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8일로 예정된 새용산 국립중앙박물관(관장 이건무) 개관을 축하하기 위해 백제금동대향로와 훈민정음 해례본, 경주 황남대총 북분 출토 금관과 허리띠를 비롯해 명(名)과 실(實)이 상부(相符)하는 진짜 국보(國寶)들이 용산으로 속속 집결하기 시작했다.
 
개관 9일을 앞둔 19일, 이건무 관장은 “새용산박물관 상설전시실에는 중앙박물관 뿐 아니라 개인소장가 또는 사립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유물을 포함해 국보 59건, 보물 79건, 중요민속문화재 1건이 자리에 모임으로써 단일 규모로는 최다 지정문화재가 한자리에 모일 것”이라고 말했다.

`징발' 대상 기관에는 공·사립박물관과 미술관, 매장문화재 전문 발굴법인은 물론이고, 국립중앙박물관 직속 각 지방박물관이라고 예외가 없다.

이 때문에 국립부여박물관은 마스코트격인 부여 능산리 절터 출토 백제금동대향로와 사택지적비라는 양팔을 당분간 중앙에 내어주게 됐다. 같은 백제 전문 박물관이라고 할 수 있으나 무령왕릉 출토품으로 먹고 살다시피하는 국립공주박물관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1971년 발견되고 발굴된 공주 송산리 무령왕릉은 무령왕 뿐 아니라 그 왕비를 합장했으므로 `무령왕 부부릉'이라고 해야 한다. 한데 이번 용산박물관 개장을 위해 무령왕 부부는 잠시라곤 하지만 `별거'에 들어갔다.
 
머리를 장식했던 관식(국보 155호)과 `다리'(多利)라는 백제 장인이 제작했다는 명문이 남아있는 은제 팔찌(국보 160호), 시신 발받침대를 비롯한 왕비쪽 국보 유물들이 용산을 향해 떠났다.

용산박물관 개관을 위해 충남 지역 두 국립지방박물관이 감수해야 하는 `출혈'은 이처럼 크다. 그렇다고 `큰집' 잔치를 위한 일이니 대놓고 불평하기도 힘들다. 꼭 이번 일 때문은 아니지만, 공주박물관은 이참에 `무령왕릉 의존 일변도'에서 탈피하고자 하는 움직임을 본격화하고 있다. 마침 무령왕릉에 버금가는 공주 수촌리 고분군이 A급 유물들을 잔뜩 토해내는 바람에 박물관 주제 자체를 `무령왕릉 대 수촌리 고분군'으로 전환하고자 하고 있다.

명품이 즐비한 국립경주박물관은 상대적으로 느긋하다. “신라 금관이 총 6점인데 황남대총 북분 출토품(국보 191호) 한 점 중앙에 `빌려준다' 해서 무에 대수냐”고 반문한다.

국보 287호인 백제금동대향로는 서울 나들이가 11년만이다. 높이 64㎝, 무게 11.8㎏에 달하는 이 백제금동대향로는 1993년 10월에 출토된 뒤 94년 초에 서울에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대향로와 서울행을 같이 하는 사택지적비는 백제시대 유일한 석비로 백제 의자왕 때의 대신 사택지적(砂宅智積)이란 사람이 남긴 것으로 인생의 무상함을 노래하고 있다.

새용산박물관을 데뷔 무대로 활용한 문화유산도 다수가 된다.
 
2004년, 강원문화재연구소(연구실장 지현병)가 춘천시 신북읍 천전리 유적 조사에서 개가를 올린 청동기시대 화살촉이 박힌 화살대 뭉치가 그런가 하면, 전주 갈동초기철기시대 유적에서 무더기로 쏟아진 청동기 유물 일괄품도 그렇다. 경북 영천 용전리 유적 출토 초기철기시대 청동기물 일괄품과 공주 수촌리 토광묘 출토 초기철기시대 청동유물 일괄품도 이 대열에 합류했다.

대부분이 보존처리 중인 공주 수촌리 고분군 출토 다른 유물로는 중국제 도자기 1점(두 귀가 달리고 흑갈색이 도는 병)이 21세기 대한민국 국립박물관 개관을 축하하러 상경했다.

물을 건넌 유물도 있다. 일본 도쿄대박물관에서 다수 빌린 발해실 관련 유물들이 이 경우에 해당하며, 나아가 일본 나라국립박물관을 통해 14세기 고려불화들인 수월관음보살상 2점이 `귀국 나들이'를 하게 됐다. 역사실에는 좀처럼 만나기 힘든 전적류 문화재가 다수 출현한다. 간송미술관 소장품인 훈민정음 해례본(국보 70호)은 그 압권이다.
 
삼성출판박물관 소장 이승휴의 제왕운기(보물 1091호), 해남윤씨 종택 소장 윤선도의 어부사시사(보물 482호), 동아대박물관 소장 조선 태조 이성계의 심지백(沈之伯)에 대한 개국원종공신록권(開國原從功臣錄券·국보 69호)도 나들이를 한다.

조선 태종 3년 계미년(1403)에 주조한 동활자 `계미자'로 찍어낸 책 `북사상절'(北史詳節·국보 149호), 조선 현종 임금이 셋째딸 명안공주(1664~1687)에게 내린 간찰(보물 1220호), 구례 화엄사 화엄석경(보물 1040호), 아산 현충사 소장 이순신 장검도 용산행 티켓을 끊었다.

미술품으로는 손창근 소장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歲寒圖·국보 180호)와 전남 해남 윤선도 생가 소장인 공재 윤두서초상(국보 240호)은 명품 중의 명품으로 꼽힌다.

세한도는 총길이 10여m에 이르는 두루마리 대작인데 그 전체가 전시된다. 추사의 다른 작품인 묵란도도 함께 전시되며, 해인사 중건 때 쓴 그의 상량문도 해안사를 떠났다.

국립경주박물관에서는 황남대총 북분 금관 외에 통일신라 불교조각의 금자탑이라고 할 만한 감은사지 동탑 사리장엄구(舍利莊嚴具·보물 1359호)가 징발됐다.

세계 최고 목판인쇄물이라는 무구정광 대나라니경이 박물관 재개관 축하 행렬에 빠질 수는 없다. 다만, 보존문제가 있어 개관과 동시에 잠깐 공개하고는 다시 퇴장하게 된다. 이들 국보급 `대여품'만 해도 제대로 감상하려면 하루 관람으로 부족할 듯하다.

이건무 관장은 “새용산박물관은 관람 코스만 4㎞에 이르며, 대충 본다 해도 전체 관람에는 11시간이 소요될 것”이라면서 “한 번 찾고 마는 곳이 아니라 두고 두고 찾아와야 할 곳으로 탈바꿈할 것이며 이런 변신을 위해 우리 박물관은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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