땀으로 적삼이 젖은 나그네가 지친 표정으로 물 한 바가지 청할 때, 우물가 버드나무에서 잎 하나를 따 동동 띄워 권했다는 아낙의 이야기가 있듯, 버드나무는 수분이 많은 곳을 좋아한다. 멀찌감치 떨어져 보면 버드나무 잎처럼 보일까. 갯버들이나 버드나무가 늘어진 중상류 맑고 차가운 하천에 무리 지어 사는 버들치는 1급수 하천을 상징한다. 그런데, 버들치는 백두대간에서 동해로 빠져나가는 하천에는 살지 못한다. 하천에 오염 때문이 아니다. 동네가 다르다. 버들치와 매우 비슷한 버들개가 산다.

동국이상국집에서 고려의 문장가 이규보가 읊은 시가 최초 기록이라는 순무가 언제부터 재배되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순무는 강화도에서 싹터야 본래의 맛이 살아난다는 사실이다. 순무가 강화에서 유독 잘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강화농협은 따뜻하면서 서늘한 기후와 염분의 영향, 간척사업으로 만든 경작지에 플랑크톤의 사체가 많다는 점, 그리고 오염되지 않은 물을 이용한다는 점을 꼽고 있는데, 지리적인 이유가 있을 법하다. 나박김치에 들어가는 무보다 듬성듬성 썬 순무 사이에 앞뒤로 바른 밴댕이 살을 넣고, 갖은 양념과 고춧가루로 버무려 담근 강화순무김치는 아무튼 기가 막힌다.

5월과 6월이 제철인 밴댕이도 강화에서 주로 잡힌다. 강화군 서도면에 위치하는 볼음도의 모래 많이 섞인 갯벌 해안이 밴댕이 주산지로, 물 빠진 바닷가를 멀리 가로막은 그물에서 하루에 두 차례, 키보다 높게 올린 경운기 적재함 가득 볼음도 어부는 강화의 오랜 특산물을 육지로 연실 실어 나른다. 요즘은 사정이 많이 바뀌었지만 오징어는 울릉도, 조기는 법성포, 사과는 문경, 복숭아는 소사에서 생산된 것을 알아주었다. 고추장이 순창이라면, 유자차는 거제농협에서 자랑하고, 까나리 액젓은 안면도와 백령도가 경합을 벌인다. 누가 뭐라 해도 감귤은 제주도일 것이다.

멸종위기종인 수원 청개구리는 경기도 일대의 낮은 평야지대에 제한 분포하는데 한결같이 개발 압력이 심한 곳이다. 쌀이 남아돌아 휴경도 불사한다지만, 땅값 이유로 휴경을 빙자해 경기도 일원의 넓은 경작지를 농약 흥건한 골프장으로 개발한다면 또 한 종의 멸종위기종이 우리 세대에 사라질지 모른다. 백령도에는 물개, 정확하게 천연기념물 331호 물범이 산다. 황해도 해주가 보이는 인당수에 살짝 드러낸 물개바위에 국한하는 물범은 서해교전 이후 갑자기 식구가 늘었다지만 그래봐야 수백마리에 불과하다. 죽어 백령도로 밀려온 물범의 배를 열어보면 찢어진 비닐이 켜켜이 들어있다는데, 한강을 통해 떠밀려온 쓰레기를 자신이 좋아하는 해파리로 착각한 비극이라고 한다.

지역에 따라 분포하는 생물종이나 재배 가능한 농작물이 다른 현상을 학자들은 `생물지역주의(Bioregionalism)'로 칭한다. 학술용어의 등장과 관계없이, 환경에 따라 심는 농작물이 다르다는 것을 모르는 농부는 없다. 추수하는 농작물이 다르니 입맛과 식성이 다르고, 입맛과 식성이 다르니 경상도와 전라도의 음식문화가 같을 리 없었던 것. 음식문화가 다른 까닭에 춤도 노래도, 섬진강을 기준으로 기교가 넘치는 서편제는 힘을 바탕으로 하는 동편제와 다를 수 있었고, 삶의 방식인 문화도 차이났던 것이다.

함께 사는 곤충 때문에 성한 이파리가 드문 참나무와 달리 아카시아로 잘못 알고 있는 아카시아에는 해충이 없다. 외래종이기 때문이다. 해충이 없다면 환경과 어울리지 못한다는 의미다. 자급자족했던 환경과 문화를 무시하고 돈벌이를 위한 몇 가지 작물에 맞춰 경작 환경을 획일화 한 농촌은 살충제와 제초제없이 경영이 불가능하고, 아파트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패스트푸드 먹고 자란 세대는 자본이 제공하는 영상문화에 쉽게 포로가 된다. 식성과 언어는 물론 감탄사까지, 지구촌은 이제 단일문화로 획일화됐고 줄서기가 횡행한다. 환경에 우열이 없듯 문화에도 우열이 없는데, 왜 우리는 내 문화와 어우러지지 못하고 남의 문화에 줄서려 안달할까. 순무는 강화에서 감귤은 제주에서 구해야 하는데.

 

    박병상(인천 도시생태 환경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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