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의 아니게 모임의 총무를 맡게 됐다. 정례회나 경조사, 행사 등을 공지해 주는 문자를 보내면 무응답인 경우가 있다. 또 전화를 걸면 못 받거나 통화 중인 경우도 있어 직접 의사 확인이 안 된다. 누가 참석을 하는지 정확한 인원 체크를 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난감해진다. 연락이 오지 않으면 재차 확인 전화를 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고 바쁘다 보면 잊어버리고 확인을 못 하는 경우도 생긴다. 다수를 상대하는 입장이라 일일이 챙기는 일이 만만치 않다. 수고 많습니다. 고생하십니다, 통화가 되면 잊지 않고 하는 인사치레다. 연락을 맡은 사람의 고충을 충분히 알고 있으면서도 바로 답을 하지 못하는 속사정도 분명 있기는 있을 것이다.
언젠가 강연을 듣는데, 청중의 반응에 민감한 강사를 본 적이 있다. 명강사로 이름이 난 분이라 빡빡한 일정을 이어가야 해 지쳐 있었다. 그분은 듣는 쪽의 반응이 없으면 강의할 맛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반응 좀 해 주시죠!” 여러 차례 청중의 참여를 부탁했다. 잘 듣고 반응이 있어야 힘이 나서 더 풍성한 강의를 한다면서 “여러분은 제 강의 시간에 열렬한 청강생으로 최대한 많이 저를 활용해주세요.”라고 했던 그분이 생각난다. 내가 전달하는 말에 호응하고 적극적으로 반응해 주는 수강생을 보면서 강사는 신이 나, 강의는 열정적이 되고 힘도 솟는다며 알찬 강연을 위해서는 잘 들어주는 주는 일이 중요하다고 강조를 했다. 청중의 리액션에 예민한 분이라 자기애가 강한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 지금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내가 하는 말, 내가 하는 행동, 내 입장을 바르게 해석해 받아준다면 사람 사이에 따뜻한 바람이 불 것이다.불친절하고 고단한 사회생활이 힘들어도 내 말에 공감하고 내 입장을 이해해 주는 당신이 있다면 위로가 된다. 건성으로 들으면 진의 파악이 제대로 안 돼 단층이 생기면서 오해를 부르고, 그러다 보면 소통의 부재로 가슴을 닫게 되는 일도 생긴다.
잘 들어주는 일이 잘 말하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일인데 쉽지 않은 이유가 뭘까? 아마도 자신 위주의 사고방식 때문이 아닐까 싶다. 타인을 이해하는 마음의 여유를 갖지 못하게 하는 조급증이 각을 세우고 과정보다 결과를 중시하는 사회풍조가 서로의 마음자리를 빠듯하게 만든다.
열렬한 관심까지는 아니더라도 듣고 있는 시간은 어차피 전달하는 사람과 공동의 시간이다. 가장 유효하고 합리적인 시간 활용을 위해서라도 잘 듣고 반응해주면 좋겠다. 바쁜 일상에서 떼어낸 시간이 신뢰가 되고 위로가 되고 더 나아가 배려가 되면, 인정받고 있다는 충족감으로 마음이 여유로워질 것 같다. 그러다 보면 긍정이 힘이 얻어 나도 당신도 평안해 질 것이다.

모임의 연락책을 맡은 일로 인해 생겨난 일들로 고민한 생각이다. 반응을 하면 긍정을 부르고 긍정은 친밀을 부르고 친밀은 우호를 부르고 우호는 공감을 불러오는 것이라 결국은 배려하는 분위가 형성돼 서로에게 믿음이 생겨나게 된다. 그러면 세상이 덜 팍팍하고 덜 이기적이고 덜 외로울 것 같다. 자꾸 반복해 덧칠을 하다 보니 거창한 결론 같아 보이는데 나를 포함한 당신, 모든 이들의 작지만 진실한 소망일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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