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단체에서 중국 옌볜을 방문해 백두산과 두만강을 둘러보는 시간을 가졌다. 도착해 짐을 풀고 쉬었다. 다음 날 백두산 탐방을 떠났다. 민족의 영산을 만나는 설렘으로 잠을 설쳤지만 정신은 맑아진다. ‘장백산’이라 새겨놓은 바위를 마주한 순간, 숙연해졌다. 백두산이다. 전체 면적의 1/3쯤이 중국 영토다. 지린성 옌볜 조선족 자치주에 위치한 이곳은 한국 사람들에게 남다른 감회를 준다. 중국인들이 장백산이라 부르는 백두산은 화산활동으로 부식토가 산 정상에 하얗게 쌓여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말그대로 흰머리 산이다. 6월인데도 곳곳에 한 길은 거뜬히 넘을 높이로 쌓인 눈이 이채롭다. 백두산 오르는 코스 중에서 북파코스는 장백폭포를 볼 수 있고 천문봉까지 지프차가 올라갈 수 있게 도로가 잘 닦여져 있다. 롤러코스트를 탄 듯 요동이 심해 현기증이 나게 곡예운전을 하는 한족의 기사는 내내 무뚝뚝한 얼굴이다. 남북으로 갈라진 우리 민족의 분단관광으로 막대한 수입을 올리는 중국은 우리의 통일을 마뜩치 않아 할 것 같고 고구려와 발해의 역사를 동북아공정이란 이름 아래 자국 역사로 편입하더니 이제 ‘아리랑’까지 조선족의 음악이라며 자국의 국가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여기다 우리의 무형문화유산인 한복·혼례·씨름·상모춤마저도 중국 국가가 관리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한다. 영토뿐 아니라 정신까지 잠식당하고 있어 다급해진다.
눈길을 걸어 도착한 천지는 운무에 쌓여 깊이도 넓이도 가늠이 되지 않는데 눈앞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 눈물이 솟는다. 천지는 쉽게 모습을 보여주지 않아 우리는 서로의 눈썹에 하얗게 낀 성에를 바라보며 천지 이름을 새긴 돌판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우리가 넘어야 할 장애와 이해 불가한 사건과 마주치더라도 조급해하지 말고 기다리라고 이 웅장한 백두의 천지가 우리를 시험하는 모양이다. 예의를 갖추어 천지를 바라보며 애국가를 불렀다, 가슴에서 뜨거운 덩어리가 뭉클뭉클 솟는다. 민족의 영산은 가슴에서 생명을 품고 자리를 잡아 터를 닦는다. 우리 일행은 아쉬운 발걸음을 돌렸다. 통일을 염원하는 마음을 모우고 있으면 그렇게 풀릴 날이 올 것이니 다음을 기약하라는 메시지를 받들어 하산을 했다.

두만강 중조(中朝) 국경지대로 이동해 두만강에서 유람선을 탔다. 좁은 강폭은 북한주민을 손짓해 불러도 될 거리다. 유람선에서 바라본 북녘땅. 불관용과 적대로 각을 세워 대립했던 북쪽은 비루먹은 민둥산으로 상견례를 한다. 젊은 군인이 보인다. 쪼그리고 앉아 무언가 달라는 손짓을 한다. 순간, 울컥 가슴이 미어진다. 행색 초라한 일가를 만난 것처럼 불편하고 마음에 부담을 안긴다. 북한에 대한 연민이 뒤섞인 착잡함으로 심경이 복잡해진다.
인간의 이념을 지배하는 엄격하고 무자비한 논리가 우리를 우울하게 만든다. 유람선에서 틀어놓은 흥겨운 노랫가락은 어느새 민망한 흥으로 격하되어 채신없어지고, 우리는 유려하게 흐르는 두만강 강물만 속절없이 바라봤다. 두만강 압록강엔 섬이 269개가 있고 그중에서 중국이 105개를 가져갔다고 한다. 중국은 북한의 급변 사태에 대비해 북한의 영토에 발을 담그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린다. 우리의 국토를 눈 멀쩡하게 뜨고 있는데 가져가도록 둬서는 안 될 일이다.

시무룩한 마음을 다독이며 선상매점에서 3국통일 술자리를 가졌다. 중국 막걸리, 북한 명태, 한국 고추장이 만들어내는 환상의 어울림을 즐기며 통일에 대해, 절대행복이라는 명제에 대해, 통치자의 역할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속이 상한 마음과 화해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고 우리의 동정이 더 가진 쪽의 호사가 아닐까 하는 반성도 해 본다.

두만강 위에 걸쳐진 다리 중간에 그어놓은 국경선은 현실감 없는 아이들 장난 같아 보인다. 그래도 엄연히 중조(中朝) 국경선이다. 한 발짝만 넘어가면 월북이라 긴장이 된다. 통행증을 가진 중국과 북한 사람도, 짐을 실은 차량도 자유로이 넘나드는 다리를 우리는 멀리 돌아 이곳까지 왔는데 여전히 갈 수 없는 땅이다. 강바람이 세차고 비까지 내리는 어수선한 날씨가 풀어야 할 남북한의 현실을 상징하는 것 같다. 전세버스 차속에서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정돈하며 엉킨 남북문제도 잘 풀어 국력신장에 한목소리를 내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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