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버락 오바마 당선자가 대선과정에서 최고의 경쟁자였던 힐러리 로드햄 클린턴을 국무장관에 내정할 것이라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박근혜 역할론’이 재점화 되고 있다. 이명박 정부 출범과 함께 부상하기 시작했던 이른바 ‘박근혜 역할론’은 조금씩 내용과 형식만 달리한 채 지금까지 거듭되다 수그러들곤 했다. 하지만 근래 미국에서 날아든 힐러리 상원의원의 국무장관 기용설의 불씨는 한나라당으로 옮겨 붙어 불길로 번질 기세다. 이러다 보니 요즘 한나라당이 연일 박근혜 역할론 공방으로 뒤숭숭하다.
사실 미국 대선의 승자인 오바마 당선자의 국무장관 제의와 패자였던 힐러리 상원의원의 수용 가능성 시사는 우리의 정치권이 크게 보고 느껴야 할 대목이다. 이는 대통령직을 놓고 격렬하게 대결했던 두 정치 세력의 융합을 의미하기도 하겠지만 치열하게 싸웠던 양 진영이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국민과 국가를 위한 명분으로 화해를 연출하고, 국민의 단결과 애국심을 끌어내는 일에 타이밍을 놓치지 않았다는 점이다. 물론 각 진영의 복잡한 정치적 셈법이 있었겠지만 결과적으로 큰 정치, 큰 정치인의 모습을 적절하고도 필요한 시기에 국민들에게 보여줌으로써 이들 모두가 정치적 명분과 실리를 동시에 챙겼을 뿐 아니라 무엇보다도 국민에게 정치와 정치인들에게 신뢰감을 줬다는 사실이다.
때를 맞춰 우리 정치권에서 한나라당의 ‘박근혜 역할론’이 또다시 부상하는 이유에는 유래 없는 경제 위기와 남북관계 경색 속에서 이명박 대통령을 도와 위기를 타개할 최대의 조력자로 폭넓은 대중적 기반을 지닌 박근혜 전 대표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인식과 기대감이 여느 때보다 높기 때문일 것이다.
‘박근혜 역할론’은 최근 며칠 사이 한나라당 지도부와 ‘친이’ 진영에서 이를 적극적으로 주장하고 나섬으로써 정가의 주요 이슈로 번졌다. ‘친이’ 진영의 사람들은 정권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당의 대표를 지냈던 사람이 앞장서 정권을 도우는 것이 당연한 도리이며, 중요하고도 적절한 시기가 지금이라는 논리로 압박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 반면, ‘친박’ 진영에서는 각자의 방식으로 국가 위기에 기여하는 방식이 있는 것임에도 역할론을 구실로 당을 위한 박 전 대표의 애당심과 소속감을 의심케 하는 매도성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며 저의를 경계하며 불쾌해하고 있다.
홍준표 원내대표, 안상수 의원 등 당내 중진들이 잇따라 ‘박근혜 역할론’에 불을 지피자 당 안팎의 분석과 해석 또한 구구하다. 일각에서는 ‘친이’ 진영의 ‘친박’세력 압박용이라는 분석과 이명박 대통령에게 ‘정치권 입각’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요구하기 위한 한나라당의 지도부의 전략적 노림수가 깔려 있다는 풀이가 나오고 있다. 정치권 입각의 필요성에는 ‘친이’ 및 ‘친박’계가 공감하고 있다는 것이다.
박근혜 압박용을 제기하는 데에는 박 전 대표가 현실적으로 이 대통령을 도울 가능성이 없다는 전제 하에경제난, 대북경색, 정치력 실종 등으로 인한 국가위기 상황이 닥쳤음에도 박 전 대표가 정권 조력을 계속해 거부한다는 모습을 비춰지게 함으로써 정치적 부담을 지워 향후 독자행보를 할 수 없도록 ‘친이’측이 선제공격을 가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또 다른 분석으로는 위기극복을 위해 지금의 내각과 청와대 참모진들로는 한계가 있는 판단 하에 ‘박근혜 역할론’을 빌어 당 출신 의원들을 계파를 초월해 대거 입각토록 이 대통령에게 압박함으로써 이를 당내 화합의 기회로 삼고자 하는 중진들의 고육책이 담긴 다목적 포석이라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어쨌든 ‘박근혜 역할론’이 다시 불거졌고, 의도가 있든 없든, 싫든 좋든 논쟁은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박 전 대표가 내놓을 답과 향후 행보가 기대되고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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