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후면 인천광역시의 살림살이를 책임질 인천시장이 결정된다. 많은 현량(賢良)들이 등장했고, 그 현량을 선택할 권리와 의무가 우리에게 있다. 현재의 사회적 분위기가 대다수의 국민들이 생각하는 모습으로 가고 있다고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이것이 우리의 현재이고 우리의 선택이라면 어찌할 것인가?

세상사가 언제나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없다면 차선이라도 택해야 하는 것 아닐까? 이런 저런 생각이 들면서 새로운 지도자에게 인천시민으로서, 역사를 공부하는 연구자로서, 인천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감히 기대해 보고자 하는 것이다.

얼마전 인천시는 향교앞에 있던 선정비군에서 박제순 선정비를 철거했다. 그런데 선정비는 무엇이고, 박제순이라는 인물은 누구인데 철거했는가? 선정비라 함은 전통시대에 선정을 베푼 관리의 덕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석이다. 그래서 그 이름도 다양하게 표현된다. ‘영세불망비’니 ‘송덕비’니 ‘선정비’니 하는 이름이 그것이다. 그런데 이런 행위는 관리가 선정을 베풀었기 때문에 떠나는 이를 그리워해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세우기도 하지만, 시간이 경과하면서는 그런 의미보다는 통과의례로 만들어 주는 것에 불과하기도 했다. 박제순의 선정비도 그런 의미 이상은 없다고 보여진다. 그리고 박제순은 일제침략의 원흉으로 소위 ‘을사5적’의 한사람으로 외무대신을 역임했던 인물이다. 일제 식민지 시기를 거쳤던 우리로서는 이러한 인물들의 미세한 흔적조차 기억하기도 싫을 것이다. 그러나 어쩌랴. 그 모습이 우리의 역사인 것을.

양비론적으로 무엇이 옳다 그르다 만으로 결정을 할 것인가? 이것 때문에 우리의 사회가 힘들어 하는 것을 알면서도 언제까지 이렇게 갈 것인가? 박제순의 선정비가 문제가 되는 것은 그가 ‘을사5적’의 한 사람이고, 우리를 치욕과 압제의 길로 앞장서서 내몰았던 인물이기 때문이다. 박제순 선정비가 이 땅에서 사라지면 박제순이 인천에서 도호부사를 지냈다는 사실도 사라지는 것인가. 며칠 전 인천도호부를 찾을 일이 있었다. 그런데 역대 인천도호부사 명단이라 해 인천도호부 마당에 명판으로 새겨놓은 것을 보았다. 물론 박제순의 이름도 같이 말이다. 이제 이것도 철거할 것인가? 영광도 치욕도 모두 우리의 역사이지 않는가. 치욕의 역사를 드러내는 것은 살을 깎는 아픔을 감수하면서도 극복을 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인 것이다.

인천뉴스 5월 23일자 기사에 다음과 같은 제목으로 인천시 중구에 있는 자유공원을 새로운 역사의 공간으로 바꾸어 시민들에게 되돌려 주겠다는 기사를 접했다. ‘도시의 타임머신 100년전 각국공원으로’ (incheon@news 제109호). 이건 또 무엇인가? 공원 하나를 100년 전 역사의 현장으로 되돌려 창조적 공원을 만들어 문화인프라를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제국주의 열강이 이 땅에 들어와 개항과 근대화라는 미명 아래 짖밟기 시작한 역사를 우리 손으로 다시 복원하겠다니 말이다. 아직 개항과 근대화라는 주제는 역사학계에서도 쉽게 성격을 규정하지 못하고 있는데 무엇을 복원하고, 무엇을 돌려주겠다는 것인가? 인천 개항장의 성격이 제대로 연구된 것이 없는데 그저 그럴듯하게 포장만 하겠다는 것인가? 가시적인 것만을 보여줄 것이 아니라 토대 연구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지원을 하는 것이 순서가 아닌가 싶다. 이렇게까지 복원하지 않아도 중구지역에는 그 아픔의 흔적은 얼마든지 찾아 볼 수 있다. 수 백억 원의 예산을 들여 교훈의 역사장을 만드는 것이 서둘러야 할 당위성이 있는지 의문이다. 복원만이 능사는 아니다. 그것도 완전한 복원을 할 수 없다면 하지 않는 것만 못하다. 차라리 그 예산을 근대유산이 많이 남아 있는 중구지역에 집중 투자해 거주자들의 주거환경을 개선해 역사의 현장으로 보존하는 편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이를 통해 개항장의 동선이 공원의 동선보다 커질 것이고, 침체된 상권도 안정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인천시장 공관을 과감하게 역사 체험의 현장으로 개방하고 역사자료관으로 활용했듯이 말이다.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인천시 지도자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느끼게 되면서, 이런 바람을 이루어 줄 수 있는 인천시장의 출현을 기대해 본다. 역사는 지나가 버린 것이 아니라 현재도 앞으로도 이어갈 것이기에 간단하지 않다고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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