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그다드=연합뉴스)이라크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수도 바그다드에선 여전히 교전이 계속되고 화염이 피어오른다.

관공서와 병원, 호텔, 박물관이 약탈당해도 아무도 저지하지 않는 무법천지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12일 처음으로 둘러본 바그다드는 불안과 혼돈, 공포의 도시 그 자체였다.

미군의 가공할 공습과 치열한 전투를 겪은 바그다드는 생각보다 훨씬 처참한 몰골을 드러내고 있었다.

바그다드공항에서 시내 카나다우만 광장으로 통하는 도로는 온통 화염으로 그을린채 총탄과 포탄피로 범벅이된 상태였다.

포탄 구덩이가 파여진 도로변 곳곳에 불타버린 탱크와 트럭, 승용차가 앙상한 잔해를 드러내고 있고, 도로의 가드레일은 엿가락처럼 휘어졌다.

애꿎은 나무들도 폭격을 맞아 여기저기 드러누웠고 전투 중 숨진 것으로 보이는 이라크 병사의 시체가 파리 떼 세례 속에 도로 위에서 썩어가고 있었다. 폭격당한 공장과 관공서 건물들에선 여전히 연기가 피어오른다.

폭격과 전투로 파괴된 도시 곳곳에 탱크와 무장트럭을 앞세우고 포진한 미군들은 이라크군 잔당들과 여전히 전투를 계속하고 있다.

바그다드 공항에서 시내 팔레스타인 호텔까지 진입하는 1시간여 동안 무려 9차례나 총성 또는 포성이 들려왔다.

공항에서부터 AP, CNN, 터키 N-TV, 연합뉴스 등 4대의 취재차량을 호위하던 미군들은 교전지구가 다가오자 "더 이상은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며 돌아가버렸다.

이런 살벌한 상황은 일시적인 것이려니 했지만 오후 들어서는 총성이 오히려 잦아지고 격렬해졌다.

그래도 바그다드 시민들은 두려워하지 않는 기색이다.

모진 전화를 이겨내고 살아남았음을 확인이라도 하려는듯 사람들은 거리를 활보했다.

대부분의 상점들이 문을 닫은 거리를 낡은 샌들을 신은 사람들이 끊임없이 오갔다.

이들중 일부는 외국인 취재차량을 보고 손가락을 치켜올리며 환영의 뜻을 표하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냉담한 시선을 보냈다.

오랜 공습과 포성에 지친 바그다드 시민들은 이제 목마름과 약탈, 암흑의 공포에 떨고 있다.

약탈자들은 곳곳에서 훔쳐나온 물건들을 버젓이 들고 대로를 휘젓고 다닌다.

물건을 훔친 뒤엔 불까지 지르는 일도 많아졌다. 관공서를 대상으로 하던 약탈의 범위도 민간인들 상대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시민들이 구성한 자경단과 약탈자들 간에 총격전도 벌어지는 상황이다.

일부 시민들은 거리에 진주한 미군들에게 다가가 "왜 약탈자들을 방관하느냐"고 항의하는 모습도 보였다.

기자들이 대거 묶고 있는 바그다드의 팔레스타인 호텔에는 이날 약탈자들의 만행을 알리는 호루라기가 울렸다.

이 호텔로 달려온 말레이시아 적십자사 관계자는 "구호활동을 벌이던 의사 1명이 약탈자들의 총격으로 죽고 1명은 납치됐다"고 호소했다.

시민들의 비난 여론에 밀린 미군과 이라크 반체제 단체들은 이날부터 치안 확보방안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이라크 경찰이 14일부터 미군이 제공하는 자동차를 이용해 도심 순찰에 나선다는 발표도 있었다.

하지만 곧 전쟁이 끝나고 평화와 질서가 회복될 것이란 기대는 요원해보인다.

"현재와 같은 혼돈과 공포속에선 민주주의와 평화를 회복하겠다는 미국의 약속은 `벌룬(풍선)' 같은 것일 뿐"이라고 이라크 언론인 알라 할릴 나사르씨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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