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가대원

▶유주면(82학번, 기계학과·등반대장)
▶홍상오(96학번, 컴퓨터공학과)
▶정영민(99학번, 경영학과)
▶정지연(02학번, 경제학과)
 <등정대원 - 유주면 대장 및 정지연 대원)

 # 고산등반의 시작

호텔에서 일어나 창문을 바라보니 올라가야 할 엘브루즈의 두 개 봉우리(동봉과 서봉)가 보였다. 우리는

   
 
아침을 서둘러 먹고 등반장비를 챙겨 상행 케이블카에 올라앉았다. 이곳은 러시아의 대표적인 관광지 중 하나일 뿐만 아니라 러시아 국경이기 때문에 3천800m까지 케이블카로 이동할 수 있었다. 물론 타스콜이 해발 2천m이기 때문에 올라가는 높이는 1㎞ 남짓이다. 케이블카를 타면 대원들의 체력을 아낄 수 있어 좋았으나 고소적응 측면에서는 부정적이기 때문에 걱정을 했다. 그러나 막상 3천800m까지 올라 보니 몸에는 별 이상이 없어 보였다.
케이블카에서 내려 바라보는 설경은 참 신기했다. 한여름의 눈. 바로 한 시간 전까지 반팔을 입고 있었는데 이곳은 눈부시게 하얀 눈으로 가득했다. 날씨는 봄날처럼 따뜻하고 온 세상은 눈으로 가득한 참으로 이상한 분위기였다. 우리는 전진캠프까지 움직였다. 4천200m에 캠프를 설치하기로 하고 우리는 등정 기간 중 먹을 식량과 연료, 등반에 필요한 장비를 옮기기 시작했다. 몇 시간 동안 눈 속을 헤치고 올라가 텐트를 치고 다시 내려와 짐을 들어 올리니 머리가 조금 아파왔다. 두통의 시작이었다.
저녁 무렵 즈음에서는 머리가 너무 아파 움직이지 못했다. 그때까지 무엇인지도 몰랐던 고산병의 시작이었다. 두통은 고산병의 대표적인 증상 중 하나다. 등반대원 중 한 명인 정영민 대원의 증상이 심각했다. 나 역시 머리가 아파 팔 하나 꿈쩍할 수 없었고 결국 식사 당번은 유주면 대장과 비교적 상태가 좋은 막내 정지연 대원이 담당했다.
우리는 우선 고소에 적응하고 체력을 아끼는 게 최고의 방법이라 생각하고 캠프에서 다소 긴 시간을 갖기로 했다. 나는 캠프에서 움직이지 않으면 등정은 고사하고 텐트에서 누워 있다 집으로 갈 것 같아 일단 움직이기로 마음먹었다. 전에 국경 수비대 초소로 쓰였다가 화재로 인해 소실된 프리우트(Priut)11이라는 캠프를 중심으로 300m 가량 고도를 높여 산 위로 올랐다가 다시 내려왔다. 그러나 머리는 조금도 나아지지 않고 한 걸음, 한 걸음 움직일 때마다 머리를 망치로 맞는 느낌이었다.

 

   
 
# 정상을 향한 등정의 시작

8월 4일 드디어 3일의 고소적응 기간이 지나고 우리는 본격적인 등정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우선 날씨 관련 정보를 인접 캠프에서 수집한 후 다른 원정대보다 먼저 새벽 3시에 기상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본격적 등반의 시작이었다. 달도 뜨지 않은 칠흙 같은 어둠 속에서 우리는 출발했다. 산 위에는 우리보다 먼저 출발한 다른 등반대의 헤드랜턴(머리에 쓰는 조그만 등)만이 반짝거리며 빛나고 있었다.
묵묵히 길을 찾아가며 오르기 시작한 지 어느덧 2시간이 지났다. 멀리서 여명이 밝아오고 검었던 산이 조금씩 모습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주의를 둘러보니 온통 멀리서 봐 왔던 두 개의 웅장한 봉우리의 모습은 어디 간 데 없고 눈으로 만들어진 흰 벽만이 내 앞길에 있을 뿐이었다. 이제 완연히 밝아진 모습으로 주변이 보이기 시작했다. 발 밑으로는 까만 점으로 우리의 캠프가 보였고 위로는 많은 등반 팀의 등반 모습이 보였다. 좌우의 깎아지른 듯한 설벽은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거의 ⅔를 넘게 올라오자 바람과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바람은 주변의 눈을 흩날리게 만들고 눈은 시야를 가리게 된다. 그 결과로 안개처럼 모든 것을 가리게 한다. 일반적으로 말하는 화이트 아웃 현상이다. 화이트 아웃일 때는 주변의 모든 것이 하얗게 보여 방향감각과 공간감각을 완전히 상실하게 된다. 그러나 우리는 등반을 계속 진행하기로 결정하고 오르기를 멈추지 않았다.

   
 

같이 올랐던 많은 등반대가 등반을 포기하고 내려갔지만 우리는 꿋꿋하게 눈보라를 뚫고 나아갔다. 물론 전진하기가 쉽지 않았다. 온몸에 눈이 얼어붙고 우리가 쓴 안면마스크도 얼어붙기 시작했다.

 #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후배들을 격려하며 죽을 힘을 내서 올라갔다. 몇 시간 동안 피켈을 얼음에 내려치며 정상을 향해 정신없이 올랐다. 드디어 정상에 도착했다. 정상에 올랐지만 기쁨을 느낄 겨를이 없었다. 내려갈 일이 막막하고 너무 추워 오직 빨리 내려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고도를 많이 높여 이미 두통도 심해진 데다 체력도 많이 고갈된 상태여서 위험한 상황이었다. 올라간 대원들과 서둘러 사진 촬영을 마치고 하산을 시작했다.
체력이 탈진된 상태에서의 하산은 위험하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그리고 서둘러 내려가기 시작했다. 정상에서 베이스 캠프를 향해 30분간 가량 하산하고 있는데 갑자기 짙은 구름이 몰려들어 눈보라가 치기 시작했다. 또다시 화이트 아웃 현상이다. 지친 우리 대원들이 대열을 이룰 새도 없이 뿔뿔이 헤어졌다. 나도 방향감각을 잃고 정신없이 아래로만 내려갔다. 날씨를 쉽게 생각하고 빨리 내려갈 생각에 대원끼리 묶는 안자일렌을 안한 것이 후회됐다.

   
 
정상에서 그렇게 두 시간쯤 내려가니 아래 멀리서 외국 원정대원들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이젠 살았구나 하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안심이 되니 다시 다리에 힘이 실린다. 목소리가 난 쪽으로 뛰다시피 걸었다. 다행히 눈보라가 그치고 약간씩 개기 시작했다. 멀리 우리 베이스 캠프가 보였다. 화이트 아웃에도 불구하고 무사히 베이스 캠프까지 내려올 수 있었다. 나머지 대원들도 늦었지만 지친 상태로 캠프로 돌아왔다.

다음 날 우리는 하산 준비를 했다. 원정 내내 괴롭히던 두통은 마지막 그날까지도 힘들게 했다. 산을 완전히 내려오고 나서 그날 저녁 대원들은 그 동안 겪은 힘들었던 엘브루즈 산행에 대해 말하느라 긴 밤을 새웠다.

 # 7대륙 원정대 엘브루즈 원정을 마치며

나는 인천대학교 7대륙 최고봉 원정 중 2번째인 엘브루즈 원정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장기간의 준비 과정과 원정 기간 중 땀과 열정을 가지고 우리는 인천대학교 학우들과 졸업생을 대신해 올랐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얻은 즐거움과 기쁨, 그리고 성취감은 아직도 내 삶의 소중한 보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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