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석용 인천대 경제학과 겸임교수

 우리나라의 역대 정권들은 하나 같이 토목 건설에 명운을 걸어왔다. 주택보급률을 끌어 올린다는 명목으로 졸지에 주택 200만 호 건설을 밀어붙이기도 했고, 교통소통체계를 선진화한다고 초고속 철도를 건설하는가 하면, 한국판 홍콩을 만들겠다고 하다가 초대형 공항을 건설하기도 하고, 농토를 확장한다고 무지막지하게 새만금 갯벌을 메워버리기도 했다. 서울도 옮기고 지방균형발전이다 뭐다 해서 전국토를 토목 건설공사판으로 몰아넣었다. 그래서 지금 우리나라에는 세계 최대 규모를 지향하는 항만이 네 개씩이나 건설 중에 있고 경제자유구역이 끝없이 늘어나는 중이다. 도대체 이 광란은 어디가 끝인지 알 수가 없다. 경제를 살린다고 전 국토에 골프장에 스키장이고 아파트를 보지 않을 수 있는 땅뙈기는 이제 이 국토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정말, 요 조그만 금수강산이 불쌍해서 눈물이 난다.

건설을 하면 경제가 산다고 한다. 일자리도 많이 생겨난다는 주장이 또다시 극성이다. 사실일까. 그럼 왜, 지금까지 이렇게 사상 유례를 찾을 수 없을 만큼 전 국토를 파헤쳐댔건만 한국 경제는 계속 바닥을 헤매고 청년 실업의 비명은 높아만 가는가. 각 사업계획이 발표될 때마다 따라붙던 생산유발효과와 일자리 창출효과를 모두 합치면 아마도 이미 선진국의 경제 수준을 넘어서고 남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문제는 그렇게 퍼부은 돈들이 모두 어디로 갔는가에 있다. 길게 생각할 것도 없지 않은가. 우리나라의 열 손가락으로 꼽는 대형 건설업체들과 그 주변에서 크고 작은 고물을 나누어 먹은 사람들의 주머니 속일 뿐이 아닌가. 지금 인천의 수많은 개발 현장에서 이 같은 사실이 확인된다. 모든 주요사업을 초대형 건설자본들이 수주하고 중소 지역건설업체들은 그들로부터 심지어 설계금액의 60%에도 미달하는 금액으로 하청을 딴다. 적자가 나지 않으면 다행이다. 이런 상황에 아무리 하늘에서 돈을 뿌려댄들 어떻게 땅이 젖겠는가. 게다가 벌이는 건설사업마다 원자재와 에너지 비용에 대규모로 포함된 달러가 해외로 빠져나간다. 요즘은 대형공사라면 거의 모두 설계부터 감리까지 외국인 기술자들의 손에서 이루어진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시설물들이 빠져나간 달러를 그 이상으로 벌어들일 수 있을지는 항상 미지수다. 단적으로 아파트가 달러를 벌어들일 방법이 있겠는가. 이런 구조 속에서 어떻게 경제가 성장하겠는가.
복잡한 학문적인 이야기를 논할 것은 아니라 하고... 어떤 경제 단위라고 하더라도 하체가 튼튼해야 활기가 있고 지속성이 생긴다. 상층부가 가지고 또 가져봤자 생산에 대한 의욕은 저하하고 도덕적 타락만을 가속화한다는 것을 미국의 위기가 웅변으로 보여주지 않는가. 그들 주머니에 들어간 돈은 대형 투자처를 찾지 못할 때 비생산적인 투기자본화하기 쉽고 세상의 상식적 질서를 파괴하는 괴물로 변한다. 돈은 낮은 곳에 있을 때 건강하다. 사회적인 구매력을 증가시키고 화폐의 유통속도를 높인다. 사회의 낮은 지역이 희망과 의욕을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을 만큼 돈을 밑으로 내려 보내야 한다는 것이 경제정책의 요체다.

인천에서 당장 그런 실험이 가능하다. 구도심 재생사업의 많은 부분을 주민조합에게 넘겨주어라. 그리고 지역의 건설업체 컨소시엄과 이런 주민 조합을 묶어 주고 지방재정이 보증과 지원을 제공하라. 쓸데없는 대형 개발사업비와 대형행사비용을 뭉텅 잘라내어 인천의 중소제조업들에게 실질적인 자금 지원계획을 수립하라. 그들 손으로 그들이 살 도시를 건설하게 하고 그들 스스로 그들의 경제를 만들게 하라. 지방행정은 그러한 결속이 이루어지고 자생력이 형성될 수 있도록 불안 요소를 제거해 주고 지원하라. 모든 도시 건설의 이익이 시민 스스로에게 돌아가도록 궁리하고 또 궁리하라. 권력의 독점은 경제의 독점을 조장하고 자본주의는 독점 속에서 썩고 병들어간다. 자본주의 성립의 절대원칙은 자유롭고 공정하며 제한 없는 참여가 아닌가. 권력이여, 제발 독선의 유혹을 떨쳐버리고 원칙으로 돌아가서 좀 더 낮은 곳을 돌아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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