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생활에서 날씨는 모든 사람들의 일상에 밀접하면서도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정보 가운데 하나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최초의 기상대는 언제 어디에 설치됐을까?

우리나라 최초의 중앙기상대는 서울이 아닌 인천시 중구 전동 25번지, 그러니까 자유공원 북쪽의 응봉산 정상에 위치해 있었다.

개항 후 인천은 서울의 관문이라는 지리적 위치 때문에 선박의 입·출항이 빈번했고 이에 따른 기상관측의 필요성이 매우 컸었다.

이러한 이유로 1886년 인천과 원산 해관에 기상관측기가 설치되고 기상 정보 교환이 시작됐으며 러일 전쟁 등으로 기상정보가 절실히 필요했던 일본에 의해 1900년 인천 중구청 뒷편 송학동에 있던 옛 수진여관 자리에 기상사무소가 개설된다.

그러나 이에 대한 정확한 기록이 없는 관계로 당시 설치된 기상사무소가 우리나라 최초인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이후 1904년 4월 공식적인 응봉산 인천관측소가 설치돼 통감부 관측소로 기상관측업무를 시작하게 된 것이 우리나라 최초의 기상대다.

인천관측소는 1905년부터 중앙기상대 업무가 서울로 이전되는 1953년까지 국내는 물론 세계 각지의 기상정보를 수신해 그날그날의 기상을 분석하고 예고하는 중앙기상대의 역할을 했다.

기상에 관한 기록, 정보 분석, 자료 수집 외에도 우리 나라 주변 해역, 동북해, 태평양, 일본 주변 해역에 이르는 광범위한 해역에 대한 해양관측 등을 실시했다.

일본의 중앙기상대, 런던의 그리니티천문대와도 기상정보를 주고 받았으며 1912년 3월 조선총독부관측소로 확대 개편되면서 지금의 중앙기상대와 같은 역할을 하게 된다.

1910년 4월에는 인천관측소에서 헬리해성을 관측하기도 했다고 전해지며 1915년부터 월미도에 기상 신호를 게양하기도 했다.

1939년 7월 중앙기상대로 명칭이 바뀌었고 이때부터 일반을 상대로 기상관측, 일기예보를 시작한다.

6·25 한국전쟁으로 중요한 기상관측 시설이 파괴돼 업무를 수행하기 어려워지자 1953년 서울로 이전됐으며 그 후 인천지역 측후소로 기능이 축소됐다가 1992년 인천기상대로 명칭이 바뀐 채 오늘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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