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북시장'이라고 해서 이곳 재래시장은 거북이를 파는 집이 많거나 거북이를 상징으로 한 시장인줄 아는 사람들이 많다. 이름 때문이다. 하지만 거북시장이라고 붙여진 명칭이 왜 생겼나 하고 들여다보면 피식 웃음이 나온다.

인천시 서구지역 최초의 인정시장인 거북시장은 이렇다 할 시장이 없는 서구 석남동에 지난 80년대 초 `거북공영주식회사'가 상가건물을 지어 분양하면서 그 이름을 따 `거북시장'으로 부르게 됐다고 전해지고 있다.

문을 열 당시 상가점포는 10여 개였으나 주변에 상가가 별로 없어 지금의 신거북시장이 형성되기 이전까지는 20여 개의 점포가 문을 열고 시장 안쪽에 노점상까지 생기면서 거북시장은 손님과 상인들이 뒤엉켜 제법 시장다운 면모를 갖췄다.

서구 석남2동에 자리잡은 거북시장은 신거북시장과 함께 나란히 있지만 하나의 시장으로 봐도 무방하고 지역 주민들도 두 시장을 구태여 거북시장과 신거북시장으로 분리해서 부르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가 알고 있는 거북시장은 사실 신거북시장이라고 부르는 것이 정확하다.

거북시장이 문을 열 당시 이곳은 비포장도로로 주변에는 상가도 별로 없고 석남동 주민들이 버스를 타기 위해서는 거북시장을 거쳐야 해 장사가 꽤 됐었다고 한다.

그 후 비포장도로 주변으로 할머니들이 큰 함지박에 야채를 담아와 팔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도로를 중심으로 리어카를 앞세운 노점상들이 하나 둘씩 모여들었고 그 수가 많아지자 급기야 인천시에서 노점단속에 나섰지만 단속반이 철수하는 밤이 되면 노점들이 장사를 하는 숨바꼭질 단속이 이어졌다.

숨바꼭질 단속으로 노점상을 없앨 수 없다고 판단한 행정기관에서는 이곳을 노점상 잠정허용지역으로 지정, 노점상들이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으면서 지금의 신거북시장이 형성되는 단초가 됐다.

거리의 노점상들이 있어야 할 물건들을 다 갖추고 장사를 시작하면서 상권이 형성되자 주변에 건물들이 하나 둘씩 들어서게 됐고 자연스럽게 시장이 만들어졌다.

그래서 신거북시장은 노점상들이 일궈낸 시장이라고 해도 무방하다는 게 상인들의 설명이다.

상가에 입주한 상인들과 노점상들은 함께 신거북시장상인회를 구성, 크고 작은 일들을 함께 풀어가며 지난 2005년 인정시장이 됐다.

지금은 4차선 거북시장길 500여 m 양 옆으로 200여 개(일반 120개, 노점 92개)의 상가가 밀집해 서구지역 최대 시장으로 손님들의 발길을 붙잡고 있다.

반면 서구 최초의 인정시장인 거북시장은 상대적으로 접근성이 좋은 신거북시장으로 손님들이 몰리다 보니 북적대던 손님들의 발길은 드문드문 이어질 뿐 몇 개 남지 않은 상점들이 언제 올 지 모를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다.

   
 
   
 
# 신거북시장 둘러보기

신거북시장이 형성되기 시작한 80년대 중후반에는 도로가 포장되지 않아 비가 오는 날이면 장화 없이는 다닐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런 이유로 주변 신발가게는 비 오는 날이면 장화가 금새 동이나 대목이 따로 없었다.

나중에 형성된 신거북시장은 사실 특별하게 내놓을 것 없는 그저 평범한 재래시장이다.

재래시장이 다 그렇듯이 없는 것 빼곤 다 있고 왁자지껄한 복잡함도 여느 재래시장과 다르지 않다.

굳이 특징을 꼽는다면 다른 재래시장과 달리 4차선 도로를 중심으로 양편에 상가가 형성돼 급한 일이 있어 차를 가지고 시장에 들렀다면 굳이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시장을 둘러보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차에서 내리지 않더라도 서행하며 상인들과 흥정을 통해 바로 물건을 살 수도 있다.

재래시장에서 물건가격을 놓고 깎는 것은 기본이고 말만 잘하면 덤으로 한 두 개 더 얹어 가져갈 수 있다.

   
 
   
 
그래서 재래시장은 사람냄새가 난다.

차가 뒤엉켜 혼잡해 보여도 나름대로의 질서에 따라 물 흐르듯 소통이 이뤄지고 시끄러운 댓거리가 오가도 금방 껄껄대는 웃음소리에 재래시장은 문이 닫히는 시간까지 사람들의 정이 오가는 곳이다.

또 이곳은 수산시장은 아니지만 생선 만큼은 다른 시장과 비교할 수 없는 저렴한 가격과 싱싱함으로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500여 m에 길게 늘어선 200여 개 노점과 상가에서는 손님들과 상인들의 기분 좋은 흥정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아줌마 천 원만 깎아줘요.”

“지금도 밑지고 파는데... 에라 모르겠다, 그렇게 하슈.”

요즘 제철인 주꾸미 한 근을 사면서 손님은 연신 깎아 달라 애교 섞인 목소리로 조르면 맘씨 좋은 넉넉한 체구의 주인아주머니는 기분 좋은 웃음으로 화답한다.

신거북시장 주변에 깨끗하게 단장한 대형 할인마트가 생기면서 손님들이 많이 빠져나갔지만 고향의 향수를 느끼려는 어르신들과 저렴한 가격에 생필품을 구하려는 알뜰족들의 발길은 끊이질 않고 있다.

신거북시장 상인들은 할인마트에 비해 물건가격이나 질이 결코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하고 있다.

신거북시장 상인들은 그러한 자존심을 걸고 곧 할인마트와 전면전을 준비하고 있다.

현재 추진하고 있는 시장현대화 사업을 통해 노점을 현대식으로 정비하고 차양막 등을 설치해 깨끗하게 단장하면 할인마트에 빼앗겼던 손님들의 발길을 다시 돌릴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 김윤근 신거북시장상인회 회장 인터뷰

“주변에 대형 할인마트가 들어선 후 시장이 큰 타격을 입고 있지만 곧 현대화사업이 추진되면 손님들이 지금보다 더 많아질 것이고 나름대로 다양한 방안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노점상과 일반 상인 200여 곳의 업주들이 한데 어우러져 만든 신거북시장상인회의 김윤근(57·강화신발)회장은 시장을 지금보다 더욱 활성화시켜 더 많은 손님들이 찾는 시장을 만들겠다는 바람이 가득하다.

마음씨 좋은 이웃집 아저씨처럼 넉넉한 웃음을 지어보이는 김 회장은 신거북시장이 형성되기 이전부터 지금까지의 과정을 줄곧 지켜본 산증인이다.

“83년에 경인고속도로를 건너는 육교 옆에서 신발가게를 했는데 당시에는 이곳이 비포장도로라 마누라 없이는 살아도 장화 없이 못산다는 얘기가 있을 만큼 비만 오면 장화가 잘 팔렸지.”

그때 장화가 얼마나 잘 팔렸냐 하면 가게에 있는 장화를 모두 팔고 형제들이 운영하는 가게에서까지 장화를 갖다놔도 금방 동났다고 한다.

김 회장의 계속되는 걱정거리는 인근의 대형할인마트로 손님들을 빼앗겨 자구책을 마련하는 것.

“재래시장이 대형할인마트에 비해 좀 엉성하고 복잡한 느낌이 있지만 가격이나 질에 있어서 결코 뒤진다고 보지 않아. 또 재래시장은 가격도 깎고 덤도 요구하면서 흥정을 벌이며 밀고 당기는 인간냄새가 나잖아.”

이런 재래시장을 더욱 발전시키고 손님들의 발길을 다시 돌리기 위해 시장에 비가림막과 일부시설을 현대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또 마트와 경쟁하기 위해 상인들의 교육에도 신경을 쓰고 있다.

“이제는 옛날 재래시장에서 장사하듯 소리만 지른다고 되는 게 아냐. 재래시장 상인들도 현대적인 경영과 판매기법을 배워야 하기 때문에 이를 위한 재교육 방안을 상인회에서 추진하고 있지.”

과거의 복잡하고 지저분한 재래시장 이미지를 벗고 또 한 번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는 김 회장의 발걸음은 가볍기만 하다.

   
 
   
 
# 생선 비린내 속의 금슬 - 정원수산 정재근·오경자 부부

신거북시장 한 쪽에서 노점(정원수산)을 운영하고 있는 정재근(51)·오경자(48)부부는 특이한 행동으로 시선을 모으는 시장의 명물은 아니지만 손님들에게 넉넉한 입담과 푸근한 웃음, 그리고 박하지 않은 인심으로 꽤 많은 단골을 갖고 있다.

부부가 장사를 시작한 것은 7년 전.

당시 거북시장에서 식당을 운영하며 큰 돈은 아니지만 그럭저럭 먹고 살았는데 느닷없이 정 씨가 큰일을 저질렀다.

부인과 상의 한마디 없이 노점에 자리를 편 것.

“식당을 운영하면 돈을 많이 벌 거라 생각했는데 그리 돈도 안되면서 힘들고 고달프기만 했어요. 어떻게 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고향선배가 노점자리를 제안해 앞뒤 가릴 것 없이 일을 저질렀죠.”

부인 오 씨는 당시에 너무 당황했다고 한다.

“노점에서 장사할 거라고는 생각하지도 않았어요.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가게를 열고 하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잖아요. 고등어 머리도 못 잘랐었는데 지금은 생선이 예쁘게 보여 그때 남편의 결정이 잘됐다고 생각합니다.”

정 씨는 새벽 4시면 연안부두 도지부깡에 나가 중매인들에게 그날 들어온 생선 중 가장 싱싱한 것만 골라 오전 8시부터 밤 9시까지 노점에서 장사를 한다.

그야말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천직으로 알고 부인과 함께 노점을 지키고 있다.

“저라고 마누라 고생시키고 싶겠습니까. 큰 돈을 버는 것도 아닌데 1년 내내 더우나 추우나 노점바닥에서 고생하는 것을 보면 항상 미안하죠. 그래도 자식들이 부모들 걱정하는 것을 아는지 큰 말썽없이 커줘 고맙죠.”

정 씨 부부는 자신들이 팔고 있는 생선만큼은 어디에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하고 있다.

“이곳 신거북시장에는 4~5곳의 생선가게가 있는데 어느 곳 하나 손님들을 맞는 데 소홀한 물건이 없어요. 서로 경쟁을 하다 보니 더 싸고 좋은 물건을 갖다 놓기 때문인데 그래서 대형할인마트와 경쟁해도 더 좋다고 자부할 수 있습니다.”

넉넉하게 웃어주는 정 씨 부부의 생선가게에서는 비린내에서 아닌 사람과 사람이 부딪치면서 나는 사람냄새가 물씬 풍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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