픔(Good Bye)인가? 희망(Hi)인가?

김상태(한국학중앙연구원 연구원, 인천사연구소 소장)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