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사시대 알처럼 매끈하고 하얗고 거대한 돌들이 깔린 하상(河床)으로 투명한 물이 콸콸 흐르는 강가에 위치한 곳…해가 뉘엿거릴무렵이면, 특히 12월에 비가 그치고 나면, 공기는 다이아몬드처럼 투명해졌고, 산따마르따의 눈 덮인 시에라 네바다 봉우리들이 강 건너 바나나 농장 앞까지 다가와 있는 것처럼 보였다” 
 
라틴아메리카의 역사와 원시 토착신화를 결합한 `마술적 사실주의'를 창조한 콜롬비아의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80)의 자서전 `이야기하기 위해 살다'의 첫 부분은 이처럼 고향 아라카타카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된다.

 
작가 대표작 `백년의 고독'에 등장하는 환상적인 마을 `마콘도'의 실제 모델이 된 아라카타카는 콜롬비아 카리브해 연안의 작은 도시로 현재 6만명 안팎의 주민들이 바나나를 재배하며 살고 있다. 마르케스는 외가가 있던 이곳에서 태어나 9살 때까지 자랐다.

 
1950년 2월 고향집을 팔러 가자는 어머니 요청을 받은 마르케스는 10여 년 만에 고향을 찾게 되지만 노동자 학살 등 비극적 사건 이후 완전히 변해버린 모습에 큰 충격을 받는다.

 
그곳에는 마르케스의 기억 속에 있던 “인디오들이 인생을 즐기기 위해 코카인 열매를 씹었던” 마을은 사라지고 “모든 것이 희미하게 흩날리는 뜨거운 먼지를 뒤집어 쓴” 황량한 거리 뿐이었다.

 
작가는 고향 마을을 둘러보며 점차 과거의 세계로 빠져든다. 그리고 외할아버지가 들려준 전쟁터에서의 모험담과 콜롬비아의 역사, 외할머니와 집안 여인들이 들려준 온갖 신기하고 기괴한 이야기 등 이후 탄생되는 소설들의 소재들을 새록새록 떠올린다.

 
마르케스는 “나에게 영감을 주었던 가장 좋은 출처는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들이 내가 자신들의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하리라 생각하고 내 앞에서 나눈 대화들”이었다며 과거 기억들을 떠올리게 해준 그 짧은 여행이야말로 “평생 내린 결정 가운데가장 중요한 결정이었다”고 회고한다.  자서전에는 젊은 시절 작가의 문학적 열정 등 `작가 마르케스'에 대한 이야기 외에도 `기자 마르케스'의 활동도 비중있게 실려있다.

 
마르케스가 대학에 다니던 1940년 대 말은 자유당과 보수당이 극심하게 대립하며 자유당 지도자 암살사건 등 흉흉한 사건이 끊이지 않던 불안한 시기였다.

 
1950년 초부터 진보적 신문사에서 기자로 활동했던 마르케스는 1955년 발생한 해군 구축함 침몰사건에 대해 끈질기게 의혹을 제기하는 등 정부 비판적인 기사를 썼다. 그러나 그는 이 사건을 계기로 해외특파원으로 발령받아 오랫동안 `도피 아닌도피' 생활을 해야했다.

 
2001년 콜롬비아에서 출간된 책은 마르케스가 앞으로 계속 발간할 회고록 시리즈 가운데 제1권으로 작가가 콜롬비아를 떠나게 되는 1955년까지를 다루고 있다. 마르케스는 앞으로 1955년 이후의 이야기를 담은 제2, 3부도 계속 펴낼 예정이다.
 
조구호 옮김. 민음사. 716쪽. 3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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