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에 조물주가 자신의 형상을 빌려 인간을 만들었다. 신의 형태를 닮은 60억 인간이 지금 지구에 살고 있다. 신을 원형으로 한 인간이 자신의 거푸집인 신의 아이디어를 훔쳐 지상에서 시작한 일이 ‘금형(金型) 작업’이다. 인간이 신을 모방해 인간세계에 적용한 산업의 한 형태가 금형산업인 것이다. 조물주는 인간을 대량 생산하기 위해 자신을 틀로 삼았지만 인간은 다양한 제품을 대량 생산하기 위해 제품 고유 원형인 틀, 즉 ‘쇠로 만든 거푸집’인 금형을 개발한 것이다.
   
 

지난 2003년 창업 이후 금형이라는 단일 업종으로 묵묵히 외길 경영을 펼쳐 온 기업이 있다. ‘장인정신’과 ‘새로운 기술에 대한 도전’이라는 양날의 칼로 동종 업계 정상의 자리에 선 ‘정우ENG’(대표 윤병용)가 바로 그곳이다.

“금형은 예술”이라고 단언하는 윤 대표는 “같은 제품을 반복해 만드는 일이었다면 벌써 걷어치웠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단일 업종을 고집할 수 있었던 것도 ‘금형의 다양성 때문’이라는 것이 윤 대표의 설명이다. 창업 8년 세월 동안 만든 금형의 종류만 해도 셀 수 없이 많다는 것이다.

윤 대표는 금형이 대중화되기 전인 지난 1987년 금형회사에 취업하면서 금형과 인연을 맺었다. 당시 금형에 대한 인식 부족과 연구체계의 미비 등으로 금형에 대한 이론과 기술을 배우기 쉽지 않은 시절이라고 윤 대표는 회상한다. 눈썰미와 부단한 노력으로 금형을 익힌 그는 인연을 맺은 지 15년 만인 2003년 정우ENG라는 금형회사를 설립, 현재에 이른다.
다양한 제품의 틀을 만드는 재미에 취해 살아 온 8년 동안 연매출은 17억 원으로 불었다. 수익 증대보다 일의 즐거움을 좇은 결과다. ‘매출 지상주의’에 빠져 실패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다른 제조업체들에 비한다면 윤 대표의 발상의 전환이 가져온 ‘기적’이라는 것이 직원들의 하나같은 설명이다.

“새로운 금형을 만들 때마다 즐겁습니다. 어쩌면 이렇게 다양한 세계가 있을까, 신기하고 놀라울 따름입니다.”
금형에 의한, 금형을 위한, 금형의 인생을 살아온 윤 대표의 금형철학은 품질 제일주의와 강한 책임감 그리고 주인정신과 프로근성이다. 그래서 사훈도 ‘금형 품질 제일주의 책임의식’과 ‘프로근성과 주인의식’이다. 금형에 대한 끊이지 않는 도전정신과 무한책임주의에 근거한 장인정신이 ‘정우ENG’를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까지 인정받게 만들었다.

이를 바탕으로 ㈜신도리코를 비롯해 ㈜삼보기공, ㈜자인테크놀로지, 신우금형, MGT KOREA, ㈜미츠와전기 등과 협력관계를 맺고 있다. 이 업체들을 통해 복사기 사출금형과 자동차의 주형 및 다이 캐스팅 등 1차 벤더, 정밀지그부품(초음파센서), 일본 수출금형, 일본 스즈키 모터스와 일본 가전제품의 1차 벤더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특히 올해에는 경기도내 대학들과 산학협력을 구축하기 위해 준비 중이며, 이를 통해 2012년에는 국가과제사업을 지원, 도약의 발판으로 삼을 계획이다.

또 고정밀 금형의 가공환경의 확보를 위해 신규 설비에 대한 끊임없는 투자와 함께 사원들을 대상으로 한 지속적인 교육을 추진하고 있다. 투자와 교육만이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윤 대표의 소신이 묻어나는 대목이다.

   
 
‘정우ENG’는 특수금형에 대한 지속적인 개발을 꾸준히 추진하고 있으며 지난해 신도리코 1차 벤더 등록에 이어 올해는 일본 미츠와전기의 벤더로 등록돼 지난 9일 일본 현지에서 미츠와전기와 ‘물품납입취인 기본계약서’를 체결, 안정적 기반을 확보했다.

이와 함께 CNC 밀링 3대와 범용 밀링 5대, 방전기(범용CNC) 6대, 선반(범용CNC) 3대, CAM과 CAD 각 1대, 연마기 5대, 크레인 1대 등 설비를 갖추는 등 완벽한 하드웨어를 구축하는 데 전력을 쏟고 있다.

주요 아이템별 금형으로는 ‘CYLINDER BLOCK 주형’·‘FRONT, REAR 중자’·‘CRANK ROOM&BORE 중자’·‘WATER JACKET 중자’·‘OIL JACKET 중자’·‘HEAD면 중자’ 등 ‘사형주조(GREEN SAND)’와 ‘DIE CASTING’·‘UPPER/LOWER V/BODY’·‘CON/HSG’·‘CLU/HSG’·‘T/M CASE’ 등 고압주조, ‘CRANK SHAFT 주형’·‘CAM SHAFT 주형’ 등 셀 몰드(SITELL MOULD), ‘CYLINDER HEAD 주형’·‘WATER JACKET’·‘OIL JACKET’·‘IN/EX·PORT 중자’·‘측면중자’ 등 저압주조 등을 제작, 국내 최고를 꿈꾸고 있다.

윤 대표는 “국내외 고객사의 지속적인 개발을 통해 보다 안정적인 회사 기반을 확보하고 품질과 납기, 가격으로 보답하겠다”며 “초심을 잃지 않는 정직성으로 미래 지향적 기업이 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윤병용 정우ENG 대표 인터뷰

   
 

“금형의 가장 큰 매력은 예술작품을 생산하는 산업이라는 점입니다.”
스스로를 ‘금형제일주의자’라고 밝히는 윤병용(45·사진)대표는 정우ENG가 제작한 금형을 통해 생산된 제품이 시장에 유통된 것을 볼 때 가장 행복하다. 심혈을 기울여 개발한 금형이 수십만 개의 제품을 생산하는 모태(母胎)라는 보람 때문이다.

최근 삼성과 LG 등 대기업들이 금형공장을 신설, 자체 생산하면서 협력업체들이 중소기업보다 대기업에 의존하는 추세로 변하고 있지만, 그래서 타격이 클 것으로 예상되지만 윤 대표는 “금형산업을 떠날 생각은 해 본 적도 없고 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오히려 금형 생산뿐만 아니라 사출과정까지 참여해 양산체제로 돌입하고 새로운 제품을 자체적으로 개발, 상품화하는 등 틈새시장에 대한 연구에 몰입하고 있다고 최근 동향을 귀띔한다.

“적은 자본으로 시작할 수 있는 사업이라는 장점 때문에 용기를 냈습니다. ‘나만의 금형’을 만들고 싶다는 욕심도 있었고요.”
윤 대표의 이러한 욕심에도 금형 외길 인생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창업 3년차인 2005년 7월 부도를 맞았다. 1억4천만 원. 소규모 제조업체가 감당하기에는 큰 금액이었다.
평소 좌절이라는 단어를 모르던 윤 대표는 더욱 이를 악물었고, 3년 후 보란 듯이 재기에 성공한다. 재기의 배후에는 뜻밖에 아내 박미정(41)씨가 있었다. 살림만 하던 박 씨가 부도를 극복하기 위해 밤낮없이 애쓰는 남편을 위해 팔을 걷어붙인 것. 금형설계를 배우고 익혀 이젠 ‘설계하는 아내와 현장 일하는 남편’이라는 공식이 자연스레 세워졌다.
“부도 당시 아내의 적극적인 협조가 없었으면 지금의 정우ENG는 없었을지도 모른다”는 윤 대표는 “현재 설계와 생산, 영업관리 분야에서 17명 사원이 가족 같은 분위기로 일할 수 있는 밑거름이 아내”라고 자랑(?)하는 데 주저함이 없다.

또한 그는 “조직 구성원들이 함께 하려는 마음만 변하지 않는다면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다는 게 나의 신념”이라며 “그래서 정우ENG의 경영정책도 ‘전 직원의 행복 추구화와 가족화, 기술개발화’”라고 강조한다.

“조직과 조직원이 함께 행복한 정우 만들기에 최선을 다할 계획”이라는 윤 대표는 “이에 올해를 새로운 도약을 위한 중요한 시기로 본다”고 말한다.

이는 올해가 산학협력의 효시가 되는 해이기 때문이다.

“지난 9일 일본 미츠와전기의 협력업체로 선정돼 1차 벤더 협약 체결을 한 것을 신호탄으로 도내·외 대학과 산학협력을 위한 포석을 준비하고 있다”는 윤 대표는 “산학협력을 통해 구축된 노하우를 바탕으로 정부과제사업인 ‘이노비즈’에 참여할 예정”이라고 청사진을 펼쳐 보였다.

이어 “금형을 사양사업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고, 또 대기업 참여로 시장 규모 축소 등 중소기업 환경이 나빠질 것이라는 전망도 한다”며 “그러나 절망 속에서 희망이 꽃피듯 사출로의 전환을 통한 사업 확대 등 틈새시장은 있다는 판단이며, 그 희망을 좇아 금형사업의 다양성을 펼칠 것”이라고 희망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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