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자 경력이 일천한 초보 감독과 연봉 1억원짜리 선수 하나 없는 무명들이 똘똘 뭉쳐 일궈낸 반란.

매달 월급이나 제대로 받을 수 있을까 걱정해야했던 `헝그리 구단' 여수 코리아텐더의 플레이오프 진출은 그야말로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던 꿈의 실현이었다.

시즌 막판 7연패에 빠지기도 했고 플레이오프 진출도 추격하던 팀이 지는 바람에 확정해 아쉬움이 크지만 꿈을 이룬 기쁨은 결코 줄어들지 않았다.

프론트 출신으로 큰 일을 해낸 이상윤 감독대행(이하 감독)은 "끝까지 마음을 놓을 수 없었는데 너무나 기쁘다"며 "선수들이 하나로 힘을 모으지 않았다면 절대로 불가능한 플레이오프 진출이었다"고 자평했다.

시즌 개막 전만해도 모기업의 자금난으로 한국농구연맹(KBL)으로부터 자금을 빌렸던 코리아텐더가 과연 올 시즌을 제대로 마칠 수나 있을까하는 우려를 자아내게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특히 개막을 코앞에 두고 간판스타이자 유일한 억대 연봉 선수인 전형수를 현금을 받고 울산 모비스에 팔아넘길 때에는 이 감독의 마음도 무너지는듯 했단다.

이 감독은 "사정이 있어 선수단 월급이 하루 늦게 나온 적이 있었는데 그때 안드레 페리가 더 이상 못하겠다고 짐을 싸 말린 적이 있다. 그때도 괜찮았는데 형수를 보낼 때는 6강 희망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 같았다"고 당시 심정을 토로했다.

하지만 이 감독마저 낙담하고 있을 때 선수들 사이에서 희망이 피어났다.

누구보다 팀원과 잘 어울리던 전형수를 보낸 일이 오히려 남은 선수들의 투지와 자존심을 자극해 하나로 뭉치는 계기가 된 것.

시즌 시작 전 체력 훈련에 가장 큰 주안점을 뒀던 코리아텐더는 전형수 대신 가드를 맡은 정락영을 중심으로 탁월한 호흡을 과시하며 무서운 스피드로 코트를 휘저었다.

2년차 황진원은 눈부신 성장을 해 주득점원으로 자리를 잡았고 에릭 이버츠와 안드레 페리 등 용병들도 어려운 팀 사정에도 불구하고 성실하게 제 몫을 했다.

또한 신인 진경석과 식스맨 변청운도 감초같은 존재로 팀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운영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여기저기 뛰어다닌 프론트에게서 선수단 뒷바라지까지 기대하기는 어려웠지만 선수들은 전혀 주눅이 들지 않았고 오히려 매 경기마다 `오늘의 수훈선수'가 야식을 준비하는 등 서로를 격려했다.

올스타 휴식기까지 공동 선두를 유지하던 코리아텐더는 하지만 3∼4라운드 들어 체력이 소진되면서 5할 승률에도 미치지 못하며 위기를 맞기도 했다.

특히 수도권에서 원정경기를 치를 때면 몸을 풀 훈련장이 없어 컨디션 조절에 애를 먹어 원정 승률이 낮은 것이 큰 부담이었다.

이처럼 위기가 찾아왔지만 선수단은 서로에게 의지하며 오똑이처럼 다시 일어섰다.

이 감독은 경험이 적은 자신의 한계를 스스로 인정하며 고참 선수들에게 자문을 구하는데 주저하지 않았고 선수들은 "우리가 좋은 성적을 내야 매각도 쉬워진다"며 투지를 붙태웠다.

결국 코리아텐더는 5라운드에서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6연승을 달리며 단숨에 플레이오프 진출 안정권에 들어섰고 천신만고 끝에 97년 이후 6시즌만에 플레이오프에 초대됐다.

이 감독은 이제서야 그동안 감춰왔던 속내를 드러냈다. "그동안은 6강만 외쳤는데 이제는 모든 것을 쏟아부어 우승까지 노리겠다"며 코리아텐더의 진짜 돌풍은 이제부터 시작임을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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