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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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
  • 기호일보
  • 승인 2009.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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몹시 언짢거나 뜻대로 되지 않으면 누구나 성이 난다. 못마땅한 꼴을 보면 노염을 타 화가 불끈 솟고 시원하게 풀지 못하면 속을 끓이게 된다. 살면서 수시로 부딪치는 성정이 화다. 화(火)를 잘 다스리면 화(和)가 되지만 잘못 다스리면 화(禍)가 돼 돌아온다. 자각은 하는데 조절하기가 쉽지 않아 늘 문제다. 홍채의 신축으로 동공의 수축과 확대가 일어나 안구에 들어가는 빛의 양을 조절하듯이 사물을 바르게 보려면 지나친 밝음과 진한 어둠에서도 감정과 분노를 조절할 줄 아는 마인드컨트롤이 필요하겠다. 화를 참지 못하는 이웃과 같이 있으면 덩달아 화가 뻗친다. 전염성 강한 애물단지다. 분노를 삭일 줄 모르면 사소한 일을 두고두고 곱씹고 되새겨 혼자 폭발하고 급기야는 상대방에게 치명적인 가해를 한다. 다독거리며 풀어주고 들어주어도 몰라라 되받아 치고 나오면 난감해진다.
근래에 마을버스 안에서 경험한 일이다. 하교하는 학생들과 퇴근하는 직장인들로 복잡하고 소란스러운 버스를 탔는데 여자의 화난 목소리가 들렸다. 뒤돌아 서 있어서 얼굴을 보지 못해 휴대전화로 상대방과 심한 언쟁을 하나 보다 속으로 생각했다. 공공장소에서 대놓고 감정을 격하게 드러내는 여자가 궁금했지만 바로 뒤라 돌아보기가 민망해 그냥 있었다. 상대를 무차별적으로 공격하던 여자가 버스 문 쪽으로 나왔다. 내가 내리는 이번 정류장에 내릴 모양이다. 그런데 깜짝 놀란 일은 여자를 보고 나서다. 만원버스 안에서 체면이나 부끄러움을 생각하지 않고 함부로 막말을 할 정도면 적당히 나이 먹은 여자일 것이라 생각했다. 순탄한 삶을 살아오지 않은 얼굴에 신산스러운 생활이 묻어 있으리라는 선입견을 배반하듯 여자는 너무 젊었다. 많이 봐야 삼십을 넘지 않을 외모였다. 거기다가 더 충격은 여자의 화풀이가 휴대전화를 통해 상대방 남자에게 퍼부어지는 것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혼자서 하는 화풀이였다. 분노를 이기지 못한 여자는 버스 천장에 상대가 있는 것처럼 눈에서 화기를 뿜어내며 삿대질까지 하면서 저주의 욕을 퍼부었다. 승객들이 오히려 민망해 하며 고개를 돌렸다. 주위의 시선에 무감각한 여자는 터져 버릴 것 같은 화가 조절이 안 돼 어쩔 줄 몰라 했다. 정류장에서 내린 여자는 또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종주먹질을 해댔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모두 쳐다보아도 여자의 분노는 여전했다. 내용이 남자에게 배신당한 것 같은데 극단적인 복수를 말하는 여자의 언사가 안쓰러우면서도 거부감이 들었다. 저 젊은 나이에 분노 때문에 자극적인 언사를 하고 그것이 자신을 얼마나 비참하게 망가뜨리는 일인지 자각하지 못하는 젊은 여자의 피해의식이 속상했다.

분명 뭔가 원인이 있을 테지만 과정을 무시한 채 결과에만 집착해 상대방을 흥분시키고 충돌을 일으켜 극단의 말과 행동으로 분노를 키우는 사람은 곤란하다. 살면서 수시로 분노를 치솟게 만드는 그 무엇이 본인에게도 원인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 보면 풀어 가기가 쉽지 않을까. 상대방과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나와 다르면 무조건 상대방이 틀렸다고 몰아세우면 결국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 분노로 꽉 찬 가슴이 화를 삭이지 못해 파행을 거듭하다 보면 신의도 잃고 사랑도 잃는다. 화도 다스리는 치료를 하면 좋아진다고 한다.
오늘 버스에서 본 젊은 여성의 분노가 마음 아프다. 상처 입은 가슴이 안쓰러워 내 마음도 이리 아픈데 그녀는 오죽할까마는 저렇게 불같이 타올라 자신을 망가뜨려도 결말이 좋아지지는 않을 것 같아 속상하다. 격한 감정을 잘 수습해 그녀의 고운 나이처럼 마음을 예쁘게 추슬렀으면 좋겠다. 생각해보면 서리와 눈과 비바람이 내 삶에서 꼭 나를 망치고 힘들게 하는 데로만 작용하지는 않는다.
선진국에서는 분노에 찬 사람은 대통령이나 지도자로 뽑아 주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정치인들은 이미지 관리를 위해 화를 컨트롤 해 주는 전담 매니저를 채용하기도 한다. 리더십 기관에서 가장 중점을 두는 교육이 감정과 분노를 자제하는 방법이라는데, 화를 잘 다스려 정말 화(火)가 화(和)로 화합하는 법을 제대로 몸에 익히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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