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 선생님이 되고 싶었던  여고생이  있었다. 그런데 그는 지금 유명 여배우가 돼 있다. "어릴 적에는 꿈에도 배우가 될 거라고는생각한 적이 없었는데 지금은 이 일을 사랑해요"라고 말하는 여자. 엄지원(29)이다.
   
그의 최신작 '가을로'(감독 김대승, 제작 영화세상)가 이달 26일 개봉된다. '가을로'는 결혼을 앞두고 백화점 붕괴사고로 목숨을 잃은 민주(김지수)와 민주를 잃고 10년이 지난 뒤에도 여전히 아파하는 현우(유지태)의 가슴 저린 사랑을  담은  멜로 영화.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를 소재로 한 영화이기도 하다. 엄지원은 사고 당시 민주와 함께 매몰됐던 백화점 여직원 세진을 연기했다.
   
개봉을 앞두고 가을 청취가 묻어나는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엄지원을 만났다. '가을로'가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돼 기자회견을 위해 부산으로  내려가야 하는 엄지원은 이날 하루 동안 일곱 개 언론매체와 인터뷰를 해야 하는 빠듯한일정 때문에 정신이 없는 눈치였다.
   
사진촬영을 마치고 부랴부랴 테이블에 앉은 엄지원은 노출이 심한 의상이 신경 쓰이는지는 연방 외투로 몸을 가리기에 급급했다.
   
"어떻게 배우가 됐느냐?"는 질문에 엄지원은 "우연한 기회엡"라며 웃었다.
   
"저는 상식적으로 볼 때 배우와는 큰 갭이 있는 쪽에서  왔잖아요(그는  경북대 지리학과를 졸업했다). 배우로 사는 현실이 가끔은 제가 생각해도 우스워요. 하지만지금은 이 일을 많이 사랑합니다."
   
엄지원은 "배우의 길이 인간적인 성장과 성취감 등 많은 것을  가져다  줬다"고 말했다.
   
"작품을 하면서 개인적으로 많이 성숙했어요.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진 것 같아요. 또래 친구들에 비해 사고의 폭도 넓어지고 깊이도 생겼고요."
   
그는 "작품을 하면서 얻게 되는 성취감이 오랫동안 배우를 할 수 있게 해 준 원동력인 것 같다"고도 했다.
   
엄지원은 '똥개' '주홍글씨' '극장전' '가을로' 등 많은 영화에 출연하지는  않았지만 작품마다 독특한 개성과 연기력으로 영화배우로서의 입지를 굳힌 배우다.  
   
"영화를 고를 때 하고 싶다는 욕망이 강하게 분출되는 작품에만 출연했다"는 엄지원은 "흥행에 상관없이 출연한 작품에 만족하는 것도 마음이 동하는 영화만 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에 출연한 '가을로' 역시 엄지원의 마음을 강하게 끌었던 작품이다. 김대승감독과 작업을 해보고 싶었던 평소 욕심과 시나리오에 대한 흡족함이 김 감독과  만난 자리에서 출연을 결정하도록 만들었다고.
   
백화점 붕괴로 매몰됐던 세진은 10년이 지난 뒤에도 사고 후유증으로 불을 끄고는 잠을 잘 수 없고    사고 당시를 생각하면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는 인물.
   
"매몰 장면을 찍는 것이 쉽지 않았다고 들었는데 어땠느냐?"고 물었더니  "육체적 어려움보다 세진의 내면세계로 들어가는 것이 더 힘들었다"고 답했다.
    
그는 "평생을 안고 가야 할 상처와 아픔을 간직한 채 살아가야 하는 세진에게 다가가서 그의 내면을 연기로 녹여내는 것이 녹록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우리 나이로 서른인데도 아직 이렇다할 스캔들조차 없는 엄지원에게 "스캔들이 왜 없느냐"고 물었다.
   
엄지원은 "애인이 있어야 스캔들이 나지 않겠느냐?"며 "인연이 있으면 언젠가는 좋은 사람을 만날 거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언제까지 기다릴 작정이냐"고 연거푸 묻자 "마흔 이전에는 그분이 오시지 않겠느냐"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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