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1학년 늦가을쯤으로 기억된다. 경상도 산골에서 6개월치씩 올라오던 기숙사비와 생활비를 ‘서울생활 적응비’와 ‘인간관계 유지비’ 명목으로 미리 탕진한 탓에 방학을 한 달여 앞두고 기숙사 문턱을 나서야 했다. 빈털털이가 된 나로서는 동아리방에 짐을 풀고 겨울나기를 걱정해야 했다.
당시 내가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은 새벽에 인력사무소를 찾는 일이었다. 체구가 크지 않은 탓인지 1주일을 꼬박 인력사무소를 찾았지만 좀처럼 지목을 받지 못했다. 궁리 끝에 덩치가 크고 근육질 몸매를 지닌 친구를 설득해 함께 인력사무소를 방문했다. 효과는 곧바로 나타났다. 인력사무소 전화가 울리는가 싶더니 이내 직원이 친구를 지목했다. 다행히 인부 2명이 필요했고 친구가 나를 가리킨 덕분에 일거리를 얻었다.

한창 나이였던 내 입장에서 보면 막노동의 묘미는 새참을 포함해 하루 다섯 끼씩 먹는 식사였다. 당시 식사를 하던 장소가 공사장 인근에 허름하게 지은 바로 ‘함바집’이었다. 식당 아주머니는 한창 먹을 나이라며 밥이며 반찬이며 푸짐하게 담아주곤 했다. 비록 일본식 표현이긴 하지만 함바집(공사 현장 식당)은 청년 시절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아이콘으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추억의 장소가 로비사건에 연루돼 비리의 판도라 상자로 떠올랐다. 그 중심에는 강희락 전 경찰청장 등 이른바 힘 있는 사람들이 똬리를 틀고 있다.
함바집 사업권을 따기 위해 엄청난 로비자금을 뿌렸다는 보도는 충격 그 자체다. 건설업계에서는 함바집이 상당한 이권을 가진 업종으로 알려져 있다. 일반 식당과는 달리 공사장 내 인부를 상대로 한 독점적 지위를 갖기 때문이다.
이런 탓에 서울 강남구 등 일부 지자체에서는 함바집 설치 금지를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돈 있는 곳에 비리 있고 비리 있는 곳에 권력 있다는 사실이 또 한 번 확인되는 현실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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