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가을이 정중앙이다. 지독한 더위가 물러난 하늘이 청명하고 맑아 눈이 부시다. 가을은 축제의 계절이면서 사색의 시간대이기도 하다. 소래생태습지공원에서 시낭송회와 시화전을 겸한 백일장이 열렸다. 물질이 생명을 영위해 가는데 필요불가결한 것이라면 감성을 보듬어주는 예술은 사람이 살아가는 이유를 대리해준다. 참여한 많은 사람들의 시상을 깨워주고 나들이 나온 시민들은 갈대와 염전과 빨간 풍차를 보면서 실용성이 없다고 순위에 밀려 내팽개쳐 둔 마음 속 정서를 깨워 뭉클한 경험을 했을 것이다.

시의 분위기와 그림이 조화로운 시화가 액자에 담겨 사람들의 마음을 평온하게 한다. 갯벌을 등지고 세워놓은 시화 액자는 갈대와 어우러져 마음에 쉼을 주고 시 구절 하나가 문득 가슴을 시리게 만든다. 요즘 한창 뜨고 있는 느림예찬이 인간성의 회복에 가치를 둔 것이라면, 시를 읽고 감상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본다.
각박한 현실을 벗어난 주말 오후가 한없이 착하게 느껴진다. 시야를 가득 채우는 넓은 갯습지에 군락을 이룬 칠면초 조차 평화롭다. 긴 줄에 매달린 연은 맑은 하늘에 동심이 되어 날아오르고 멀리 솟은 아파트단지는 가을 햇살 아래 마냥 한가롭다. 연인과 혹은 가족과 북적거리는 축제의 장 건너 이곳으로 발길을 이어온 사람들이 고맙다. 후끈 달아오른 축제마당과 이쪽의 한적함이 조화를 이루어, 버리고 떨쳐내 새 생명을 잉태할 가을의 자연 앞에 겸허한 시간을 가져보는 경험도 성숙이다. 지나온 날들 중에 기억하고픈 한 자락에 밑줄 그으며 진솔한 나 자신과 마주서서 애써 무시해온 꿈을 위로해 보는 것도 행복한 일이다. 자의든 타의든, 능률과 성과 위주의 경쟁은 삶을 건조하게 만든다. 오늘 하루만이라도 이곳에서 촉촉한 감성을 깨웠으면 좋겠다. 살아있는 것은 부드럽고 말랑말랑하고 따뜻하다. 그렇다면 딱딱하고 버석거리고 차가운 것은 죽은 것일 테다. 각질을 이룬 죽은 층을 뚫고 말랑한 생명 한 줄 피워보면 좋겠단 생각이 든다.
오늘 이곳을 찾은 모든 사람들이 시 한 편 쓰고 가기를 소망한다. 그러면 바쁜 시간 쪼개어 이곳에 온 나들이가 멋진 주말로 의미를 부여받을 것이다. 시인의 가슴으로 시인의 눈으로 시인의 감촉으로, 유치해도 좋고 현학적이라도 상관없다. 멋 부리느라고 싯 구절에 잔뜩 힘이 들어간들 어떠리. 흙 길을 걸으면서 맑은 청빛의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시야가 트인 습지를 보면서 단체로 시인이 되어보는 거다. 돈 되지 않아 재산 증식에 없는 종목이지만 시는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를 명징하는 뭉클이다. 살아있어 말랑하고 따뜻하고 부드럽다.
행복한 마음으로 잠시 쉬면서 시 한편 암송해 보는 여유! 이 가을엔 가져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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