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도 자치단체가 직영 또는 위탁운영하고 있는 영어마을 조성이 시·도 교육청 및 산하기관의 프로그램 운영으로 확산되면서 현재 확인된 것만 총 62개 정도가 될 만큼 성황을 이루고 있다. 뿐만 아니라 교육부 장관의 `영어마을 조성 그만' 발언에도 불구하고 이와 유사한 사설기관까지 쏟아지면서 학부모들의 자녀영어교육에 대한 선택과 관심은 학교교육의 수준을 무색케 할 정도로 높다. 실제 이들 영어마을과 각종 영어캠프시설은 결코 어느 나라에도 뒤쳐지지 않을 만큼 국제적 수준을 갖추고 있어 외국인들조차 감탄하고 있다고 한다. 기관운영의 취지도 하나같이 사교육비 절감과 국제도시에 걸 맞는 우수한 인재 육성, 국제적 감각은 물론 세계화에 부응한 경쟁력 제고라는 야심찬 계획이다.
 
초등학생 중심운영에서 성인 대상 프로그램까지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영어로 말하고 체험하기' 의 선전효과는 자치단체의 연간 수십억 원의 지원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을 정도다. 게다가 초등영어교육 확대와 전국의 중학교 원어민 배치를 확대하겠다는 교육부의 정책은 장·단기 연수목적으로 떠나는 학생과 가족의 외화유출을 줄임으로써 국가적 낭비도 막을 수 있다고 한다.

학교를 졸업한지 20여년이 넘은 필자로서는 지금까지 특별히 외국어를 구사할 일도 없었고, 또한 지금까지 큰 불편 없이 지낸 것이 지금 우리의 국제경쟁력 약화의 이유가 된다거나, 세계화 시대에 국제도시로 나아갈 시민으로서 자질이 부족하다고 지적한 사람이 없었던 것은 참으로 다행이 아닐 수 없다. 이는 국제사회에서 필요로 하고, 영어를 수단으로 하는 전문가들이 자기 영역에서 활발히 활동한 덕분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이들 모두가 유아기에 또는 초등학교부터 영어교육에 남다른 교육적 환경이 주어졌기 때문에 국가경쟁력에 도움을 준 배경이 되었다고 말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자기의 전문 영역에서 필요한 만큼 시간과 노력을 지불한 대가이지 국가가 이렇게 전 국민을 대상으로 호들갑을 떨어 얻은 성과가 아니기 때문이다.

유독 영어에 대한 집착이 강한 우리 사회가 영어사용의 쓸모에 비해 심각하게 부풀려진 정도의 선전효과를 검증한 흔적은 어디에도 없다. 우리가 `영어 신앙'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모국어를 제쳐두고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하고 있는 나라 중 세계적으로 부강한 나라가 없다는 예에서 하루빨리 찾을 필요가 있다.

경제적 비용의 문제에 있어서도 실제 사교육비 절감과 외화유출의 감소효과를 가져올지 의문이다. 영어마을 입소를 원하는 초등학생들 대부분은 이미 상당수준의 영어를 구사하거나 앞으로 일정수준의 생활영어를 따라하기 위해 필요한 비용을 더 많이 지불해야만 하는 아이들이다. 해외연수나 조기유학의 수가 줄었다는 소식도 없다. 또한 생활영어 및 단기체험위주 교육이 관광목적의 편리를 반영할 수 있을 뿐이며 입시목적의 학교영어교육과정의 한계로 인해 향후 지속적인 다른 선택의 비용발생을 강제할 수밖에 없어 극히 미미한 절감효과만을 가져올 뿐이기 때문이다.

교육부와 교육청의 학교영어교육의 재점검도 필요하다. 자치단체의 영어마을 운영을 위한 기획문건을 한번 살펴보자. `학교 원어민 강사 수업은 활용도가 높지 않은 것으로 나타남' `대부분 협력수업의 형태로 진행하고 있으며, 원어민 전담수업을 진행하기에는 무리가 있음' 원어민 학습의 필요로 `영어회화 수업의 적합한 연령은 한글이 어느 정도(?) 되는 초등부터 적합하며, 유아는 5, 6세가 바람직함' 이 문구를 통해서 우리는 두 가지를 지적할 수 있다. 영어마을이나 이와 유사한 영어교육의 선전이 학교교육을 불신하도록 부추긴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한글의 중요성을 폄하하고 한글의 이해와 어휘력의 중요성을 교육과정에서 무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글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외국인과 운영자에게 무엇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인지 알 수 없다. 몇해 전 대기업의 우수한 사원들에게 (이들 모두 영어 구사력이 있음) 직장 생활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무엇인지 설문한 적이 있다. 이들 대부분은 각종 공문과 보고서를 한글로 정확하게 표현하고 전달하는 것이라는 응답이었다. 필자 역시 글과 말로 의사를 정확하게 전달하는 어려움을 여전히 겪고 있듯이 이것이 시사하는 바가 무엇인지 제대로 알고 영어교육에 대한 기대와 비용을 지불하였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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