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시작되었다. 연대기적 시간이긴 하지만 연초는 모든 사람들이 특별하게 여기는 의미 있는 시간대이기도 하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평등하나 느끼는 반응은 사람마다, 상황마다 다르다. 누구에게는 너무 빨리 지나가는 시간이 누구에게는 한없이 느리게 흐른다. 무엇을 하느냐, 내가 마음을 얼마나 쏟았느냐에 따라 시간의 속도는 달라진다.
시간이 흐른다. 자연의 시간이다. 낳고 자라고 늙어서 소멸하는 시간이며, 한 해가 가고 새해가 오는 시간이다. 연대기적 시간을 말하는 것인데, 누구라도 연대기적 시간에서 벗어날 수도 독립할 수도 없다.
그러나 연대기적 시간 안에서 종종 카이로스의 시간을 경험한다. 어디에 가치를 둔다고 밑줄을 그어놓지는 않았지만, 순간 내 가슴을 치고 가는 뭉클이 있어 오감을 자극하고 발걸음을 붙잡는다. 나는 동작이 굼뜨고 성격도 느릿느릿해 재빠르게 앞장서지를 못한다. 대신, 깊이 보고 오래 보는 재주는 있다. 세상 일은 늘 상대적이다. 한쪽이 부족하면 다른 쪽을 채워주어 살아가게 해 준다. 깨끗한 비단주머니에 싼 향낭처럼 은은하고 오래 지속되는 좋은 향기로 세상을 대하고 싶다.

여러 해가 지나도 그냥 그 자리인 것 같아 때로는 변화 없는 내 모습에 알통이라도 만들어서 불끈 힘을 주고 싶을 때도 있다. 가슴과 머리가 가까워야 좋은지는 지금도 모르겠다. 이성적인 판단이 서면 즉시 행동으로 실천하는 민첩성이 부러울 때도 있다. 깊은 물은 표면에 드러나지 않는 바닥의 흐름이 있어 수면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순환을 한다.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다.
느리지만 나는 내 삶을 존중한다. 빨리 가려면 직선으로 가고 멀리 가려면 곡선으로 가라는 인디언의 속담처럼 더딘 발걸음이라도 내가 가고 싶은 곳을 가겠다. 나무늘보는 내 별명이다. 각을 세우지 않는 성격과 느린 발걸음 때문에 붙여 준 애칭이겠지만 나는 나무늘보가 좋다. 내가 지나온 길에서 만난 무수한 자연과 작은 생명들과 바람의 노래까지 교감하며, 슬프고 기뻤던 순간을 애잔하게 직조한 시간이 고맙다. 소심하고 선량한 나무늘보가 세상과 말을 트면서 느낀 소묘, 혹은 가슴을 뭉클하게 울린 감동과 교감을 글로 표현하면서 세상의 피조물을 사랑하며 살고 싶다. 그 모든 것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 평정심이 나를 지탱하는 자존심이 된다. 새해에는 그냥 흘러가는 시간이 아닌 의미 있는 시간들이 모여서 한 해가 카이로스적인 일 년이 되었으면 좋겠다.
카이로스의 시간은 내가 만드는 시간이다. 세월을 서사로 살아도 시적으로 공감하는 시간이 나를 성숙하게 한다. 세월이 흘러서도 공감할 수 있는 생명력으로 한 해, 한 해 나이 들어가면 더없이 행복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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