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동언 인천대학교 레닌피크 원정대 대원

필자 = 김동언 인천대학교 레닌피크 원정대 대원

- 2004년 12월 남미 최고봉 아콩카구아 등정(6천962m)
- 2005년 7월 아프리카 최고봉 킬리만자로 등정(5천895m)
- 2006년 7월 중국 민산산맥 최고봉 슈에바오딩 등정(5천588m)
- 2006년 8월 오세아니아 최고봉 호주 코지어스코 등정(2천228m)
- 2007년 8월 중국 티베트 치즈봉 등반(6천201m)
- 2007년 12월 남극 최고봉 빈슨매시프 등정(4천789m)
- 2008년 7월 키르기스스탄 레닌피크 등정(7천134m)
- 2009년 5월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 등정(8천848m)

원정대원
김학수 원정대장(인천대학교 재료공학과 95학번)
김동언 대원(인천대학교 토목환경공학과 01학번)
김종호 대원(인천대학교 경영학과 01학번)
전동우 대원(인천대학교 무역학과 05학번)
이슬 대원(인천대학교 토목환경공학과 06학번)

감수 = 박정동 인천대 중국학연구소 소장

# 눈과 산의 바다 파미르고원

레닌피크는 타지키스탄과 키르기스스탄의 국경에 뻗은 파미르산계의 트란살라이 산맥의 최고봉이다. ‘세계의 지붕’이라 불리는 파미르고원은 전장 250㎞에 달하는 대 산악의 체인으로 ‘눈과 산의 바다’라고도 불린다. 지리적으로 좌측에 힌두쿠쉬산맥과 우측에 천산산맥을 두고 실크로드 상의 천마의 고향 페르가나, 양귀비의 대단위 경작지 오쉬에서 접근할 수 있다. 산으로 둘러싸인 지정학적 특징 때문에 1800년대 러시아 왕국에 복속된 이래 어느 구소련 공화국보다도 고산의 특징을 잘 보존하고 있다.
그러나 산이 험준한 만큼 사고도 많이 있는 지역이다. 1974년 구소련은 자신들이 보유한 레닌봉(7천134m), 코르제네프스카야(7천105m), 코뮤니즘(7천495m)을 개방해 첫해에 세계 각국의 유명한 산악인 원정대를 초대했다. 그러나 이때 대지진의 발생으로 15명이 죽는 대참사가 발생했는데 이 내용은 로버트 크레이그의 유명한 저서 ‘파미르, 폭풍과 슬픔’에 자세히 기술돼 있다.

   
 

비교적 최근인 1990년에는 파미르 국제캠프에서 눈사태로 40명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번 사고는 7월 13일 오후 8시 30분 레닌봉의 6천m 부근 트레모르의 동쪽에서 대규모 산사태가 발생했던 것이다. 처음 발표된 소비에트 언론스포츠위원회 대변인에 따르면 43명 묻혔다고 보도했으나 3명은 후에 구조된 것으로 밝혀졌다. 현지 구조대는 엄청난 양의 눈을 치우고 시신을 거뒀다. 숨진 사람은 소련 27명, 체코 6명, 이스라엘 4명, 스위스 2명, 스페인 1명 등 모두 40명이다. 이는 세계 산악사고 사상 최대의 비극으로 기록됐다.
이러한 참사에도 불구하고 현재에도 매년 200여 명 이상의 해외 전문가들이 이 지역을 방문해 7천m급 등반의 꿈을 이루고 있는데 1991년 구소련의 붕괴로 키르기즈공화국 산악연맹에 복속됐다가 현재는 키르기즈 산악인들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레닌피크는 파미르에서 두 번째로 높은 산이며, 거대한 눈얼음이 덮혀 있다. 레닌피크는 라즈델나야 피크(6천148m)의 북쪽에 있다. 또한 접근 방법이 간단하며, 간단한 루트로 인해 가장 인기있는 코스다. 레닌피크에는 남쪽 측면에 9가지 루트, 남쪽에 경사진 7가지의 루트 총 16가지의 등반루트를 가지고 있다. 첫 등정은 1934년 소련 등반대에 의해 이뤄졌으며 한국인으로서는 1991년 8월 11일 여성 1인을 포함한 4인이 첫 등정을 했다.

 # 중앙아시아 파미르고원을 향해

인천대학교 산악부는 7대륙 최고봉 완등이라는 목표의 마지막 원정지인 에베레스트 원정을 몇 달 앞두고 원정훈련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었다. 정상대로 2009년 3월 에베레스트를 간다면 남은 기간은 불과 6개월 남짓이다. 만약 고소의 감을 잃어버린다면 이제까지의 노력은 수포로 돌아가게 된다. 다시 한 번 원정훈련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판단이 섰다. 
즉시 회의를 소집해 적당한 장소를 찾도록 했다. 먼저 대원들이 제안한 곳이 남미의 고봉이었다. 당시 산악부는 이미 남극 빈슨매시프 봉을 다녀와서 남미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남미는 매우 높고 험준해 어쩌면 매력적인 원정이 될 수는 있으나 한국에서 너무 멀고 만약 문제가 발생하면 여기서 즉각적인 처리가 어렵다는 한계가 있었다. 특히 우리는 에베레스트 원정을 준비하고 있는 만큼 안전하고 고산을 훈련할 수 있는 곳이어야 했다.
그래서 다시 찾은 곳은 레닌피크 봉이었다. 많은 해외 원정대가 방문하고 있고 또한 전문 상업 등반대가 있어 이를 활용하면 안전에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했다. 곧 현지 여행사를 물색했다. 그러나 당시 이 지역은 분쟁지역으로 대사관에서도 극히 꺼려하는 곳으로 현지 여행사를 찾기란 쉽지 않았다. 인터넷을 통해 지역 여행사의 정보를 얻고 계약금을 보냈지만 안심이 되지 않았다. 특히 지역과의 통신은 극히 어려워 전화통화는 거의 불가능했다.
그러나 우리는 빠른 시일 내에 저렴하게 원정을 마치기 위해서는 어찌했든 현지 여행사와 계약할 수밖에 없었고 무조건 그쪽을 믿고 떠날 수밖에 없었다. 급박하게 그리고 예정에 없던 원정이라 훈련은 거의 할 수가 없었다. 우리는 원했던 것처럼 고소감을 잃어버리지 않고 에베레스트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기에 대한 즉각 대처 훈련을 제대로 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어쨌든 예전과는 다른 원정이다. 불편한 마음을 가지고 가야 하는 원정이다. 예전에는 원정가기 전에는 원정에만 시간을 쏟았었는데 이번에는 그러지 못했다. 원정 전 훈련산행 1회 모두가 모여 준비할 시간은 거의 없다. 그래서인지 뭔가 불처럼 무엇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덜했다.
공항에 마중나온 선배님들을 보니 갑자기 겁이 난다. 내가 마음에 품었던 생각을 들켜버린 듯, 그래서 혼날 것만 같은 두려움이 생긴다. 조심히 잘 다녀오라는 말을 해 주셨고, 우리는 비행기에 탑승했다. 이상하게 비행기를 많이 탔는데 타면 탈수록 겁이 생긴다. 조금만 흔들려도 긴장되고 마음이 편하지가 않다. 타자마자 잠이 들 줄 알았는데 이상하게 잠이 안 온다.

   
 
갑자기 비행기 뒤쪽이 어수선하더니 방송으로 기내에 의사가 계시면 뒤로 와 달라고 한다. 한 외국인이 의식을 잃었다고 한다. 그 주위로 사람들이 몰려들었지만 대부분이 그냥 바라보는 구경꾼들이었다. 나는 고민이 됐다. 수상인명구조자격이 생긴 지 1년 반이 넘었지만 내 머릿속에서는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이 나질 않았다. 아니 생각은 났다. 평평한 곳에 눕히고 기도 확보를 한 뒤 맥박과 숨을 체크해야 한다. 필요하면 심장마사지도 해야 하고…. 하지만 머릿속만 그렇고 자신이 없었다. 설마, 다른 사람들도 있는데…. 다행히 그 사람은 다시 정상으로 돌아와 걸어서 비행기를 내릴 수 있었지만 나에게는 잠깐이나마 충격적인 시간이었다.

 # 베이스 캠프로 가는 도중 변화하는 중앙아시아를 보다

아침 일찍 일어나 아침 식사를 하고 장을 보러 갔다. 말이 통하지 않아 어제 가이드가 적어준 상호명을 택시기사에게 건네며 마트로 향했다. 야채와 과일, 쌀 등을 사고 다시 숙소로 가서 베이스 캠프로 출발할 준비를 했다. 약속된 시간이 되자 커다란 트럭이 숙소 앞에 도착했다. 그러나 사람은 오지 않아 우선 그냥 트럭을 바라보며 기다렸다. 독일 커플과 헝가리 남자 2명이 우리와 함께 차를 타고 갔다. 모두가 기분이 들떠 있었다. 헝가리인이 가져온 술을 한 모금씩 마시며 긴장을 풀었다. 앞으로 우리는 같은 목적을 가지고 같은 등반을 할 것이라는 생각에 빨리 친해질 수 있었다.
대부분의 도로가 공사 중이었다. 사람이 살고 있든 아니든 간에 모든 산은 도로를 만드는 공사이고 더욱 황폐해 보였다. 먼지를 휘날리며 가는 우리 차를 보며 창 밖의 꼬마아이들이 손을 흔들어 준다. 이 도로들이 연결되면 이 꼬마아이들은 더 큰 세상과 싸워야 할 것이다.
공사장의 모든 장비들에는 중문이 쓰여져 있었다. 이런 황무지 같은 땅에도 중국을 배제할 수 없는 것이 두렵기도 하고 우리도 무언가를 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4시간을 달려서 중간에 점심을 먹었다. 유목민들의 집에 들어가 그들의 밥을 먹는데 정말 맛있다. 빨간 돌들로 이뤄진 주변에 비해 우리가 점심 먹은 장소는 큰 나무들도 있고 깨끗한 물도 흘러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느낌이 들었다. 다시 차를 타고 달리는데 이제는 길이 아니다. 비도 살짝 내려서 차에 물이 새는데 급물살이 흐르는 강까지 차로 넘는다. 차가 쓰러질 듯 이리저리 요동을 치고 그 안에 우리들은 즐거워한다. 어두워지자 우리는 베이스 캠프에 도착했다. 쌀쌀함이 기분을 새롭게 한다. 텐트를 배정 받은 뒤 저녁 식사를 하고 잠이 들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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