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시 중동과 상동 신시가지, 그리고 인천 삼산동 아파트 단지는 얼마 전까지 드넓은 논이었다. 광활했던 김포평야의 끝자락으로 수도권에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를 상당량 포집해 도심의 열섬화를 예방했고, 빗물을 머금어 홍수를 예방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 그 지역은 빗물을 머금지 못한다. 논을 성토한 곳에 철근콘크리트와 아스팔트를 깔았기 때문이다.

계양구 아파트 단지와 김포 신도시까지, 추가 개발됐거나 개발 예정인 김포평야는 일찍이 갯벌이었다. 수도권의 조상들은 갯가에서 수많은 먹을거리를 충당했고, 홍수와 가뭄 피해도 크지 않았을 것이다. 갯벌이 있으면 해일 피해도 없다. 작년 초 동남아시아 쓰나미도 해안 습지를 매립한 데 원인을 찾아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갯벌이 일제에 의해 평야지대로 바뀌었을 때만 해도 수해를 몰랐는데, 아파트 단지로 변하자 낮은 지역은 상습 수해지역으로 둔갑했다. 도심의 흙탕물이 순식간에 밀려들어 해마다 몸살을 앓아야 했던 계양산 기슭의 농민들은 더는 참을 수 없어 민원을 제기했고, 범람하는 한강으로 빗물을 퍼올리는 데 한계를 느끼던 당국은 서해안까지 방수로를 약속했다.

거기까지 이해할 수 있다. 대규모 아파트 단지를 기획하고 실행한 공사 주체들이 배상은 커녕 일말의 사과도 하지 않았지만 민원을 들어준 당국의 자세는 평가할만 하다. 하지만 환경문제와 생활문화권의 단절을 전제하는 방수로를 어떻게 건설해야 옳은지 사전에 충분히 논의하지 않았다. 그 뿐 아니라 그 과정에서 주민을 속였다. 운하로 확장해 수해 예방이 가능하다고.

인천시 경서동 매립지를 경제자유지역으로 지정한 정부는 복토를 위해 막대한 흙이 필요했고, 이해가 맞은 관계당국은 운하를 홍수방지용으로 치장했다. 한데 폭 20m의 기존 방수로로 피해가 크게 줄었다는 사실에 침묵한다. 어렵사리 폭 40m 방수로 확장을 환경단체와 약속하고 추가 확장은 다시 논의한다는 합의마저 파기하려는 당국은 폭 100m에 달하는 ‘경인운하’를 집요하게 밀어붙인다.

그런데, 신선한 소식이 있다. 전라남도는 홍수 조절용 생태호수를 60억 원의 예산으로 조성하겠다는 것이다. '태풍과 집중호우로 둑이 무너지고 주변 농경지가 물에 잠기는 것을 막기 위해 강이나 하천 옆에 대규모 인공호수를 확보하겠다'는 당국자는 평소에 일정량의 물이 고이는 저수지를 유지해 주변에 산책로와 꽃밭들을 갖춘 호수공원으로 활용할 것이며, 홍수 때 갑문을 열어 하류의 범람을 막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를 위해 1만5천 평에서 2만 평에 달하는 평균 수심 2m의 호수를 조성한다고 전한다.

나주 만봉천, 화순 지석천, 담양 영산강 상류도 1천800억 원의 예산으로 10여 만 평 규모의 홍수조절용 생태호수도 계획하고 있는 전라남도는 주민들의 휴식공간은 물론 홍수조절과 산불진화용 물 공급을 기대하면서 도시지역과 가까운 10여개 하천에도 같은 호수를 더 계획하는데, 전라남도보다 예산 규모가 큰 인천은 어떤 대책을 세우고 있나.

폭 40m의 방수로라면 김포평야를 메워 생긴 수해를 거의 완충할 수 있을 테지만, 폭우와 태풍을 대비해 상습 피해지역 주변에 홍수조절용 생태호수 조성을 제안한다. 온갖 새들과 물고기가 노니는 호수가 생기면 관광객이 답지하는 소중한 생태자원을 얻게 되고 주민들의 경제적 이익도 기대할 수 있다. 지역의 자부심으로 승화될 수 있다.

상습 피해 주민과 합의를 전제로 생태호수를 조성하고, 가끔 범람하는 곳은 피해에 맞게 그때마다 보상해주면 기존 농사도 가능할 것이다. 주민이 원하면 집이나 도로를 안전한 곳으로 이전하거나 높일 수 있을 것이다. 홍수피해와 예산도 줄이며 환경문제, 생활문화권 단절의 문제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갯벌과 함께 사라질 위기에 처한 생태계의 귀환 야생동물을 반갑게 만날 수 있어 교육효과도 그만일 게 아닌가. 내일을 생각하는 열린 자세를 보여주길 관계당국에 간절히 요구한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