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역사의 여러 모습을 설명할 때 문헌자료보다 쉽게 이해를 구할 수 있는 것이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유물(遺物), 유적(遺蹟)이다. 과거 인간이 남긴 물적 자료 또는 인간의 활동을 표시하는 물적 자료로는 석기·토기 등의 유물이나 동굴·집터·조개더미 같은 유적 등과 같이 사람이 직접 만든 것뿐만 아니라 당시의 환경을 밝혀내는 데에 있어 실마리가 되는 동·식물의 유체, 인간의 유해 자체도 포함된다.

요즘처럼 각 지역의 정체성을 역사문화를 통해 찾으려 하고 문화사의 코드를 ‘생활사 복원’이라는 주제에서 구하는 추세라면 과거의 문화유산은 더욱 중요한 요소인 것이다. 단지 안타까운 것은 산업화의 소용돌이 속에 각종 유물들이 시대의 변화만큼이나 빠르게 사라져 버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다보니 한때는 ‘청자나 백자 개 밥그릇’에 얽힌 풍자가 생겨나는가 싶더니, 이제는 각 지역마다 생활과 관련된 각종 테마 박물관이 조성되면서 고가의 예술품이 아닌 일상적인 생활유물도 60~70년대 정도의 것이 복제되어야할 지경이고 심지어는 정교한 모조품까지도 진품대접을 받는 경우도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복고지향의 문화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각 지역마다 전통문화에 기반한 자기지역 정체성 확립의 열풍(?) 때문인가, 아니면 너무도 급변하는 시대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는 정신적 갈등의 여파에 수반된 전통문화에 대한 향수 내지는 회귀(回歸)현상이라고 해야 할까? 다행인 것은 과거의 역사유물이나 유적을 찾아 현재 우리의 정체성을 모색하려는 온고지신(溫故知新)의 정신이라 할 것이다.

나아가 역사유물과 유적을 통해 오늘날 우리의 문화정체성을 확인하려는 노력은 현재적 필요에만 머물지 말고 ‘트로이의 목마’를 찾아나서는 열정처럼 미래지향적이고 모험적인 역사탐구의 ‘이상’과 ‘꿈’을 이끌어낼 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독일의 고고학자 슐리만은 어릴 때부터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드》를 가슴에 새겨 트로이 유적의 실존함을 확신했고 이것의 발견을 일생의 목표로 했기 때문에 드디어 트로이 유적은 물론, 그리스 본토의 미케네·티린스 유적 등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는 생애 최대목표였던 호메로스의 신화 세계를 현실로 입증했던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영국의 고고학자 에번스 역시 《오디세이》에서 “위대한 도시 크노소스, 미노스왕이 9년 동안 통치하였노라”라고 읊은 구절에서 역사적 사실을 확신하고 크레타의 번영을 찾아 크레타섬 크노소스의 발굴을 시작했던 것이니, 그의 미노스문명에 대한 실증작업도 역사를 향한 끊임없는 모험적 탐구정신의 발로였기 때문이라 할 것이다.

이렇게 역사유물에 대한 한 개인의 모험적인 탐구정신과 실천을 향한 꾸준한 집념이 19세기 중엽까지도 전혀 알려져 있지 않았던 에게문명의 존재를 밝혀냈던 것이고, 《일리아드》와 《오디세이》는 역사탐구의 정신적 기반이 되어 헬레니즘시대를 통해 중세·근세에까지 많은 영향을 주었으며, 지금까지도 이러한 서사시를 바탕으로 한 재미있는 이야기와 만화의 소재가 되어 모든 이들에게 역사탐험의 꿈을 심어주고 있다.

서양의 경우와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겠지만 우리 역사 속에도 이규보의 《동명왕편》과 이승휴의 《제왕운기》 같은 서사시가 있으며, 비록 지금은 중국의 영역이 되어 자유롭게 탐험할 수 없지만 광활한 만주대륙을 개척해갔던 고구려와 발해의 훌륭한 유물·유적이 남아있다. 그들이 남긴 무덤 속 벽화의 세계야말로 당시인들의 현실적 삶 그 자체였고, 바다의 제왕이라 불렸던 장보고의 유적을 통해서도 그가 당시에 건설하려고 했던 이상세계가 어떤 것인지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아직도 국내 각 지방 도처에는 우리들의 손길을 기다리는 ‘역사탐험의 자원’이 산재해 있으니 지금이라도 이를 통한 역사탐험의 실천적 이상을 가져본다면 훗날 우리의 생활사적 유물자료는 풍부해 질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날 역사유물과 유적을 집적하려는 노력은 부단히 진행되어야 할 것이고, 그들이 남긴 문화유산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에 대한 실체도 좀더 명확히 규명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곧 '과거와 현재와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역사의 대명제이고, 우리의 문화지수를 측정하는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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