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수개월에 걸쳐 기호일보의 지면을 통해 인천대학교 산악부의 7대륙 최고봉 등정사를 살펴봤다. 인천대학교가 개교 3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에다 기호일보 창간 21주년 기념 공동기획으로 국내 대학으로서는 최초로 7대륙 최고봉 완등을 성취한 대 서사시인 것이다.
지금부터 약 10년 전 몇몇 산악부 출신 대원들이 모여 학교를 위해 무언가 해보자는 일이 대학의 지원과 졸업생들의 도움으로 국내 대학으로서는 최초로 위업을 달성하게 됐다.

 # 대학 규모에 어울리지 않는 감동적인 성취

아시다시피 인천대학교는 개교 30주년이 말해 주듯이 타 대학에 비해 비교적 역사도 짧고 산악부 졸업생도 많지 않은 상황에서 큰 대학들도 이루지 못한 일을 달성했다는 것은 충분히 감동스러운 일이다.

그간 해외 원정을 위한 동계 및 하계 훈련 중 대원들의 사고도 몇 차례 있었고 또한 어려운 일도 수없이 많았으나 인천대 산악부는 그 모든 것을 극복했다. 원정을 시작할 당시만 해도 주위에서는 인천대학교가 과연 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도 많았고 단지 투지가 대단하다는 칭찬 아닌 칭찬도 많았다. 그러한 주위의 관심 속에 우리는 7대륙 7고봉을 하나씩 정복해 나갔던 것이다. 우리에 대한 의구심들이 점차 부러움으로 변하는 순간순간들이었다.

   
 

처음 산악부를 맡을 당시 나는 산에 대해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었다. 단지 집 주변 산에 올라 본 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산악부를 맡고 나서 대원들을 이끌려면 나 역시 대원들만큼 알아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예컨대 최소한 로프의 매듭법이나 필요 장비의 이름을 알아야 그때그때 대원들을 지시할 수가 있고 대원들이 큰 불평없이 따라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 대학 산악부 대원들이 중앙산악연맹과의 연결고리가 희박한 만큼 이러한 부분도 지도교수인 내가 대신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에베레스트 원정에 앞서 등산학교에 입학했고 3개월간을 인수봉에서 거의 살다시피 했다. 그것도 모자라 2008년 여름에는 일주일 동안 설악산에서의 전문 등반교육을 다시 받았다. 이제는 우리 대원들이 부르는 설악가를 같이 따라 부를 수가 있게 됐고 아직 엉성하지만 같이 로프에 매달려 바위를 오를 수 있게 된 것이다. 처음에 멀리 했던 대원들도 나를 아무것도 모르는 촌노로서보다는 점차 같은 산 친구로서 대해 주게 됐다. 이러한 각고의 노력을 통해 대원들을 이해할 수가 있었고 또 나를 이해해 줬던 것이다. 이와 같이 서로를 알기 위한 노력이 우리 에베레스트 원정을 성공으로 이끌게 됐던 가장 중요한 동인이었다고 생각한다.

  # 파노라마처럼 스쳐가는 등정의 순간순간

7대륙 최고봉 등정에 대한 연재를 끝내고 인천대 산악부 지도교수로서, 그리고 몇 차례 걸쳐 원정단장을 맡은 나로서 감회가 새롭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그때의 힘든 때가 선히 떠오른다. 어린 신입생들을 데리고 킬리만자로의 암봉을 오르던 일, 설보정으로 훈련을 갔을 때 4천m 설 능선에서 대원들이 힘들어 넘어지며 구르던 일, 빙벽 훈련하던 중 대원 하나가 추락해 거의 죽기 바로 전까지 가던 일, 에베레스트 정상에서 무전으로 나를 찾던 일, 이 모든 것이 머릿속에 주마등 같이 지나간다. 이제는 그때 대원들이 나름대로 원하는 기업에 취직했고 일부는 학교에 남아서 자기 일을 꿋꿋하게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대견하기 그지없다.

그간 짧은 산행 경험이지만 여러 원정을 다녀오면서 내가 체득한 점도 적지 않다. 비록 원정에 관한 내 나름대로 얻은 교훈이지만 이러한 교훈이 원정에만 국한되는 일은 아닐 것이다. 사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부닥치는 여러 일에도 같은 교훈이 적용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체험에서 얻은 교훈을 몇 가지로 정리해 보고자 한다.

 # 대원들의 희생과 열성이 성공의 열쇠

첫째는 무엇보다 원정에 대한 욕망이 강해야 한다는 점이다.

무릇 어느 일도 마찬가지겠지만 먼저 목표한 원정에 대한 집념이 강해야 한다는 점이다. 하고 싶은 욕망이 강하면 강할수록 일을 풀기 위해 끝까지 실마리를 찾을 것이고 점차 일을 성사시킬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지난 2008년 시산제를 지내기 위해 추운 3월 인수봉에서 있을 때였다. 에베레스트 등정이라는 것이 일반 해외 원정과는 달리 대략 3억 원 이상의 엄청난 비용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최소 두 달이라는 시간을 비워야 하기 때문에 재학생은 물론이고 졸업생들도 주저하고 있었다. 실제 인천대학교와 같이 규모가 적은 대학으로서 이러한 재원과 대원들의 시간을 마련한다는 것은 정말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일이었다. 만약 대학에서 지원이 충분치 않다면 대원들 각자 수천만 원씩 부담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당연히 대원들이 뭐라 말할 수가 없어 전부 주뼛하고 있었다. 그때 지도교수보다는 원정단장으로서 나는 대원들에게 단호하게 말했던 기억이 난다.

“정말 가고 싶은가? 만약 가고 싶다면 지금 말해라. 간다는 마음만 있으면 우리는 간다. 나머지는 하늘이 알아서 한다.”
사실 당시 나도 특별한 대안이 없었지만 한두 사람이라도 일단 시작이 되면 그때는 자신이 있었다. 내가 직접 정상 공격을 할 수 없는 이상 나에게는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은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산에 올라가고자 하는 대원이었던 것이다. 정작 산에 올라갈 사람이 없다면 원정 준비 자체가 무의미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에베레스트 원정은 일반 해외 원정과는 달리 준비 기간이 길고 식량 등 엄청난 규모의 물품을 관리해야 하기 때문에 장기간에 걸쳐 이를 맡을 대원이 우선적으로 필요했다.

며칠 후 결심이 선 3명이 손을 들어 바로 에베레스트 원정대가 꾸려졌고 결국 그들을 중심으로 원정이 가능했다. 비록 처음에는 소수가 시작했지만 이들의 피눈물 나는 노력에 의해 점차 필요한 재원이 마련됐고 함께 도와주는 사람도 생겨났던 것이다.
미국의 베스트셀러인 ‘시크릿(secret)’이라는 책에서는 무슨 일이든 열망하는 자에게 우주는 이들의 요구가 이뤄지도록 움직이게 돼 있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 인천대의 에베레스트 원정 성공도 우리 대원들이 원정을 위해 희생을 각오하고 열심히 움직였던 결과라 할 수 있다. 만약 이러한 집념 없이 안이하게 원정 준비를 했다면 원정 성공은 고사하고 과연 떠날 수는 있었는가 하는 의구심마저 남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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