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행의 기본전제는 겸손이다
 
넷째, 산에 대해 겸손해야 한다. 산에 가면 항상 느끼는 일이지만 산은 산에 겸손한 자를 받아들인다는 생각이다. 산 앞에서는 어떠한 자만도 예기치 않게 큰 불행을 겪게 된다. 에베레스트 트레킹에서도 수많은 사람들이 고소증세를 무시하고 무리하게 운행하다 중간에서 중도 하차하는 경우가 생각 외로 많다. 더욱이 고소를 숨기고 운행하다 결국 운명을 달리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번 겨울에도 에베레스트 트레킹의 한 지류인 고쿄로 올라가고 있을 때 일본인 트레커 한 사람이 고소가 왔음에도 이를 숨기고 무리하게 운행하다 해발 5천m 정도에서 숨졌다고 한다.

   
 

특히 정상 공격을 할 때에는 산에 대한 경외심이 더욱 필요하다. 워낙 극한 상황이라 무리한 욕심을 내서도, 그리고 어떠한 요행을 바라서도 더더욱 안 된다. 자신의 체력에 대해 정확히 파악하고 있어야 하며 자신의 상황에 맞춰 산에 대한 등정을 해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자신을 알고 산을 이해하는 자들에게 산은 비로소 길을 열어주게 되는 것이다. 오은선 씨가 안나푸르나 정상 부근에서 갑자기 악화된 기후 때문에 할 수 없이 발을 돌려야 하는 것도 결국은 산이 허락하지 않아서다.

그래서 산에 대해서는 음식이나 행동도 여러 금기 시 되는 것이 있다. 예컨대 불에 태워 요리를 하면 안 되고 반드시 등정 시도는 라마승을 모시고 라마제를 지낸 후에 시작해야 하는 등의 나름대로 여러 관례가 있다. 실제 이렇게 해야 우리 마음도 정화가 되고 또한 한마음이 된 셰르파들도 우리를 도와 오를 수가 있게 된다.

산에 대해 조심하고 마음을 가다듬어야 산을 오를 때 더욱 조심하게 되고 무리를 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우리 원정대도 베이스캠프 생활에서 산에 대한 모든 것을 지키려 노력을 했고 라마제와 등정 출발 시 밤을 새워 쿰부 히말라야 신에게 길을 열어 줄 것을 간곡히 기도 올렸던 것이다.

   # 왜 산에 오르는가?

힘든 산은 도대체 왜 오르는가? 그렇게 힘든 산행에서 성공이란 무엇인가?
아마도 애초 원정 초반에 목표하던 것 같이 오르고자 하는 산의 정상을 정복하는 것이 원정의 성공일 것이다. 그러나 공인된 원정은 대부분 정상 정복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다. 예컨대 초등이라던가 혹은 새로운 루트의 개척이라는 시도가 바로 그것이다. 다시 말하면 처음 오르던가 혹은 새로운 길로 등정하는 것이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원정의 가치다.

그러나 실제 목표를 하던 정상을 등정한다고 해도 사고를 당해 돌아오질 못하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래서 등산가들 사이에서는 우리 몸이 집을 떠난 상태에서 목표를 달성하고 떠난 몸 그대로 돌아오는 것을 성공적인 원정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이것은 말처럼 쉽지 않은 일이다. 높은 산 온갖 등정로 곳곳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고 날씨도 우리 마음처럼 따라주지 않는데 아무런 사고를 겪지 않고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일생의 행운인 것이다. 최근 전문 산악인 오은선 씨도 국내 협찬사의 엄청난 후원을 안고 준비했음에도 안나푸르나를 정상 부근에서 맴돌다 결국 돌아오지 않았던가. 
나 역시 우리 원정에 대한 성공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많은 고민을 했다. 과연 우리 대원들이 다치는 한이 있더라도 정상에 올려야 하는가 하는 질문에는 대답이 쉽지 않다. 만약 어떠한 이유든 정상을 밟지 못하면 그토록 어렵게 준비한 원정이 결국 물거품이 되는 것이고 언제 다시 올지 기약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만약 정상을 밟더라도 대원들이 조금이라도 다치면 성공은 차치하고 모든 책임을 단장이 질 수밖에 없다. 성공적인 원정을 위해서는 결국 모든 대원들이 다치지 않고 무사히 정상을 밟아야 하는 것인데 이것은 이미 내 한계를 벗어나는 일이다. 결국 신에게 비는 수밖에 없는 일이다.

   
 
흔히 끊임없이 산에 오르는 사람들에게 갖는 의문 중 하나는 도대체 그 험한 산에 무엇 때문에 엄청난 위험을 무릅쓰고 오르려 하는가다. 아마 산악인이 듣는 질문 중에 가장 많이 듣는 질문 중 하나다. 대답에 포함되는 단어는 대략 탐험·도전·시험·성취·용기 등등이라고 생각된다.

나 역시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에 두 달여 기간을 머물면서 세계 여러 등반가에게 같은 질문을 했다. 에베레스트 원정은 이미 많은 산악인들이 올랐던 곳이라 그런지 초등 혹은 탐험이라기보다는 대부분 일생에 한 번은 하고 싶어서 도전한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이러한 질문은 보다 큰 의미에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 한다. 네팔의 트레킹 코스를 다니면서 가장 많이 만나는 글귀는 아마 ‘옴마니반메훔’일 것이다. 거의 네팔이나 티베트의 모든 곳에 음각돼 있다. 간략히 말하면 ‘세상의 온갖 지혜와 깨달음을 얻는다’라는 뜻의 인도말이다. 높은 산을 오르려는 인간의 행위는 세속적인 자기를 버리고 깨달음을 얻기 위해 신의 세계에 몸을 맡기는 그러한 노력의 방편이 아니겠는가. 어려운 산행을 하면서 끊임없이 이 범어를 외우는 가운데 어느덧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는 나를 발견할 것이다.

  # 7대륙의 신에게 감사드리며…
 
이제 인천대학교 개교 30주년 기념사업인 7대륙 최고봉 완등에 대한 장문의 글을 마무리해야 하는 시점이 됐다.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 대원들이 큰 사고가 없이 산에 올랐다는 점에 대해 쿰부 히말라야 신에게 감사를 드리고 싶다. 여러 미디어를 통해 해외 원정에 큰 사고가 심심치 않게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예컨대 최근 유명한 산악인 고미영 씨도 하산 시 실족을 해 운명을 달리했다. 우리가 캠프를 쳤던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에서도 바로 위 아이스폴을 지나다 3명이 숨지는 참사를 목격하기도 했다. 등반 책임자였던 나는 그런 참사 소식을 접하면 지금도 등골이 서늘하다. 아무런 사고가 없이 우리를 자신의 품에 받아줬던 에베레스트를 포함한 나머지 6대륙 신들에게 다시 한 번 감사를 드린다.

   
 

또한 이 자리를 빌려 인천대학교 개교 30주년 기념 7대륙 최고봉의 원정기록을 위해 그간 귀한 지면을 허락해 주신 기호일보 한창원 사장님과 관계자 여러분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 또한 우리 해외 원정을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신 인천대학교 안경수 총장님과 교수님들, 그리고 지역 독지가 여러분께 기호일보의 지면을 빌려 감사를 드리고 싶다. 끝으로 힘들어도 나를 끝까지 믿고 따라 줬던 대원들이 고맙고 해외 원정을 떠날 때마다 묵묵히 보내 줬던 집사람, 그리고 내 가족에게 한없이 미안할 따름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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