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살아가고 있는 모습들을 들여다보면 모두가 단순한 것처럼 보이는 것들이 왜 그리 복잡다단한 양상으로 나타나는지 신기하다고 느껴질 때가 많다. 인간이 자연에 적응해 가는 과정을 ‘문화의 수수께끼’라 이해하면서도, 단계 단계에서의 사회화에 대한 궁금증은 여전히 오묘한 채로 남아 있다. 인간은 먹는 것에서부터 사고방식이나 종교, 제도 또한 모두 다를 수밖에 없는데도, 아무튼 그 모든 것들이 집단의 생존을 위해 유무형의 관행이나 제도로 정착했다.

얼마전 지방자치를 위한 선거를 치뤘다. 이러한 선거제도가 지구상에서 얼마만큼 광범위하게 시행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으나, 우리는 우리 민족의 미래를 위해 서구식 민주주의를 채택한 것만큼은 분명하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조선시대에는 오늘날과 같은 선거가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시대에 행해진 정치이념이 민본주의가 아니었음도 아니고, 오늘날보다 비민주적이라 할 근거도 박약하다. 신분제라든가 민중의 참여여부 문제를 토론의 의제로 삼는다 하더라도, 선거제도가 민주주의의 꽃일지언정 최상이라 단언할 수는 없다. 이제 곧 전 지역에서 단체장들의 새 임기의 시작과 더불어 시·군·구 지방의회가 태동할 것이다. 그리고 과거의 사례에서 보듯이 그들만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갈등과 대립양상이 과도하게 노출될지도 모른다. 한 배에 같이 승선했다 하더라도 새판을 짜기 위한 이합집산의 과정이 필수적인 만큼 초기의 진통이 예상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물론 예측이 빗나가기를 바라지만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의회민주주의가 실종이나 하는듯 호들갑을 떨 필요까지는 없을 것 같다.

과거의 한 때, 자의든 타의든 본인이나 집단의 기량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해, ‘그 사람이 그 사람’, ‘그 때나 지금이나’ 등 자탄의 논리로써 선량들을 질타하던 때도 있었으나 이제는 시류나 세태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하면 선량의 반열에 낄 수가 없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그 때 그 시절에 조금 더 잘했을 수도 있었는데라는 아쉬움을 남기는 것이 어제라면, 오늘은 앞으로를 설계하는 데에 있어 설레임과 역동과 활력의 시작점이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인천의 투표율이 타 지역보다 낮았다고 한다. 지금 그 수치를 일일이 거론할 필요는 없겠지만 그러한 결과를 가지고 인천시민의 지역에 대한 정치불신이 높았다거나 무엇이 부족했다거나 등의 유추는 가능할 지라도 마치 인천지역이 어떤 또 다른 문제를 내포한 것처럼 우리 스스로가 인식하는 것은 지나친 해석일 것이다. 한두 번의 현상을 가지고 확대 해석하는 것도 문제려니와, 타 지역과 비교해 볼 때에도 크게 눈에 띌만한 차이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50보 100보의 투표율에서 그저 ‘꼴찌’로서 갖는 유명세 정도로만 보면 무방할 듯하다.

현재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지역사회의 새 일꾼들과 앞으로의 일을 어떻게 함께 전개시켜 나가느냐 하는 것이다. 지역사회에는 예나 지금이나 지역의 원로, 행정가, 교육자, 기업인, 시민운동가, 문화인 등이 여러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고 각기 분야에서 나름의 소회를 제시해 왔다. 그들의 고견은 인천의 큰 틀을 이야기 할 때도 있고, 지나치게 각론으로 치우친 것이라 생각되는 것도 있고, 때로는 입장의 차이에서 오는 대립까지 수반할 수도 있다.

어느 쪽으로나 치우침이 없이 온당하고, 지나치거나 모자람이 없는 상태를 우리는 흔히 ‘중용(中庸)’이라 한다. 인생사에 이 도를 지키기가 그토록 어려웠기에 현인들도 강조했던 것이지만, 알맞은 선택이란 존재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인간의 본성속에는 독선, 오만, 잘난 체, 아집, 빈정, 트집, 자학, 열등감 등 집단에 해악을 끼칠 수 있는 요인들이 많이 숨어 있고, 이것을 ‘사회화’라는 과정속에 용해시키려다 보니 인간사가 더욱 복잡하다. 선택의 호불호(好不好)를 떠나 또 한번의 출발점에 선 지금, 그 모든 다양한 목소리가 인천 사랑이라는 큰 틀 속에 모아져 진정한 발전으로 거듭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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