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훈동 수원예총 회장/시인
 겨울은 마지막과 처음이 겹치는 계절이다. 그래서 겨울은 끝이 아니라 시작하는 계절이자 준비하는 계절이다. 요즘 일반 서민들은 겨울날씨만큼 한기를 느끼고 있다. 지금 닥친 경제위기의 끝이 언제일지 아무도 모른다. 어디쯤이 바닥일지 감 잡기도 힘들다.
관가는 인사태풍으로 술렁거린다. 산업현장에는 감산, 감원 바람이 거세게 몰아치고 있다. 외환위기(IMF)때도 감산 없이 지낸 포스코도 창사 이래 처음 감산을 결정했다. 감산 도미노는 전자업계로 번지고 있다. 단축근무를 하는가 하면 공장가동을 중단하는 업체가 늘어만 가고 있다.
연말 민의의 전당은 전쟁터로 변했다. 한미자유무역협정(FTA) 비준 동의 문제로 국회는 물 대포, 분말소화기, 해머, 전기톱이 등장해 아수라장을 이뤘다. 외신의 톱뉴스가 될 정도다. 경제위기의 직격탄을 맞은 서민층의 아픔을 저들은 정녕 아는 것인지 묻고 싶다. 이래도 괜찮은 것일까. 정치는 ‘가능성의 기술’이다. 가능성의 기술을 발휘하지 못한 여야는 함께 비난받아 마땅하다. 대한민국의 모습은 정말 슬프고 고단하다.

끝 모르는 침체의 나락으로 빠지는 경기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미국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사실상 무제한 통화 공급을 선언했다. 발권력을 동원해 경기급락을 막겠다는 선언이다. 미국의 제로 금리는 빈사상태의 경제에 자극을 주기 위한 극약 처방이다. 모두가 벼랑 끝 전법이나 마찬가지다. 세계 기축통화인 미 달러화가 흔들리고 있는 듯해 불안하다.
대통령과 행정부, 정치권이 나서서 국민 모두가 미래에 대한 불안심리를 털고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해줘야 한다. 아무리 꽁꽁 얼어붙었던 얼음도 언젠가는 녹는다. 절망 넘어 희망으로 시작하는 겨울이면 좋겠다. 묵묵히 봄을 기다리는 씨앗의 품에 희망이 흐르듯 따뜻한 햇살이 넘치게 말이다. 모든 위기는 가장(假裝)을 하고 나타난 기회다.
경제주체가 함께 나서야 한다. 경제지표나 체감경기가 갈수록 나빠지자 한 푼이라도 아껴 쓰려는 분위기가 뚜렷하다. 무조건 지출을 줄일 게 아니라 필요하다면 과감하게 소비활동을 해야 한다. 지갑을 닫는다고 능사는 아니다. 세계 경제가 동반 침체에 접어들었다. 수출 의존형 성장구조를 가진 우리 경제는 당분간 수출환경이 나아지는 건 기대하기 어렵다. 소비는 수출이나 투자보다 고용유발 효과가 크다. 건전한 소비활동이야 말로 지금의 경제를 지탱하는 버팀목이 된다. 극심한 소비 침체는 문제다. 정부는 가계소득을 확대할 수 있는 각종 소비활동 지원대책을 내놔야 한다.
정부는 은행의 체력을 키워줘 제 기능을 할 수 있게 ‘은행자본확충 펀드’ 카드를 끄집어냈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중소기업자금을 풀어라 해도 꿈쩍 않던 은행들이다. 은행의 금고가 넉넉지 못해서다. 국제결제은행(BIS)기준 자기자본비율이 낮아지기 때문이다. 돈 줄을 쥔 은행이 시름시름 앓다보니 정부와 한국은행이 나선 것이다. 은행 건정성만큼은 우량한 축에 들게 만드는 데 큰 힘이 될 듯 하다. 이제 은행권도 중소기업 살리기에 적극 뛰어들어야 한다.

힘들고 어렵다고만 하지 말고 십시일반으로 ‘나의 몫’을 나누는 삶을 갖자. 아무리 세월이 엄혹해도 당장 죽을 일은 없다. 농촌진흥청은 170억 원의 예산을 절감해 그 돈으로 계약직 직원을 뽑았다. 취업난에 시달리는 청년들에게 일할 기회를 주기 위해서다. 시의적절한 착상이다. 전체 직원의 4분의 3에 육박하는 2천757명 규모다. 좋은 사례라 해서 이명박 대통령에게서도 칭송까지 받았다. 정말 칭찬받을 만한 일이다.
다른 행정부처나 연구기관에서도 예산을 아껴 인턴사원을 더 많이 채용할 수 있는 길을 마련해야 한다. 감원, 감산만 할 것이 아니라 나누는 일이 절실하다. 그것은 희망의 빛을 주는 일이기에 그렇다. 아무리 긴 터널이라도 끝은 있게 마련이다. 희망의 불씨가 넘어서지 못할 턱은 없다. 어려울수록 심호흡 크게 하며 길고 멀리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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