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떠났다 무작정. 계획도 없고 목적지도 없다. 막연한 두려움으로 용기가 나지 않아 수십 년 마음 속에 그리기만 하다가 일을 냈다. 예측불가능한 위험은 어디에나 일어날 수 있는데 굳이 여행 중이 더 위험하다는 확증이 있어? 혼자 묻고 답하며 나를 부추겼다. 그런데도 막상 혼자는 조심스러웠다. 어색한 낙관론은 집중이 되지 않았고 신기루마냥 아득하기만 했다. 안전한 잠자리를 위해 호텔을 찾았고 침대 시트 속에 웅크리고 누워 이른 밤 시간을 공상으로 보냈다.
저녁도 거르고 집에 있었다면 초저녁일 8시에 불을 끄고 누웠다. 불 꺼진 실내는 윙윙거리는 환청으로 불편했고 두꺼운 커튼 밖 세상의 소음도 간간히 잡혔다.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 속 여인처럼 집 떠나 오롯이 혼자만의 고립감을 즐기고 싶었는데, 그림 속의 그녀처럼 단절된 고립감도 고독도 먼 사치처럼 느껴졌다. 온전히 혼자이고 싶어 내가 나만 바라볼 수 있기를 소원하며 여기까지 와 놓고도 마음 한편은 혼자가 두렵고 남겨진 시간에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해진다. 조급증이 나면서 무엇이 문제인지 까칠한 반응이 나온다.

하루 또 하루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더불어 혼자 떠나 온 시간은 조금씩 단단해져 갔다. 낯선 도시를 돌아보며 탐색을 했다. 내가 사는 나라, 내가 쓰는 말, 내게 익숙한 음식. 국경을 넘은 것도 아니고 하다못해 오지 여행을 온 것도 아닌데 생소한 이미지는 나를 긴장하게 만들었다. 모르는 길을 따라 상점을 지나고 주택가를 지나고 하천을 지나고 체육공원을 지나면서 하루를 어슬렁거리며 보냈다. 내가 누구인지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데 그들이 누구인지 나만 궁금했다. 마주치는 사람 100명쯤 인물평을 해보자고 수첩에 메모를 했다. 공원 벤치에서도, 커피숍 창가에서도, 식당에서도, 하루를 마감한 잠자리에서도, 나는 내 상상을 보태 그녀들을 저장하느라 분주했다. 여인1, 여인2, 여인3…. 내 삶의 조연으로 그녀들을 끌어다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보이는 외양만으로 부당한 역할을 맡았을지도 모르는 그녀들은 떠들썩하게 혹은 헛헛하게 살아났다.
참으로 오랜만에 타 보는 기차다. 동해남부선을 타고 설악산으로 수학여행을 갔던 시절의 비둘기호는 애초에 사라지고 기차는 축지법 쓰듯 빨라졌지만 낭만이 없어졌다. 옆 좌석의 꼬마가 귀여워 초콜릿을 건넸더니 빤히 얼굴만 쳐다보며 받지 않는다. 아이의 엄마는 모르는 사람이 베푸는 호의를 조심하라 가르쳤다며 민망한 얼굴로 대신 받는다. 아이의 손에 들려있는 ‘사과가 쿵’그림책을 읽어주었다. 쿵 떨어진 사과에게 어떤 일들이 생겨났을까? 더불어 나누는 삶. 그림책이 행복하다. 아이는 천진한 보조개가 담긴 미소로 내게 답례를 한다. 마음을 연 아이는 조잘조잘 수다를 떤다. 젊은 엄마는 묻지도 않는 개인사를 풀어놓는다. 남편이 군인이라 시간을 조절할 수 없어 시댁 제사에 혼자 간다고 했다. 막내며느리와 손녀딸을 반길 시모는 행복한 노인이다. 젊은 엄마와 아이는 손을 흔들며 플랫홈에서 기차가 떠날 때까지 배웅을 한다. 한 시간 남짓 동석한 사이지만 나는 모녀가 온유한 삶을 살았으면…. 간절한 소망을 한다. 아이의 손을 잡은 젊은 엄마의 손이 곱고 아이의 손목은 여리고 부드러웠다.

긴 세월 속으로 품어왔던 혼자 여행. 홀가분하고 미진하고 용감해진 것 같고 별거 아니라 좀 실망도 하고 그렇다. 대조를 무시한 동색 배열은 안정감 있으나 밋밋하고 지루하다. 대비를 강조한 배색은 강렬하나 쉽게 질린다. 무엇은 되고 무엇은 절대 안 된다,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이제는 따뜻한 분위기의 화폭에 담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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