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아직도 역사의 무게를 느끼지 못하고, ‘역사’가 주는 의미를 먼 지나간 시절의 재미있는 옛 이야기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새삼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은 독도나 교과서왜곡문제처럼 일본은 일본대로, 동북공정처럼 중국은 중국대로 자국의 역사적 과제를 너무도 충실하게(?) 진행하고 있는 현실을 목도하기 때문이다.

사실 매년 여름이 되면 광복의 역사가 주는 마음의 짐(?) 때문에 형언할 수는 없지만 더위조차도 일제의 망령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유난히 힘들게 했던 올 여름의 맹위 속에서도 심정이 착찹했던 것은 일제로부터 벗어난 광복의 그날을 기억해서가 아니라 지금도 일본총리의 야스쿠니신사(靖國神社) 참배가 국제적 정치문제로 심심찮게 대두되고 있는 현실에서, 아직도 청산되지 못하고 있는 역사의 상처와 그 상처를 덧나게 하는 주변의 여러 가지 정황 때문이다.

이렇게 때때로 등장하는 일본총리의 지나친 애국심(?)에 기인한 행보로 인해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던 보통 사람들도 이제는 야스쿠니신사의 존재를 알게 되었으리라 생각된다. 이 신사는 1869년 처음 세워진 이래 황실이 경비를 부담하는 국가의 신도(神道)를 상징했고, 제국주의 시절에는 군국주의 확대정책을 종교적으로 뒷받침해 주는 곳으로서 천황숭배와 군국이념을 조장하는 국영(國營)신사였다. 여기에는 도쿠가와 막부가 무너진 무진전쟁 이후 태평양전쟁에 이르기까지의 11개 전쟁 전몰자 총 246만여 명이 안치되어 있다. 더구나 일제 때 강제로 전쟁터에 끌려간 한국인 희생자 2만1천여 명도 포함되어 있으며, 당시 총리 겸 육군대신 도조히데키(東條英機)를 비롯한 태평양전쟁의 A급 전범 14명의 위패들도 놓여져 있다.

그러므로 전후 좌파정권이 야스쿠니신사 철폐안을 제기한 것이나 우익세력이 공식참배 주장을 거듭해 온 것이 모두 이런 역사의 모순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전후 일본에 진주한 맥아더 사령부도 이러한 야스쿠니신사의 위험성을 감지해 국가와의 연결고리를 차단시켰고, 이후 국영 신사의 특권적 지위 대신 단순한 종교법인이 됐다. 그럼에도 현재 일본 정부는 외국의 국립묘지 헌화 관행을 들면서 총리나 각료의 야스쿠니신사 공식참배를 위한 방법론을 강구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사실은 근대의 출발점에서 일제식민시대를 강제당했던 우리로서는 회한(悔恨)을 가질 수밖에 없고, 제국주의의 망령을 반성이 아니라 오히려 정당화하려는 일본의 태도에 분개하는 것이다. 36년간 굴절되어버린 근·현대사를 바로잡기 위해 이렇게도 저렇게도 짜맞추어 보지만 좀처럼 잃어버린 근·현대사의 제 모습을 찾기가 쉽지 않으니 더욱 마음이 무겁고 안타깝기만 할 뿐이다. 더구나 이 굴절된 근·현대사로부터 남북분단의 상황도, 맥아더의 9·15 인천상륙작전도 파생된 것이니, 이에 근거한 여러 잔재들로 인해 지금도 우리사회는 갈등과 반목을 되풀이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문제는 대외적으로 일본을 향한 우리의 요구와 질타도 질타려니와 대내적인 면에서 우리 자신이 정립해야 하는 우리 역사 내적인 문제가 아직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있다는 사실이다. 친일인물을 비롯해 전국에 남아있는 일제 지명, 인명, 용어 등에 대한 정리를 어떻게 지혜롭게 해결해 나갈 것인가 하는 과제는 당사자인 우리 내부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지만 의외로 뿌리가 깊고 엉켜있어 그 상처의 치유가 쉽지 않은 어려움이 있다.

무엇보다 친일인사의 문제가 그렇다. 더구나 우리를 우울하게 하는 것은 나라를 빼앗긴 위기상황에서도 절개와 지조를 지켜 일제에 대항했던 인물과 그 후손들의 처지가 친일인사의 삶보다 더 불우했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진 짐은, 바로 당시에 자신의 목숨을 초개와 같이 희생하면서 민족의 독립을 열망했던 인물들의 굳은‘절개와 지조’에 대한 보답이다. 문득, 조지훈이 역설적으로 쓴 지조론(志操論)이 생각난다. 그들이 지조로 지켜 낸 결과를 향유하는 오늘을 사는 우리는 과연 한번쯤 ‘지조’의 의미를 생각하면서 살고 있는 것인지…

국가와 민족을 지조 하나로 지켜낸 선조들이 남긴 이 해방공간에서 과연 지조있는 삶은 무엇인지, 또 역사가 남긴 이 무거운 과제들을 고민하고 있는지 자문해 보는 것은 그 무더웠던 여름을 보내는 가을의 문턱에 서 있기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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