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의 국회 대치상황이 파국으로 치달으면서 이른바 ‘입법전쟁’의 전운이 고조되고 있다.
한나라당의 한미 FTA 비준동의안 상임위 단독 상정 강행으로 잔뜩 독기를 품은 민주당은 3개 주요 상임위 회의실뿐 아니라 26일부터 본회의장까지 점거해 농성을 벌이고 있다. 이에 뒤질세라 한나라당도 주요 법안의 연내 강행처리 방침을 연일 강조하고 있어 또 한번 망치와 전기톱이 동원되고 소화기가 분사되는 난장판 국회의 재연이 우려된다.

본회의장 점거와 관련, 민주당이 당위성을 강변하고 나서자 한나라당 홍준표 원내대표는 “탄핵 때처럼 끌려 나가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소위 국민적 저항을 불러 일으키려는 자해정치”에 불과한 것이라며 맹비난하는 등 여야가 공방을 거듭하고 있다. 여야의 이런 확연한 인식의 차와 불신은 당분간 극복되기 어려울 전망이다. 국민들의 우려와 탄식에도 불구, 정치권은 이번 사태에 따른 득실의 셈법을 놓고서 속내가 복잡해 보인다. 국민들은 이번 한미FTA 비준동의안 상임위 단독 상정에 따른 여야의 충돌사태에 대해 정치권 전체에 대한 환멸을 나타내면서도 물리력을 동원한 민주당에 1차적 비난을 쏟았다. 하지만 며칠 후 실시된 몇몇 여론조사에서는 물리적 충돌 책임이 민주당에 비해 한나라당이 더 크다는 응답을 했고, 민주당의 지지율 또한 소폭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각에서는 민주당의 이번 본회의장 기습 점거와 관련, 이 같은 여론의 흐름이 작용했을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여야가 싸울 때는 여론상 통상 여당이 불리하다는 사실에 기인하기도 하지만 압도적 의원수를 확보하고서도 여당 노릇을 못해낸 한나라당에 대한 질책으로 보여진다. 결국 이번 싸움에서는 한나라당이 상대적 손해를 본 셈이다.
그럼에도 한나라당은 쟁점법안에 대한 연내 강행 처리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다. 반면, 민주당은 법안을 강행 처리할 경우 장외투쟁은 물론 ‘의원직 총사퇴’라는 초강수의 카드를 꺼내들겠다며 한나라당을 압박하고 있다. 극한 상황이 연출될 경우, 한나라당의 고민도 깊어지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이명박 정부는 정권 출범 2년을 맞아 개각을 포함한 대대적 국정쇄신을 준비해야 하고, 무엇보다 경제난 극복을 위해 정치권의 협력이 절실한 시점에서 대치정국의 연장은 국정운영의 최대의 걸림돌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민주당이 예상외의 여론의 지지를 업게 될 경우, 내년 2월 임시국회에서 파행의 명분을 얻게 되고 4월 재보·선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한나라당의 쟁점법안 강행처리 전망과 관련, 한나라당이 대오를 정비해 물리적 충돌을 감수하고서라도 연내 강행처리를 시도할 것이라는 분석과 명분을 축적한 뒤 연초에 기습처리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 김형오 국회의장에게 경위권 발동과 직권상정을 요청할 것이라는 관측 등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김 의장이 경위권까지 발동해가면서 법안 처리에 임해 줄지는 미지수다. 민주당과의 ‘유화론’이 제기될 가능성도 있다.

이번 사태의 책임에는 분명 민주당에게도 있다. 그러나 더 큰 책임은 한나라당에 있으며, 파국을 막을 해법 또한 한나라당이 갖고 있다. 한나라당은 민주당이 국회 정상화에 응할 수 있도록 명분을 갖춰 줘야 한다. 강공책만이 능사가 아니란 점을 민주당도 잘 알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치 쟁점 법안이 아닌 민생살리기 법안 등 시급한 현안부터 처리해 나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상식적인 대화와 타협으로 의회민주주의의 원칙을 지켜야 한다. 김 의장 또한 한나라당 출신의 국회의장이 아닌 입법부 수장으로서의 책무를 다시 한 번 되새겨야 한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