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괴범이 자신의 딸을 유괴당했다. 얼마나 당혹스러운 상황인가. 아마추어 생계형 유괴범이 딸을 유괴당한 후 경찰에도 신고하지 못한 채 혼자서 전전긍긍하며 딸을 구해야 하는 게.

`흡혈형사 나도열'을 통해 단독 주연으로 코미디 영화를 이끈 김수로가 또 다시 코미디에 도전했다. 설정은 끔찍하지만 풀어가는 형식은 코미디다. 김수로의 탄탄한 연기력에 기대 전혀 뜻밖의 지점에서 웃음을 유발한다. 그러나 그 웃음이 여러 면에서 편안하지 않다.

딸 하나를 둔 평범한 샐러리맨 동철(김수로 분)은 주식 투자로 망해 사채까지 쓰게 된다. 악독한 사채업자의 살벌한 이자 때문에 하루하루가 죽을 맛. 동철과 같은 사채업자에게 빚을 진 만호(이선균)는 뜻밖의 제안을 한다. 유괴를 하자고.

덜 떨어진 두 남자는 첫 번째 유괴에서 무려 100번 넘게 전화를 해도 받지 않는 부모 때문에 실패한 후 부잣집 여고생 딸을 유괴한다. 그런데 이 딸도 가관이다. 학업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데다 아버지와 사이도 좋지 않은 `날라리' 태희(고은아)는 “그래봐야 우리 아빠가 돈 주고 나를 구하지 않을 것”이라고 비웃는다.

그 와중에 엄청난 사건이 벌어지니, 동철의 딸이 유괴당한 것. 유괴범은 유괴범인 동철이 결코 신고를 하지 못한다는 약점을 잡아 몸값 3억 원을 요구한다. 여기에 사채업자까지 동철과 만호의 유괴 사실을 알고 입막음용으로 2억 원을 책정한다. 이 때문에 동철과 만호는 태희 아버지(오광록)에게 자꾸 몸값을 올려야 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진다.

자꾸 꼬여만 가는 동철의 현실은 코미디 영화답지 않게 무겁고 답답하다. 동철의 부정이 절절하게 표현되는 한편 딸을 잃은 태희 아버지의 부정도 정상을 회복해간다.

의자에 묶여 있는 건 용납돼도 동철과 만호가 친절하게도 공부하라고 틀어놓은 TV 학습 프로그램이 더 견딜 수 없었던 태희도 아버지의 사랑을 깨달아간다.

동철의 상황을 너무 잘 알고 있는 유괴범. 그 유괴범은 과연 누구일까.

초반의 웃음은 중반 이후 점점 비극적으로 변해간다. 관객이 웃을 수 있는 장면 또한 갈수록 줄어든다. 코미디라는 외피를 입지 않았다면 상영 내내 답답했을 것. 뻔히 보이는 결말은 결코 신선도가 높지 않다.

김수로는 분명 영화 한 편을 이끌어갈 정도의 내공을 갖고 있다는 걸 확인했다는 점에서 만족할까.

유명한 연극배우이자 이제는 영화에서도 낯설지 않은 오광록이 슬슬 자신의 존재가치를 드러낸다는 것은 환영할 일이다. 고은아의 똑 부러진 연기도 눈길을 끈다.

배우들이 맡은 바 임무를 충실히 해내려고 했음에도 분명 매끄럽지 않은 당혹스런 코미디다.

11월2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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