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한 해가 지나가고 있다. 이맘 때면 한 해를 돌아보며 아쉽고 부족한 것들을 생각하곤 하지만 올해도 예 외는 아니다.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 좋은 일, 나쁜 일들이 섞여서 일어나고 감사해야 할 일도 많겠지만 특히 올 한해 국내의 여러 사건 등을 보면서 우리에게 부족한 것들이 무엇일까를 생각해 본다.

첫째, 내가 체류하고 있는 미국에서 더욱 체감하는 것인데 우리에게는 ‘여유’가 부족하다. 그 동안 고도성장 속에서 후진국에서 선진국 문턱까지 정신없이 달려오면서 우리에게는 무엇이든지 ‘빨리빨리’의 문화가 우리의 몸과 마음속에 깊이 뿌리를 내린 것 같다. 이런 문화 덕분에 요즈음 인터넷이나 휴대전화 등 IT분야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키운 것인지도 모르지만 이의 병폐도 적지 않다. 과거와 달리 네티즌들은 실시간으로 걸러지지 않은 의견을 거의 무한정으로 표현할 수 있고 가끔은 온 나라를 뒤흔드는 센세이션을 일으키기도 한다. 모든이가 여론 형성에 직접 참여한다는 긍정적인 면과 함께 문제를 오래 고민하고 그 결과까지 진지하게 고려하는 전문성과 도덕성이 수반된 성숙된 여론보다는 감정적이고 자극적이고 순간적인 여론이 주도할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가 있다. 금번 황 교수 사건도 그 근저에는 이러한 풍토가 낳은, 과정보다는 결과를 중시하는 문화가 자리잡고 있다.

둘째, 우리가 민주주의를 발전시켜오고 있지만 아직도 우리에게 ‘대화’의 정신이 부족하다. 참된 민주주의는 상대방을 대화의 상대로 인정하고 같은 테이블에 앉아 시간이 걸리더라도 대화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한다. 여기에도 앞에서 이야기한 여유가 필요하다. 당장 문제를 해결하려는 조급성은 결국 힘이 있는 어느 한 쪽의 논리가 주도해서 단기적으로는 결말이 나게 한다. 하지만 결국 충분한 대화가 뒷받침되지 않은 결정은 진 쪽에서 불복하는 사태로 이어져 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상태로 남게 되고, 대화보다는 장외투쟁이나 폭력 등에 의존하는 경향을 낳는다. 첨예한 이해가 걸린 문제일수록 형식적인 대화보다는 진정 상대를 인정하고 상대의 입장을 경청하려는 자세가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관련된 집단의 대표들이 한 테이블에 앉아 격식 없이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대화와 타협으로 문제를 하나하나 해결하려는 의지와 이에 따른 권한 위임이 필요하다. 사학법 파동도 국회에서 정당하게 표결로 통과시켰다는 여당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관련된 집단의 주장을 좀 더 시간을 가지고 충분한 대화를 통해 수렴했다면 후유증이 지금 같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또한 과정보다는 결과를 중시하는 풍토와 일맥상통한다.

셋째, 우리사회에는 참된 숨은 지도자가 부족하다. 우리에게 이순신 장군 같이 구국의 영웅으로까지 비유되던 황 교수가 논문 조작으로 사기꾼으로 추락하는 ‘영웅의 몰락’을 보고 있다. 그만큼 우리 국민은 다시 한번 우리나라를 일으켜 세울 영웅의 출현을 고대했다. 우리는 역사적으로 팽창과 영광의 역사보다는 축소와 굴욕의 역사를 더 많이 경험한 민족이다. 한 때 우리 영토이던 고구려와 발해를 잃고 한반도의 중부와 남부로 축소된 영토에서 나름대로 화려한 문화를 꽃피우며 살던 고려가 몽고의 침략으로 속국이 되면서 온갖 굴욕을 당했다. 한족인 명나라와 형제 관계를 유지하며 오늘날의 한반도를 영토로 만든 조선은 만주 청나라에 항복하는 수모를 겪었다. 20세기 들어 일본에 나라를 빼앗기는 국치를 당하며 한족의 중화문화를 계승했다는 ‘소중화’라는 우리의 자존심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일제 35년의 식민 지배를 받으면서 우리에게 생긴 것 중의 하나는 ‘독립군 콤프렉스’이다. 국내에 남아있던 대부분의 지도층이 전부 일제의 회유와 강압으로 친일파가 되면서 이 현상이 생겼다. 이후 남한의 이승만 정권이 친일파를 대거 기용하고 북한에는 항일유격대 출신의 김일성이 정권을 잡으면서 이러한 현상은 남한의 지식인들에게 하나의 보편적 현상이 되었다. 강정구 교수 사건도 이 현상의 발로에 불과하다. 진정 우리에게 부족한 것이 이러한 독립군 콤플렉스를 일거에 없애 줄 이순신 장군 같은 영웅일까? 각자 맡은 일을 보이지 않는 데에서 묵묵히 하면서 자기 책임을 다하는 가운데 생각과 입장이 다른 사람을 만나면 여유를 가지고 대화와 타협으로 해결하려고 하고 필요하면 자기희생을 할 줄 아는 각 분야의 진정한 리더들, 즉 지도자들이 부족한 것은 아닐까?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