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조가 제50차 전국대의원대회에서 교육공공성 강화를 위한 하반기 총력투쟁을 힘차게 결의하고 “차등성과급 폐지, 교원평가 저지, 한미FTA 저지는 물론, 아이들 살리기-공교육 개혁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당면 과제이며 전교조에게 물러섬 없는 투쟁을 요구한다”며 10월 연가투쟁을 결의했다. 투쟁결의에 대해 전교조는 “교원성과급과 교원평가가 교육공공성을 황폐화하며 교육주체간의 불신을 부추겨 교사와 학생의 인격적 신뢰관계를 파괴하는 것은 물론 어린 학생들에게 모든 인간을 계량적으로 평가해 서열화 할 수 있어 비윤리적인 심성을 강화시키기 때문”이라고 한다.

실제 정부의 입시정책은 교육부 수장이 바뀔 때마다 유례없는 변천사를 기록했다. 입시정책에 종속되어온 학생과 학부모의 고통은 다시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다. 그러나 우리 사회 최고의 학력수준을 자랑하는 교원노조가 비합법화 시절도 아닌 지금까지 변함없는 연가투쟁으로 공교육 정상화와 학생, 학부모 고통을 멈추게 할 수 있다고 판단하는 것은 교사의 권리 주장을 넘어 학생·학부모의 권리를 침해하거나, 조직 규모를 무기로 한 권력싸움처럼 비쳐진다는 점에서 오히려 교육현장의 혼란을 부추기는 것이 아니냐는 목소리가 높다.

정부 정책의 폐해 또는 실패로 인한 공교육 붕괴의 근거로 종종 유럽의 사례가 제시되곤 한다. 신분불안 문제에 초점을 두고 예시되는 이들 국가의 교원 급여수준과 지위는 ‘2006년도 OECD 교육지표’에서 밝힌 것처럼 세계 최고의 교원 급여와 지위를 갖는 우리나라에 미치지 못하고 있고, 교직의 선호도가 낮아 비인기 직종인 이들 나라에 비해 우리나라는 상위 수준의 인기직종으로 여전히 교직을 안정적인 직업으로 선택하고 있다는 현실은 드러나지 않는다. 그래서 평가도 하지 않는 우리나라 공교육의 실패를 외국의 공교육 붕괴의 원인이라 지목하는 교원평가와 성과급 지급의 실패와 비교해 단순화시켜 설명한다는 것은 근거가 약할 뿐만 아니라 설득력도 없다. 전교조가 정부정책에 반대하고자 한다면 평가보다 학생, 학부모, 동료교사에게 언제든 당당하게 수업을 공개하겠다는 입장을 밝혀야 더 설득력이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지 않다면 학생과 학부모의 수업선택권과 교사선택권을 보장해야 할 것이며, 더 나아가서는 학생의 수업거부권도 인정, 보장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학부모가 국가에 위임한 교사의 교육권을 학생의 학습권과 학부모의 교육권보다 우선해야 할 이유가 없다. 누구나 수업을 참관할 수 있도록 교실 문을 개방하는 것이야말로 학교교육과 교사의 질을 높이는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성과급 지급문제에 대해서도 수요자인 학생, 학부모가 만족도 평가도 할 수 없는데 교원의 성과물이 어떤 기준과 어떤 근거로 나올 수 있는가. 이 같은 불분명한 성과물에 정부는 왜 국민의 세금을 낭비하며 지급하려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교조가 교육현장의 혼란을 초래하는 성과급 지급 논란을 그 스스로 끝내고자 한다면 반납보다 사회에 기부할 것을 결정해도 늦지 않다. 현재 전교조는 전교조 인천지부의 30억 원이 넘는 성과급 반납 실적을 비롯해 400억 원이 넘는 반납성과투쟁을 대대적으로 홍보하며 결의를 다지고 있다. 성과급은 급여의 일부로 반납할 수 없는 교사의 권리이다.그러함에도 반납투쟁의 성공을 홍보하며 교원노조의 역사에 기록하고자 한다면, 그리고 교육계 미담의 행위로 남기를 바란다면 사회에 헌납하겠다는 결정이야말로 학생, 학부모에겐 더 없이 환영할 일이다. 전교조의 교원평가반대와 성과급 지급반대투쟁이 ‘비싼 수업료’를 지불했다고 생각하라거나, 그로 인해 학생이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식의 온정적 투쟁명분은 투쟁방법의 변화를 스스로 모색하지 않는 한 동의되기 어려운 상황이다.

누가 누구에게 투쟁을 요구했는가. 누가 누구에게 투쟁을 위임했는가. “학생과 학부모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기 위해 투쟁하겠다”는 명분은 전교조의 오만으로 비쳐질 수 있음을 인식하기 바란다. 전교조는 공공의 이익을 위한다고 하는 자기 정체성에 투쟁의 명분과 힘을 싣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조직의 규모가 커질수록 스스로의 이익과 이해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게 되고, 그 정체성은 과대포장 되어 다양한 시민사회의 요구와 기대에 대한 판단이 흐려지기 쉽다는 것을 전교조는 경계해야 한다. 합법화 이전의 전교조 모습에 희망과 기대가 컷던 만큼 이젠 국민의 쓴소리도 들을 줄 아는 교사집단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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