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미디어의 홍수 속에 파묻혀 있는 요즘 중학생들의 사고방식은 기성세대가 살아왔던 과거와는 상상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변하고 있다. 매스미디어를 통해 전달되는 학생들의 다양한 모습을 보면서 혀를 차고 있지만 그들은 나름대로의 가치관을 형성하며 기성세대의 우려를 오히려 고리타분하게 버려야 할 가치로 받아들이고 있다. 기성세대의 눈이 아닌 요즘 중학생들이 바라보는 세계관과 그들이 형성하고 있는 가치관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기 위해 본보는 인천시 동부교육청과 공동으로 중학생 의식조사와 관련한 기획을 마련했다. 동부교육청 교육활동 실태분석팀이 지난 9월부터 10월 말까지 12개 중학교 2천83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중학생 의식실태조사’를 바탕으로 공동 기획한 이번 특집은 4회에 걸쳐 청소년들의 현재 생각과 고민 등을 살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게재순서

1. 미디어, 약인가 독인가.
2. 간섭은 필요 없다.

3. 공부, 어쩔 수 없는 선택?
4. 현실이 싫어요-일탈

1. 미디어, 약인가 독인가.

▶미디어에 빠진 중학생들의 일거수 일투족=인천시 A중학교에 다니고 있는 김모(15)군은 오늘도 집에 오자마자 가장 먼저 컴퓨터를 켠다. 김 군은 오전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들었던 연예인 박모 씨의 루머에 대해 같은 반 단짝인 임모(15)군과 메신저 대화를 통해 정보를 주고받을 요량이다. 그러기를 한 시간 남짓, 박 씨에 대한 나름대로의 분석을 마친 김 군과 임 군은 지난 새벽 부모님 몰래 인터넷으로 시청한 영국 프리미어리그에서의 박지성의 활약에 대해 전문가다운 분석을 내리며 부랴부랴 학원 갈 시간에 맞춰 컴퓨터를 끈다.

   
 

인기 그룹의 팬클럽 회원인 인천시 B중학교에 다니고 있는 이모(16)양은 내신 성적에 부담이 가면서도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가 출연하는 TV 프로그램은 꼭 시청하고 있다. 이 양은 미처 보지 못한 프로그램의 경우 인터넷 팬카페와 각종 동영상 자료를 참고해 반드시 시청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성미다. 팬클럽 협회에서 휴대전화를 통해 실시간으로 스타의 스케줄과 근황을 보내주는 것도 이 양에게는 큰 고마움으로 여겨진다.

얼마 전 휴대전화를 버스에 놓고 내린 C중학교 임모(15)군은 오전 수업 내내 편치 않았다. 초등학교 때부터 수족같이 써오던 휴대전화가 없어진 마당에 수업이 눈에 들어올 리 없다. 점심 시간이 되자 밥은 고사하고 부리나케 버스회사를 찾아가 휴대전화를 찾았고 그 동안 어떤 내용의 문자가 들어왔는지 확인해 본 후에야 깊은 안도의 한숨을 내셨다.

이처럼 요즘 중학생들에게 TV와 컴퓨터, 휴대전화 등의 매스미디어는 잠시도 떨어질 수 없는 생활필수품이다. 매스미디어에 대한 인천지역 중학생들의 시각을 알아보기 위해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중학생들의 미디어 애착(?)은 거의 중독 수준을 넘어서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중학교 때 미디어 ‘애착’이 평생 ‘중독’될 때까지 간다=인천시 동부교육청의 ‘중학생 의식실태 조사’를 통해 중학생들의 휴대전화 이용량을 알아본 결과 문자가 68%로 가장 많았고 다음으로 통화(10.4%), 게임(7.8%), 정보이용(1.2%) 순으로 나타나 휴대전화 용도가 통화보다는 문자를 주로 사용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인천 D중학교에 다니는 신모(14)양은 “말로 얘기해도 되는 상황에서도 습관 때문인지 문자를 꼭 쓰게 된다”며 “심지어 일부 친구들은 잠잘 때도 휴대전화를 꼭 손에 쥐고 자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인터넷 활용 여부를 알아보기 위한 항목으로 ‘방과 후 여가시간에 무엇을 하는가’라는 질문에는 45% 정도가 ‘컴퓨터 등을 통한 미디어 활용’에 시간을 할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컴퓨터 등 미디어를 접하는 시간은 평일에는 하루 1~2시간, 주말에는 2~3시간으로 50% 이상이 하루 평균 1~3시간 가량 이용한다고 답했다.

인천 C중학교에 재학 중인 김모(15)군은 “종종 인터넷을 통해 저녁 늦게까지 온라인 게임을 할 때가 있는데 다음 날 수업 중에 게임 영상이 떠올라 난감할 때가 많다”며 수업에 큰 지장을 받는다고 말했다.

특히, 이번 설문을 통해 인터넷 사용시간과 성적의 상관관계에 보여주는 흥미로운 결과가 눈길을 끌고 있다.

학생 성적을 100점 만점으로 환산해 0점 이상~30점 미만을 하위권, 30점 이상~70점 미만을 중위권, 70점 이상~100점 이하는 상위권으로 각각 구분한 결과, 상위권에 해당하는 학생들은 인터넷 사용시간이 하루 1시간 이내인 반면, 하위권으로 갈수록 인터넷 이용이 하루 1~4시간 정도 늘어나고 있었다.

과학적인 신빙성은 없을지 모르지만 설문조사만을 두고 판단해 볼 때 인터넷을 많이 하면 성적이 낮아질 수도 있다는 결론을 도출하기에 무리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조인희 가천의과학대학교 소아청소년 정신의학과 교수는 “성인에 비해 청소년들은 자기 통제력이 약한 심리적 특성을 지니고 있어 인터넷을 비롯한 미디어 등의 무한한 콘텐츠에 쉽게 노출될 수 있다”며 “이는 학습력을 결정짓는 지적·정의적 능력 및 인간관계 등의 요소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조 교수는 이어 “지나칠 정도로 인터넷에 빠져들 경우 학습장애, 주의력 결핍 등 행동장애가 유발될 수도 있다”며 “가정에서 부모들의 관리는 둘째 치고라도 학교에서도 선생님들이 컴퓨터 관련 숙제를 적게 내주는 관심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대안은 어떻게 세워야 하나?=이번 설문에 참여한 홍미정 상인천중학교 교사는 “아이들과 설문을 마치고 면담을 하는 과정에서 아이들이 어느 정도까지 미디어에 잠식돼 있는지 몸소 실감했다”며 “어린 시절 만화책이나 소설, TV, 라디오 등을 통해 학창 시절을 보냈던 기억에 비해 지금은 상황이 너무나 다른 현실”이라고 말했다.

21세기 최첨단 시대를 살고 있는 요즘 청소년들에게 그저 ‘하지마라’, ‘보지마라’, ‘듣지마라’ 등 억압적인 구닥다리 말로 내놓는 대책은 통할 리가 만무한 상황이다.

하지 않으면 안 되고, 보지 않으면 안 되고, 듣지 않으면 안 되는 세대이기 때문이다.

수년간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청소년들을 가르치는 교사들을 비롯해 수많은 교육 관계자들의 노고가 이어지고 있는 것도 이 같은 이유 때문이다.

홍미정 상인천중학교 교사는 “미디어 홍수에 빠진 학생들을 위해 학교 교육과정에서 미디어를 새롭게 바라보고 이용할 수 있는 기초적인 능력을 길러주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며 “일주일에 하루 정도는 가족 전체가 매스미디어를 자제하는 ‘미디어 프리데이’를 정해 실천해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제시했다.

이주열 인천인터넷중독예방센터장은 “학생들보다 학부모들이 미디어가 끼치는 악영향에 대한 경각심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 문제”라며 “학생들이 미디어에 무방비로 노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학부모들이 학생들이 사용하는 각종 미디어 기기에 대한 사용법을 익히는 등 세심한 관심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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