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은우 평택참여자치시민연대 공동대표/국제대학 외래교수

 어제 학교 강의가 끝나고 사무실에 들어오자마자 “산하가 다쳤다”는 다급한 아내의 전화를 받고, 부리나케 달려 가 보니 피투성이 몰골로 서 있는 아들놈이 보였다. 요즘 자전거 타는 것에 재미가 들린 산하가 내리막길에서 서툰 솜씨를 자랑하다 넘어져 얼굴이 바닥에 부딪쳐 다친 것이다. 어느 아주머니가 집에 연락을 해주어 아이를 보다 황급히 달려 온 아내의 놀란 얼굴이 보이고, 산하는 얼굴에 피가 흐르면서도 나를 보자 싱긋 웃는 것이 크게는 다치지 않은 것 같아 다행이다.

급히 차에 태워 병원 응급실로 가는 사이 아내는 차 안에서 흘쩍 흘쩍 울고, 나 역시 걱정을 가득 안고 가는 시간이 무척 길게 느껴진다. 응급실에서 진찰을 해보니 다행히 찢어진 이마 부분을 제외하고는 다른 곳은 괜찮아 바로 찢어진 부분을 실로 꿔매는데 울지도 않고 의젓하게 치료를 받는 아들을 보니 대견스럽다. 아직 초등학교 2학년이라 겁도 많이 날 텐데 칭얼거리는 소리 한 번 없이 치료를 받는 것을 보니 내가 모르는 사이에 아이 스스로 많이 크고 있나 보다. 이마 부분이 많이 찢어진 편이라 흉터가 남을 것 같아 얼짱시대에 걱정이 되지만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다.
아이가 크면서 이런 저런 속상한 일도 일도 발생하지만 아이로 인해서 얻는 즐거움이 크다. 장난기가 많은 아들놈으로 인해 가끔 놀라는 일이 생기기는 하지만 그로 인해 나 역시 성장하는 시간이 되는 것 같다.
아버지가 되고 아버지로 성장하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는 않은 것 같아 속상하기도 하고, 나 역시 크면서 부모님을 많이도 힘들게 했다는 생각이 가슴을 여미게 한다. 그렇지만 작년에 아버지가 자전거를 타다 사고가 나셨을 때보다 아이가 자전거를 타다 사고가 난 것을 보고 더 놀라는 나를 보면서 부모님에게는 늘 불효를 하는 것이 자식이라는 생각이 든다. 부모님의 자식사랑에 비해 자식들의 부모사랑은 너무 옅다는 것이 애달프다.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 산업화의 초석을 일구기 위해 가장 많이 고생을 한 아버지 세대가 지금 설자리가 없는 세상이 돼 있다. 아버지보다 아이들을 먼저 찾는 우리들 세대에 80이 넘은 아버지의 삶은 늘 뒷전이었던 것이다. 나는 언제나 철이 들까?
아프다면 투정을 부리는 아이가 “아빠가 오늘은 등하교를 시켜줄게”라는 말 한마디에 좋아하는 것을 보니 시민운동을 한다며 바쁘다는 핑계로 아이와 별로 놀아주지 못한 내가 많이 반성된다. 평일에 얼굴 한 번 제대로 보지 못하는 아빠를 아이는 어떻게 생각할까 갑자기 두려워진다. 아이에게, 아내에게, 아버지에게 잘하는 시간과 삶을 보내야겠다는 다짐을 갖게 하는 아이의 자전거 사고는 아직 ‘나는 언제나 철이 들까’라는 물음을 자꾸 되새기게 한 사건이다.

그러면서 우리 아이들이 안전하게 자전거도 타고 놀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는 세상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도 간절히 해보게 된다. 내가 클 때는 모든 것이 놀이터인 시대였지만 지금의 아이들은 놀 곳이 없다. 집근처에 자전거조차도 탈 수 없는 환경이 지금의 삭막한 도시 풍경이다. 경쟁에서 살아남는 것이 진리가 돼 버린 환경에서 우리 아이들은 학교에서, 학원에서, 지역에서, 가정에서도 너무나 힘들게 크는 것은 아닌지 아빠들부터 반성해야 할 점이 분명 많은 세상살이다.
사랑하는 나의 아이가 앞으로는 다치는 일 없이 건강하게 성장을 해야 하듯 지역의 모든 아이들이 몸도 다치지 않고 원칙과 상식이 무너진 세상에서 마음도 상처받지 않으면서 즐겁게 성장하면 좋겠다. 그리고 우리의 아버지 세대가 좀더 편안한 노후생활을 할 수 있는 사회적 여건과 우리 사회의 건강성이 좀더 향상되길 희망한다. 젊은 아빠들의 성찰과 변화, 안전하고 쾌적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 할 일이 정말 많은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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