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수술 안 한다. 그리 알고 부산스럽게 하지 마라. 인명은 재천이라 했다. 이 세상 와서 내 책임 다 끝냈으면 아쉬울 것도 없다. 이만하면 살 만큼 살았다.”
아버지는 여전히 단호하시다.
“이제 갈 때 되면 조용히 부름에 따를 것이다. 수술 후에 항암치료 받고 그 힘든 수발 자식들에게 떠넘기고 싶지 않으니 더 이상 성가시게 하지 말거라. 독한 약에 사람 모양새 지탱하기 어려운 내 모습 보는 것도 원하지 않는다. 결국은 누구나 다 죽는 것인데 애달플 것도 없다.”
아버지. 아버지 가슴에 들어있는 종양 덩어리는 아버지의 힘겨운 들숨과 날숨이 만들어낸 조개 몸속의 진주 같은 것일 거예요. 우리 5남매 자라면서 전 아버지께서 짊어진 삶의 무게가 그렇게 힘든 것인 줄 정말 몰랐어요. 다만 가난한 농군의 아들이라 그 시대 누구나 겪었을 지독한 가난과 배움에 대한 열망 사이에서 힘겨운 젊은 시절을 보내셨겠거니, 생각만 했었어요.
병이 깊어 농사일은 그만두고라도 거동조차 힘든 아버지. 넷이나 되는 어린 동생들, 생활력 없는 노모까지. 책임져야 할 가족이 당신만 쳐다보고 있는 형편인데 서울로 와서 학교 다니기가 송구스러웠다는 당신. 냉방에서 홑바지만 걸치고 소금 종지 하나에 죽이 될 정도로 풀어지게 끓인 국수로 허기를 채우셨다면서요. 고향 동네에서는 이제 저 집, 지긋지긋한 가난 벗어던지고 팔자폈다고. 아들이 서울대학생인데 고깃국에 쌀밥 정도가 대수이겠느냐고 속모르는 말들이 무성했다면서요.
동생 넷 다 결혼시키고 한숨 돌릴 틈도 없이 이제 당신 다섯 남매 키우고 교육시키시느라 또 허리가 휘었겠지요. 그래도 풍족하진 않았지만 크게 부족한 줄 모르고 저희는 자랐습니다. 홀어머니 부양에 오 남매 장남으로 가장 역할에 당신 처자식 건사하기에, 당신은 언제나 책임감에 눌려 아파도 안 되는 몸이었다면서요. 하나둘 결혼한 동생들이 자리 잡고 가세가 조금씩 펴지는 것을 보면서 너무도 흐뭇해 하시고 좋아하셨던 당신. 늘 아들 셋 딸 둘, 5남매는 하늘이 내려준 복이라며 우리 집은 천복을 타고났다고 저희들을 자랑스러워 하셨던 당신. 결혼해 아이 키우면서 아버지처럼 그렇게 감사하게 여긴 적이 있었나, 돌아보면 부끄러울 뿐입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아버지 잠드신 모습은 참 신기했어요. 유치원생이 그린 그림 속의 해님처럼 웃고 있는 모습이에요. 눈썹과 눈꼬리와 입술이 만들어 낸 해님의 미소는 당신의 삶이 만들어 준 자화상이겠지요.
타국도 아닌 같은 나라에 살면서 거리가 멀다는 핑계로, 일 년에 고작 서너 번 찾아뵙는 아버지를 오늘은 병원에서 보게 되었어요. 이제는 내 몸무게보다 가벼워진 몸피로 창밖을 내다보시는 뒷모습에 마음이 아려왔는데, 아버지의 앙상하게 솟은 빗장뼈를 마주한 순간 울컥 울음이 나왔어요.
아버지, 이제 좀 편하게 쉬세요. 당신의 폐에 자리 잡은 종양은 강퍅한 책임을 버텨내느라 몰아쉬었던 뜨거운 숨결에 덴 상처 같아 마음이 아픕니다. 타인에게 너그러우신 당신이 왜 자신에게는 그리도 엄격하신지요? 신세지거나 폐가 되는 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철저하게 자르시는 아버지가 야속할 때도 있어요. 자식에게까지 폐되는 일이라며 미리부터 항암치료를 거부하는 아버지가 너무 꼬장꼬장해서 속상하네요.
바르지 못한 것에 단호하셔서 눈물 쏙 빠지게 매서운 면도 있으시지만 아버지의 깊은 속을 우리 형제들은 고마워하고 있어요. 당신의 삶에서 목줄을 죄는 책임과 버거움을 당신 혼자서 다 막아내고 자식에게는 절대 물려주고 싶지 않은 그 마음 알겠어요. 그런데 아버지, 나눌 수 있어 행복한 짐도 있잖아요. 지내 놓고 보니 현직에 계신다고 차리지 않으신 회갑도, 숱한 경조사에 빠짐없이 참석하시면서도 당신의 칠순은 너무나 조촐하게 가족만 모이게 하셨던 일도 다 가슴에 멍이 되네요.
한정 없이 다감한 당신의 짧은 일기체 글들을 읽어 보면 아버지는 단단하고 강한 남자만은 아니었어요. 껍질 속에 풍미 가득한 과육을 키우는 과목처럼 당신의 가슴은 부드러운 속살로 차 있었어요. 당신에게 주어진 몫이 벅차 헐떡이는 모습도 기대고 싶은 유약함도 드러내 보이고 싶지 않아 스스로를 담금질하며 당신을 강인하게만 조율하신 것 같아요. 제가 글 쓴답시고 이리 사색을 즐기는 호사도 어쩌면 당신이 가진 섬세한 감성을 조금 물려받은 행운인가 봅니다.

아버지가 진료 받으시는 병원 주변의 나무에 가을이 절정입니다. 곱게 물든 단풍잎이 내리는 가을비에 젖어 떨어지고 있어요. 순리대로 제 생을 산 나뭇잎들의 마지막 빛깔 고운 자태가 아름다워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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