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방학 때, 아빠를 따라 처음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2주 동안 인도에 머물면서 많은 걸 보고 느낄 수 있었고 무엇보다 세상이 참 넓다는 것을 알았다.

한복을 입고 우연히 외국인과 한 테이블에서 아침 식사를 하게 되었는데 south korea or north korea냐는 질문을 받았다. 나는 어렴풋 우리나라가 둘로 갈라져 있다는 사실을 떠올릴 수 있었다. 그 외국인은 프랑스 사람이었고 한복을 이리저리 만져보고 감탄했다. 나도 우리 한복이 이처럼 아름다운 옷인 줄 외국에 와서야 처음 알았고 한복을 입고 외국에 간다면 아름다운 우리나라 코리아를 홍보하는 외교관이 된다.

매일 아침, 아빠와 함께 가볍게 조깅도 하고 태권도로 몸을 풀고 있었는데 인도 사장님께서 그 모습을 보시고 태권도를 가르쳐 달라고 하셨다. 집을 떠나 온 지 일주일이 되면서 엄마도 보고 싶고 친구들 생각에 괜히 아빠를 따라 온 것 같아 후회도 되고 몸도 점점 찌뿌듯해서 가르쳐 주기로 했다.

다음 날 아침, 태권도를 배우려는 사람들이 많이 모였다. 모두 마을사람들이었지만 그 가운데는 연세가 많으신 할아버지, 할머니도 계셨다. 문득 돌아가신 할아버지 생각이 났다.

“할아버지 저 지금 아빠랑 인도에 왔어요. 대한민국이 자랑스럽습니다.”
나는 속으로 중얼 거렸다.

낯선 외국에서 태권도를 가르친다고 생각하니 가슴은 콩닥거렸다.

그러나 곧 당당한 기합 소리와 멋진 품새동작에 큰 박수소리와 함성이 들려서 자신감이 생겼다.

하지만 “쿵푸 원 더플! 쿵푸 원 더플~” 소리가 들려왔다.

“oh! no this is 태권도. 태권도!!”를 소리쳤다.

“태권도! 태권도!! 코리아 원 더플~” 곳곳에서 함성이 들렸다. 가슴이 뭉클했다.

다음 날, 인도 사장님은 태극기를 구해 오셨다. 긴 장대의 끝에 매달았다. 눈물이 핑 돌았다. 태권도를 하기 전에 나는 국기에 대한 경례와 애국가를 불렀다.

목소리가 잠기고 뜨거운 가슴이 용솟음쳤다. 나는 자랑스러운 한국인으로서 대한민국을 보고 있었다.

펄럭이는 태극기는 당당한 대한민국의 기상이었고 애국가는 우리민족의 정신이었다. 뜨거운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학교에선 친구들 머리카락을 잡아당기고 장난치며 불렀던 애국가. 건들거리며 태극기를 향했던 그 태극기 앞에 나는 서 있었다. 부끄러웠다.

하지만 낯선 외국 땅에서 본 태극기와 애국가는 나를 울게 하였고 대한민국은 파도처럼 내게로 밀려왔었다. 행복했었다.

긴 여행으로 피곤했지만 우리나라로 돌아 왔을 때는 그 동안 부모님 품이 얼마나 좋은지 모르다가 따뜻한 부모님품에 다시 안기는 기분이었고 철없던 나는 숙녀가 되었다.

아빠가 말씀하셨다.

“국민들이 한번쯤 외국에 나갔으면 좋겠어”
“왜요? 아빠.”
“외국에서 태극기를 보거나 애국가를 부르면 모두 애국자가 되어 있잖니.” 그랬다.

태권도가 있고 한복이 있고 세계경제 10위의 대한민국은 아름다웠다.

하지만 south korea or north korea냐는 질문은 나를 슬프게 했다.

바람!
만약 바람이 불어 내 염원을 북으로 북으로 휘몰아쳐 준다면 우리는 당당한 korea, great korea가 될 것이다.

무엇보다 핵무기를 만들 필요 없고 천안함 사건의 슬픔도, 이산가족의 슬픈 눈물도 바람처럼 사라져 행복할텐데….
바람은 나의 바람을 싣고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녹쓴 철책을 넘어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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